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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경에도 전통 강의 방식 필요 … 타인 저작‘무임승차’더이상안된다
디지털 환경에도 전통 강의 방식 필요 … 타인 저작‘무임승차’더이상안된다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4.10.14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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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출판협회-교수신문 공동기획‘책 읽는 대학이 미래다’⑤ W 시대, 새로운 강의 윤리를 찾아서

인터넷 시대의 핵심은 ‘디지털’에 있다. 0과 1로 무한까지 담아내는 이 기술환경적 변화는 강의실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오픈 강의 형식의 등장에서부터 교재 파일 다운로드까지 전통적인 교재에 입각한 강의 지형도를 변화시켰다.

환경적 변화가 급격할수록 기본적인‘윤리’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한 학술출판사 대표에게서 들은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최근 대학에 주교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교재를 선택해서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여기저기 필요한 책에서 발췌해 프린트해서 강의를 하는 모양새다. 저작권 문제라는 법률적 문제에서부터 수업을 통한 자체 검증 → 내용 수정 → 출판이라는 연구-강의의 선순환구조가 자칫 무너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귀띔했다. “교·강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재를 구입하라고 말하지 못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수업을 성실하게 하려면 교재를 갖춰야 하는데, 학생들은 출판사와 결탁해 교수가 교재를 판다고 오해한다. 그렇게 되면 교수평가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교재를 구입하라는 말을 못 꺼내는 상황이 반복된다. 물론 주교재 없이도 창의적으로 강의를 준비하는 교·강사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책을 발췌해서 강의에 활용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지나쳤던 부분이지만, 저작권 문제가 예민해진 지금 아슬아슬한 대목이다.

수년 전 ㅈ대 한 강사는 십여 권의 선행 저작에서교재를 구성할 수 있는 부분을 복사해 한 권으로 제본한 뒤, 이를 대학 구내 복사가게에 맡겼다. 해당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복사실에서 교재를 구입해 수업에 들어올 것을 주문한 것은 물론이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연구 결과물에 ‘무임승차’한 셈이다. 맥락이 서로 다른 내용으로 구성된 단편적 지식들을 강의에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실은 큰 문제다.

지금은 거의 근절됐다고 볼 수 있지만, 교재 채택을 빌미로 교·강사들에게 교재 선택에 따른 물질적 지원을 하는 낡은 관행이 잔존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이것은 학생들이 교재 구입을 꺼리게 만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한다. 일부 교·강사와 출판사들이 대규모 강의에 활용되는 교재를 놓고 이렇게 뒷거래를 하는 것은 윤리적 일탈임에 틀림없다.

교재가 사라지는 강의
그렇다면 인터넷 환경이 이끄는 강의실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이버강의는 자기주도적 반복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학습 시대의 교육 방향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고, 대학들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다. 교수와 학생간의 의사소통 문제도 있지만‘강의 콘텐츠 문제’는 좀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에서 사이버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박아르마 교수(불문학)의 경험담이 시사적이다.
“PPT나 전자파일 형태의 강의교재를 포함한 사이버 강좌의 경우, 적어도 2년 주기로 강의 컨텐츠를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책이 아닌 PPT나 전자파일 형태의 강의교재를 접할 경우 강의에 대해 수동적일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사이버 강의든, PPT나 전자파일 형태의 강의교재 중심 강의든 교수 학생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교재, 판서, 토론 등으로 이뤄지는 전통적인 강의 방식을 병행할 때 강의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소통 가능한 대면 강의, 그리고 교재, 판서, 토론 형태의 전통적 강의 방식이 W의 시대에도 여전히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 생각할 문제는 사이버 강의 등 강의내용이 공개되면서 엄격한 강의윤리가 요청된다는 현실적 부분이다. 교·강사와 학생들만의 소통으로 구성되던 종래의 강의가 불특정 다수에게도 ‘열린’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마치 논문에서 인용과 표절 문제처럼, 교육적 수용 가능 범위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이자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자문위원/표절위원회 위원인 김기태 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과)의 말을 곱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강의윤리란 한마디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과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가르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나 태도를 뜻한다. 근래 캠퍼스에서는 온라인 강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나아가 전 국민을 상대로 공개되는 강좌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수업목적의 경우 남의 저작물을 이용해도 무방하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신중해야할 대목이 있다.”

환경변화에 대응한 윤리 제시 필요
김 교수가 말하는 ‘신중해야 할 대목’은 이런 것들이다. 강의를 구성하는 콘텐츠의 출처를 명시할 것, 또한 출처의 명시는 “저작물의 이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해야 하며, 저작자의 실명 또는 이명이 표시된 저작물인 경우에는 그 실명 또는 이명을 명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굳이 저작권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공들여 만든 저작물을 강의에 이용할 바에는 그 출처를 정확히 밝혀줌으로써 학습자들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원천을 헤아리고 또 다른 성과를 창출하는 데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강의윤리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논문에 적용되던 엄격한 지침이 바야흐로 강의(교재)에도 적용되는 시간대에 접어든 것이다. 앞서나가는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이를 기회로 삼으려면 인터넷 시대, 디지털 환경 하에 적합한‘강의윤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조금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교재’활용의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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