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8:00 (금)
마르크스에서 피케티로 가는 연구방향
마르크스에서 피케티로 가는 연구방향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0.06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의 피케티 『21세기 자본』 읽기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글항아리 刊)이 번역, 출간되기 직전 이 책과 피케티의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두고 ‘마르크스’라는 척도를 대입해 읽어낸 이는 류동민 충남대 교수였다. 류 교수는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펴내는 <마르크스주의 연구>35호(2014년 가을호, 제11권 제3호)에 「마르크스 이후의 피케티 혹은 피케티 이후의 마르크스?」라는 짧은 서평을 게재했다. 그리고 이 서평은 본격 논쟁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피케티를 읽으면서 마르크스를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색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류 교수는 먼저 피케티와 마르크스가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논의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그의 기본 시각은, “피케티와 신고전학파보다는 피케티와 마르크스 사이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까운 것”이라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듯, 마르크스와 친화성을 사유하는 방향에 놓여 있다.
류 교수는 피케티를 향한 하비나 푹스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적 논점을 검토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이론과 피케티의 이론이 양립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상호보완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했다.
그는 두 가지 점에서 피케티의 자본개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비판은 유보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마르크스 자신도 이자나 지대 등은 잉여가치로부터 파생된 형태로 간주했기 때문에, 자본수익률의 분자에 관한 한 피케티와의 차이는 없다. 분모의 경우에도, 『자본론』 제2권의 자본순환에 관한 이론을 감안한다면, 피케티의 개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윤율저하경향의 법칙을 실증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한” 피케티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류 교수의 생각이다. 둘째, 불평등의 문제를 자본-노동 간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 피케티는 마르크스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피케티는 신고전학파적 생산함수의 틀 안에서 주어진 자료를 설명함으로써 주류경제학적 틀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류 교수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특히 재산에 의존하는 바가 커진다는 점, 다시 말해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위협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수익률을 피케티처럼 정의하는 것이 유의미하다”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적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피케티적 자본수익률이 안정적이라면 불평등은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류 교수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넘어서는 ‘차이를 넘어’가는 연구방향을 제시한다. 그가 읽기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론적으로는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회의를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통찰을 접목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피케티가 이윤율의 결정요인에서 계급 간 정치의 요인을 배제하고 있는 대목 말이다. “잉여가치의 생산을 둘러싼 자본-노동 간 계급대립의 문제, 범위를 확장하면 피케티 자신도 인정하듯 α(자본소득분배률)의 상승이 가져오는 정치적 힘의 증가 등의 요인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좀 더 류 교수 식으로 정리하면, “α 및 β의 변화와 상호작용의 동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든 신고전학파가 정의해놓은 좁은 의미의 경제학을 뛰어넘어야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고, 그 하나의 가능성이 ‘피케티에서 마르크스로 가는(Piketty after Marx)’ 연구방향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케티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류 교수가 보기에 피케티가 사용한 식(α = r × β)과 동일한 식(r = P/K = Y/K P/Y = Y/K(1- W/Y. P, K, Y, W는 각각 총이윤, 총자본스톡, 부가가치, 총임금을 나타냄. )을 이용해 이윤율 구성요인을 분해하는 것만으로 자본주의적 변모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에 초점을 맞추는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의식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피케티가 보여주는 부의 축적을 통한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류 교수는 하나의 역발상, ‘마르크스에서 피케티로 가는(Marx after Piketty)’ 연구방향 또한 존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