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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성과급적 연봉제
시대착오적인 성과급적 연봉제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ㆍ사회학
  • 승인 2014.10.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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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ㆍ사회학

▲ 박재묵 논설위원

국립대학 교원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성과급적 연봉제’가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국립대학의 상당수 교수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평가 자료로 쓰일 실적을 입력하지 않고 있고, 그 중 일부는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실적을 입력하지 않을 태세다.

그 동안 교육 당국에서는 교수사회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누적률을 낮춰왔고, 최근에는 최하 등급인 C등급 판정에 절대적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해서 한 발 물러섰지만, 당초 제도를 설계할 때 면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요소들이 너무 많은 탓으로 소폭 보완으로 과연 이 제도가 안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초 교원에 대한 동기 부여, 우수 인력의 유치, 대학의 책무성 제고 등의 좋은 목적을 내걸고 추진해온 새로운 보수체계가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평가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보수를 차별적으로 지급하기 위해 교수들을 여러 등급으로 구분하는 데 사용되는 평가척도의 정밀성이 떨어진다. 평가 영역은 교육, 연구, 봉사 등으로 다양하게 설정돼 있지만, 성과의 차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결국 연구부문 실적이고, 그 중에서도 논문의 편수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문제는 교수 1인당 평균 논문 편수가 학문분야에 따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같은 분야 내에서도 세부전공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데 있다. 이러한 차이는 대체로 학문분야와 세부전공에 따라 연구대상, 연구방법, 통용되는 규범이 서로 다른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를 설계한 측에서는 교수 간의 실적 차이가 단지 개인의 성취 욕구나 직무 몰입도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겠지만, 실제로는 학문분야나 전공영역에 따른 차이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평가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공정성의 시비는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밀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평가척도에 의해 책정된 성과급이 과도하게 반영된다는 것도 문제다. 이른바 성과 ‘누적식’ 연봉제에서는 한 해에 받은 성과급의 일정 비율이 성과가산금의 형태로 다음 해의 기본연봉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최초 임용 당시의 성과가 전체 재직기간의 보수에는 물론 퇴직 후의 연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성과급적 연봉제의 참뜻이 동기 부여에 있다면 굳이 이처럼 ‘가혹한’ 누적 방식을 취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성과급적 연봉제로 인한 학문공동체의 파괴가 우려된다. 성과급제도는 대체로 추가 재원을 마련해 성과가 뛰어난 사람에게 인센티브 형태의 추가 보수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국립대학 교수에게 적용되는 성과급적 연봉제는 추가 재원 없이 기존의 호봉제를 운영하던 예산으로 운영한다. 따라서 성과가 낮은 교수에게 돌아가던 보수의 일부를 깎아서 성과가 높은 교수에게 성과급으로 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상호약탈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는 과도한 경쟁이 유발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학문공동체의 붕괴가 우려된다.   

성과급적 연봉제는 과거의 ‘철밥통’ 교수사회를 염두에 두고 고안된 시대착오적 제도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는 승진 및 정년보장의 요건이 크게 강화됐고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들의 실적 산출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까지 마련돼 있다. 또한 성과급 연구보조비의 차등적 지급, 우수 논문에 대한 장려금 지급 등으로 교수 간 보수의 차이도 밖에서 보는 것보다 크게 벌어져 있다. 지금 대학이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논문 발표에 쏠려 있는 교수들의 활동을 강의실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지금처럼 논문 발표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성과급적 연봉제는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ㆍ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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