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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경쟁력 높이려면 ‘돈으로 대학 흔들기’ 멈춰야
대학 경쟁력 높이려면 ‘돈으로 대학 흔들기’ 멈춰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9.29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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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협 대학교육 정책포럼

“지금의 대학 간 경쟁은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된 ‘재정지원권 획득 경쟁’이다.” “맨 위에 있는 교육부가 돈과 정원을 갖고 밑에 있는 대학을 흔드는 이 수직적 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와 미래교육국민포럼(이사장 이돈희)이 지난 24일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정책포럼의 결론은 어찌 보면 이한마디에녹아있다. “정부가 손을 떼고 대학에 자율을 줘라. 그러면 대학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생긴다.”(안재욱 경희대)

‘경제계 관점에서 보는 대학 발전의 방향과 과제’를 발표한 안재욱 경희대 교수(경제학과)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정부가 90년대 초반 가전산업 수입 자율화를 발표하자 가전 3사가 엄청 반대했다. 외국 가전제품에 점령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나. 정반대다. 정말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면 자율을 줘라. 교육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게 자율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고등교육 종합발전방안을 마련할 때 대학발전기획단장을 맡는 등 정부 정책 참여 경험이 많은 신현석 고려대 교수(교육학과)의 문제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 교수는 지금의 대학 간 경쟁을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해 정부가 의도하는 사업에 지원하는 대학들이 사업 목적에 맞게 대학의 변화를 설계한 것들과 이에 대한 성과를 두고 벌이는 재정지원권 획득 경쟁”, “전형적으로 승패에 따라 보상기제가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승자독식형 경쟁 체제”로 규정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팀장을 맡았던 강홍준 <중앙일보> 논설위원 또한 “대학이 교육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에 있다.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립학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정부 재정지원금이 없이는 대학 운영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끊임없이 다양한 재정지원 사업을 개발해 대학에 대한 통제, 정확하게는 돈의 통제를 계속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이돈희 미래교육국민포럼 이사장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실현하고자 할 때 돈을 갖고 유인하거나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정책이 아니다. 대학의 지원 정책은 이런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육개발원장을 지낸 김태완 계명대 교수 역시 자유토론에서 “80년대 이후 경제 분야에서는 정부가 손을 뗐는데 교육은 계속 간섭한다. 정부가 고등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책 추진 체계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신 교수가 제시한 대학정책 거버넌스 혁신 모형은 3가지다. 첫째 보완 모형. 교육부 대학정책 부서에서 정책의 모든 단계를 주관하되 참모조직으로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주요 대학정책 사안들을 심의·자문하는 모형이다. ‘개선 모형’은 대학정책의 결정과정과 집행과정을 분리해 교육부는 집행기능만 담당하는 방식이다. 대학정책을 기획·결정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고등교육위원회 몫이다. ‘혁신 모형’은 정부 부처에서 고등교육 정책 기능을 폐지하고 독립적인 자치 거버넌스 기구로 고등교육위원회를 상정한다. 신 교수는 “개별 대학이 스스로 자율의 주체가 되는 현장 중심의 대학 자율화를 실현하고, 적자생존의 무조건적 경쟁에서 공생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보장하는 유형별 맞춤형 경쟁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보완모형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사회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지적도 있었다. 학과장 외에는 학내에서 보직을 맡아본 적이 없는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우리 대학이 왜 이렇게 교육부에 끌려 다니기만 하느냐. 대학이 스스로의 정당성과 윤리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집단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불신을 극복하고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과 윤리성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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