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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인문학 위기론’의 행방…성찰 시리즈 마련
실종된 ‘인문학 위기론’의 행방…성찰 시리즈 마련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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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론이 실종됐다. 인문학이 쓰러지면 세상도 망할 거라는 묵시론적 분위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위기론을 주창한 인문주의자들은 대부분 아카데미로 돌아갔거나, 새로운 논쟁거리를 찾아 장소를 이동했다. <관련기사 7면>최근 국회도서관에서 ‘인문학 위기’와 관련된 논문이나 글을 찾아보면 지난 3년간 매년 11~15편이 검색되는 것에 비해, 올해는 단 2편에 그치고 있다.

피상적으로 추측해보자면 최근 인문학에 대폭 지원키로 한 정부의 태도 변경에 따른 전반적인 안도감 형성, 논의의 동어반복과 식상함에 대한 환멸과 자발적 중단 등 몇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확한 진단은 오히려 위기를 주창한 논의자들의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진행됐던 인문학 위기 논의들을 반성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없었지만, 학계는 인문학이 그 위기를 넘어섰다는 잠정적인 타개책들을 성급히 내보이고 있다. ‘영상인문학’, ‘표현 인문학’ 등 인문학의 미래를 정보화 및 적극적 표현주의와 연결시키는 일련의 메타담론서들의 그 사례들이다.
인문학 위기론이 갑자기 실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음 몇가지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논의의 과정 속에서 대화와 합의가 부재하다시피 했다는 것. 위기의 대상인 인문학의 개념정의에서도 지나친 광의나 협의에 치우쳐 공통적인 ‘위기’의 맥락조차 형성하지 못했다. 다음은 그것의 당연한 결과겠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 정보화사회 등 그동안 도출된 다양한 인문학 위기요인들도 주 표적을 만들지 못한 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또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것의 토대인 정보화 과정을 긍정하는 등 논리적 비일관성도 검열과정을 쉽게 빠져나왔다.

이렇듯 학계가 총력을 기울인 논의가 비효율성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는 지속적인 논의의 장이 형성되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신문이나 출판저널리즘의 요구에 대한 주문생산으로 대부분의 글쓰기가 이뤄졌다는 점도 합의적 논의를 생산하지 못한 원인으로 거론할 수 있다.

인문학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의 모습으로 재출발의 돛을 올려야 될 것이다. 과연 지난 시기 인문학 위기론은 진정성있는 목소리였나, 아니면 과잉수사에 지나지 않았는가, 성찰이 필요하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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