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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보장된 기획 전시가 조금 불편한 이유
‘안정성’보장된 기획 전시가 조금 불편한 이유
  • 윤지은 기자
  • 승인 2014.10.0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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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의 전시는 왜 되풀이 되는가?

▲ 장-오거스트-도미니크 앵그르, 목욕하는 여인(The Small Bather), 1826, Oil on canvas, 32.7 x 25.1 cm,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와 천재화가들’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필립스컬렉션이소장하고 있는 피카소, 고야, 반고흐 등세계적 대가들의 걸작들이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는 지역민의 뜨거운 관심으로오는 19일에서 22일로 전시 기간이 연장됐다. 지역 미술관의기획전이 가능성을시사한 것으로도 읽힌다.
미술관마다 해외 유명 작가전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작가의 명성으로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장점이 많다. 대중들은 평소 관심 있던 해외 작가들의 명작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고, 미술관은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해외 유명 작가전,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전시회에 주목하고 있을까. 10월 중 열리는 전시·행사는 전체 25개(네이버 전시·행사 정보 참조)다. 그중 낯설지 않은 작가의 전시가 눈에 띈다. 오는 18일 열리는 디지털로 보는 ‘반 고흐展’이다. 지난 7월부터 오는 12일까지 열리는 ‘뭉크展’도 익숙한 작가의 전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전시가 낯설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종종 ‘이 전시, 봤던 건가?’하고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반고흐전은 3부작 시리즈로 전시되고 있다. 2007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두 번째 전시가 개최됐다. 앞으로 4~5년 후에 반고흐의 마지막 시리즈 전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전시 프로젝트인 셈이다.

반면 미술관에서 자체 기획한 전시가 장기전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백남준 미술관이나 환기미술관 등 개인 미술관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작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전시는 흔치 않다. 홍지석 미술평론가는 그 이유에 대해 “국내 작가 중에 반고흐만큼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는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고흐나 뭉크 등은 원작 전시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원작을 패러디한 트릭아트전 등에서는 반고흐, 클림트,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이 주 소재로 쓰인다. 이달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반 고흐: 10년의 기록展’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 기반의 회화를 감상하는 전시형태다. 이처럼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는 해마다 다변화 돼 되풀이되고 있다. 대구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펄 정명주 큐레이터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고흐나 뭉크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건 그 작가에 대한 수요층이 넓다는 뜻이다. 이는 곧 전시의 흥행으로도 이어진다.”

2007년 반고흐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렸을 때 최단기간 최다 관람객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당시 한 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개관하고 3달 동안 관람객이 6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정 큐레이터는 일반적인 작가전과 비교했을 때 유명 작가의 전시 관람객 수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귀띔했다. 특히 지방에 있는 미술관일수록 유명 작가의 힘은 더 크게 발휘된다. 지난해 7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展’에는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 언론에서는 대구미술관이 성공적인 개최와 함께 10억 원 가량의 수입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대구미술관의 2012년 수입과 비교했을 때 10배가 넘는 액수라는 것이다. 대전시립미술관도 지난 7월부터 오는 22일까지 ‘피카소와 천재화가들’이란 전시를 주최해 대전 지역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기록했다. 피카소, 모네, 칸딘스키 등 거장들의 원작을 보러 타 지역에서도 관람객들이 찾아와 전시 시작 85일 만에 14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정 큐레이터는“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지방미술관이 10만 명을 넘는다는 건 쉽지 않다”며 “기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월 5천명에서 1만 명의 관람객이 온다”고 말했다. 해외 작가전이 운송료, 높은 보험료 등 소요되는 경비가 만만치 않음에도 미술관에서 선호하는 이유는 높은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유명 작가전의 경우 외국에서 열렸던 전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은 자체적으로 기획해야 하는 수고를 겪지 않고도 간단하게 전시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더불어 해외 유명 작가전을 함으로써 미술관의 평판과 지명도도 함께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미술관의 기획력은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정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순수 미술 분야를 개척하고 리서치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미술 분야의 아카이브를 만들고 동시대 작가의 경향을 파악해 국내 작품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전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많은 관람객의 방문은 국내 작가전 등 다음 전시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에 한번 온 사람이 다시 미술관을 찾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홍지석 미술평론가는 “미술을 관람하고 즐기는 관람객이 증가하면 그만큼 문화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지게 된다. 문화적 관심이 높아지면 미술전시에 대한 수요도 증가해 수준 높은 전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정성에 안주하다보면 해외 유명 작가전에 멈춰서기 쉽다.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더 많은 작품을 재해석해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늘 도전이 필요하다. 해외 유명작가의 인지도에 힘입어 미술관의 평판을 쌓고, 높은 수익을 남기겠다는 발상은 미술 문화의 깊이를 무디게 만들지도 모른다.

윤지은 기자 jie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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