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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이 만든 사막의 역사, 거기에도 ‘소그드 상인들’의 金權이 작동했다
불한당들이 만든 사막의 역사, 거기에도 ‘소그드 상인들’의 金權이 작동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9.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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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초원에서 흑해까지_ 22. 포도의 고향 투루판(1) 투루판의 胡商들




사막의 砂丘 뒤편에도 행인의 봇짐을 노리는 음험한 눈길이 도사리고 있었다. 투루판 같은 오아시스 성곽도시의 안팎에도 남의 재물 탈취라는 악행을 꾀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천산이나 파미르 고원 험준한 절벽이나 산길 어딘가에도 남의 물건을 군침 흘리며 탐하는 산짐승들이 있었다. 이들의 타깃이 되는 행인은 주로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 여행자, 순례객 등이었다.

“세상은 넓고 사연은 많다. 그 사연들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

학생들에게 물었다. 장미의 원산지가 어디냐고. 대체로 말이 없었다, 모른다는 얘기다. 후추의 원산지는 아느냐고 물었다. 역시 침묵. “서양 요리에 즐겨 쓰이는 향신료 중 하나인 丁香(clove)은 어디가 원산지일까?” 상냥하게 물었다. 학생들은 상냥한 눈빛으로 말이 없었다. 물론 모를 수 있는 일이다. 숨을 고르며 휴대전화는 뒀다 뭘 하냐고 말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 휴대전화로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먹방 검색, 새로운 게임 출시, 신상 구두 뭐 이런 류만 서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진짜 유익한 정보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다. 반응은 심드렁. Anger management(화 참기)가 필요한 시점. 울화(?)를 억누르며 인자한 표정으로 가장 먼저 정향의 원산지를 알아내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5초도 안 돼 정답이 나왔다. 말루쿠 군도(the Maluku Islands or the Moluccas). 예로부터 해적의 출몰지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여기가 어딘지는 독자들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시기 바란다. 드넓은 태평양 뉴기니 왼편의 다도해라는 점만 말하겠다.


장미의 원산지는 페르시아(현 이란). 그러나 이라크, 터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고향이라고 한다. 후추의 원산지는 이미 알겠지만 인도. 정확히는 남인도 말라바르 해안(Malabar Coast). 정향의 원산지가 인도네시아임은 잘 몰랐을 수 있다. 정향이 뭔지부터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은 뒤 그곳 밀림을 밀어내고 온통 정향나무를 심어 기르도록 했다. 당시 향신료 무역은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후추 1그램이 금 1그램과 맞먹었다. 물론 후추를 구입해 판매하기 위해 오가는 뱃길은 자칫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풍랑보다 무서운 건 해적이었다.

▲ 한 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타클라마칸 사막. 옛적 대상들은 낙타에 짐을 싣고 여기 길 없는 곳을 넘나들었다. 사진 번춘방 작가

최근 국내 제작 영화 「명량」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영화가 「해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나와 가 보고 싶지만, 아직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해적이든 산적이든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쁜 부류의 불한당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고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도둑이나 강도 없는 세상은 없다. 과거에는 國勢가 기울 때 어김없이 도둑떼가 나타났다. 농민들이 도둑의 무리가 돼 나라에 반란을 꾀한 대표적 경우를 홍건적의 난, 황건적의 난 등에서 볼 수 있다. 明을 세운 주원장(1328~1398)이 괴수가 돼 이끈 것이 홍건적의 난으로 결국 새로운 왕조의 탄생에 이른다.


어려서는 重八로 불리던 주원장은 濠州(현 安徽省 鳳陽縣)의 빈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곧바로 고아가 됐다. 마을에 전염병(흑사병)이 돌아 둘째 형과 중팔을 제외한 부모형제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둘째 형의 이름이 重六인 것으로 보아 그는 여덟 째 아들이었고, 그의 부모에게는 아들 여덟에 여식이 둘 있었다. 자식의 수가 도합 열 명. 가난한 집안에서 왜들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나았는지.


고아가 된 중팔 소년은 이웃의 주선으로 皇覺寺라는 절에 맡겨져 겨우 굶주림을 면하다 나이 들며 탁발승이 돼 河北 지방과 그 주변 지역을 전전하며 원나라 말 곳곳에 만연한 불의와 어지러움, 재난을 목격한다. 당시 중국의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는 기근과 가뭄으로 7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이러한 상황은 민중봉기를 촉진시켜 1325년경부터는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의 처지에서 근근이 생존하던 그는 匪賊團에 가담한다. 비적단은 무기를 가지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평민 출신의 비적이 이끄는 반란군들은 부유한 사람들의 집을 습격해 그들의 재물을 빼앗은 뒤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1351년 때마침 白蓮敎徒가 홍건적의 난을 일으킨다. 운명처럼 홍건적의 무리에 참여한 그는 홍건적의 부장 郭子興의 휘하에서 활약하다 곽자흥의 양녀 마씨와 결혼해 그의 사위가 됐다. 이 여인이 주원장을 도와 元왕조를 북방으로 몰아내고 강남을 거점으로 한 신왕조 朱氏明國 개국의 공동 주인공이 된다(1368년). 滅蒙興漢의 기치 아래 反元, 반몽골과 한족의 국가 재건을 강조하며 북벌군을 일으켜 몽골족을 만리장성 밖으로 축출하고 중원을 통일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388년의 일이다. 함경도 사나이 이성계가 고려에서 중요 인물로 부각되는 시점이다. 그 역시 적처인 한씨와 여장부인 차처 강씨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듯 남자의 명운은 상대하는 여자의 힘 또는 운세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돌고 돈다. 아니 악순환은 되풀이 된다. 명말청초의 사정도 원말명초와 놀랄 만큼 흡사했다. 그 무렵의 유명한 학자이자 시인인 광동 출신, 정확하게는 오늘날 광주의 한 구인 廣東番사람 屈大均(1630~1696)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월중다도(中多盜)’라 개탄한다. 省 즉 廣東省을 가리킨다.
소년 대균은 어려서 陳邦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고 南海縣 生員으로 補任된다. 順治 3년(1646년) 軍이 廣州를 공격해 함락시킨다. 이듬해 굴대균은 진방언, 陳子壯, 張家玉 등이 주도한 저항군에 참가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순치 7년(1650년) 兵이 다시 광주를 포위하자 추적을 피해 番圓崗鄕 金山(雷峰山이라고도 함) 海雲寺로 숨어들어 삭발하고 승려가 돼 법명을 今種으로 한다. 이후 죽을지언정 청조에 굴복해 신하가 되지는 않겠노라 맹세하기에 이른다.


명나라 말기 광동 지방에 도적이 많았다는 것은 무슨 얘기일까. 당시 다양한 유형의 범죄단체, 오늘날의 말로 하면 조폭 혹은 黑社會(암흑가, 뒷골목 사회)가 존재했고, 행태가 고약했다는 얘기다. 우선 기본적으로 山賊이 있었다. 이들은 깊은 산중에 산채를 짓고 거기 모여 살며, 산길을 지나는 상인들과 여행자의 재물을 털었다. 물론 강탈이다. 때때로 인근마을로 내려와 죄 없는 주민들을 괴롭혔다. 바다에는 水匪가 있었다. 바다의 섬이나 강 위의 배에 숨어 살며 官鹽을 약탈하고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私商을 죽였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한마디로 나쁜 놈들이다. 海岸을 장악하고 향료 밀수를 전담했다. 이런 산적과 수비 조직의 구성원은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비교적 규모가 작고 조직의 구성이 느슨하면서 유동성이 큰 범죄 패거리도 있었다. 鳳陽幇이라는 재밌는 범죄 집단이 그 중 하나다. 이 패거리의 특징은 幇會의 구성원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웠으면 여자만의 왈패 조직이 존재했을까 싶다. 활동 무대는 광동이지만 실제로 이들은 안휘성 봉양에서 들어온 여성들이다. 고향에서 살기가 어려워지자 구걸행각을 하며 떠돌이 생활하다 광동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들은 거지 신분으로 위장하며 주, 현을 넘나들며 아동 유괴, 매매를 일삼았다. 생활이 곤궁해지면 여자도 인간 이하의 해악에 망설임이 없나보다.


전염병 환자로 구성된 人幇의 행태는 기가 막히다. 인간 잔혹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들의 활동은 단순하다. 훔치지도, 강탈하지도, 시시하게 칼 따위를 들고 위협하지도 않는다. 그저 몸의 병을 과시하며 착한 사람들의 협조를 구한다. 범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이들 개성 만점 환자들은 남의 집 앞에 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좋은 말로 할 때 이 어르신께 돈을 가져오시게. 아니면 여기서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겠네. 이 집안사람들 모두에게 내 병을 옮길 때까지.” 무섭지 않은가.
서역에도 무법자, 상식과 예절과는 거리가 먼 무뢰배 등 온갖 종류의 악당이 존재했다. 무뢰배 혹은 無賴漢이란 본래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무뢰한의 漢은 ‘사내, 놈’이라는 의미의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몽골어 qan 혹은 khan이 음 차용돼 쓰이다가 의미 타락(pejoration)의 결과로 통속적 어휘가 된 셈이다. 아무튼 세상에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일정한 거처와 직업 없이 남의 등을 치고 그래서 얻은 소득으로 빈둥빈둥 놀면서 떠돌이 생활을 즐기고 난봉짓이나 하는 사람들 아니 남자들이 꼭 있다.


이들을 서양에서는 독일어로 룸펜(Lumpen)이니, 영어로는 tramp, hobo, bum이란 명칭으로 부른다. 乾達은 범어의 한자 차용어 ‘乾婆’의 축약형으로 추정된다. 건달파는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 사는 하늘나라의 신이다. 帝釋天의 雅樂을 관장하는 신 즉 음악의 신인 것이다. 그는 고기나 밥 등의 음식은 먹지 않고 오직 香만을 먹고살며,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즐긴다고 한다.


어느 날 딸아이가 카톡 문자메시지를 보내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뭘까요?” 애비의 입장에서 딸의 기호를 알고 있어야 아빠답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생 도넛”이라고 답을 보냈다. 돌아온 딸의 답이 허무했다. “아빵~” 나는 웃었다. 결코 건달이 좋아하는 떡이 아님에도 한자어로 乾達餠, 또는 한자어와 우리말이 합쳐져 오입쟁이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떡이 있다. 차전병(찹쌀가루로 만든 전병)에 채 친 대추와 밤, 석이를 얹어 부친 뒤 마름모꼴로 썰고 그 위에 설탕과 계피가루를 뿌려서 만든 웃기떡인데 하릴없이 온갖 모양을 낸 백수건달이나 바람둥이에 빗대 만들어낸 이름이지 싶다.


도둑의 출현 무대를 서역, 실크로드 지역으로 옮겨보자. 사막의 砂丘 뒤편에도 행인의 봇짐을 노리는 음험한 눈길이 도사리고 있었다. 투루판 같은 오아시스 성곽도시의 안팎에도 남의 재물 탈취라는 악행을 도모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천산이나 파미르 고원 험준한 절벽이나 산길 어딘가에도 남의 물건을 군침 흘리며 탐하는 산짐승들이 있었다. 이들의 타깃이 되는 행인은 주로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 여행자, 순례객 등이었다. 외교사절에는 호위 군사가 붙어 있어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번 글에서는 투루판 아스타나(Astana: 휴식) 고분 등에서 출토된 고대 문서를 통해 과거 이 일대의 상인과 도둑들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투루판은 어떤 곳인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편에 위치한 무척 더운 도시 투루판(吐魯番)은 세계적인 포도 산지다. 이곳에서 건포도를 원 없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투루판이란 지명은 위구르어로 ‘움푹 파인 땅’이라는 뜻이다. 투루판 분지는 이름만큼이나 해발표고가 낮은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애정호의 수면은 평지보다 154m나 낮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火洲라고도 불렸다. 두어 시간만 돌아다녀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땀이 흘러내릴 새 없이 말라붙어 볼과 팔뚝에는 고운 소금이 맺힌다. 투루판은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西漢 즉 前漢시대부터 오랫동안 서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다. 북서쪽의 우루무치와 남서쪽의 카슈가르, 남동쪽의 감숙성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 요지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총 면적은 6.97㎢이며, 5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위구르족, 한족, 회족 등 25개 구성 민족 위구르족이 전체 인구의 73%를 차지한다.이곳은 과거 고창왕국의 근거지였다. 高昌故城은 고창국의 유적지로 3세기 경 후한이 멸망한 후 번성했던 투루판의 중심지였다. 투루판 시내 동쪽에서 40㎞ 떨어진 화염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불타오르는듯한 화염산을 배경으로 폐허만 남아있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은 워낙 열기가 대단한 곳이다. 붉은 색 일색인 이 산은 신장 자치구 지역의 톈산 산맥에 속한 붉은 사암으로 이뤄진 황무지 산이다. 화염산은 총 길이 98km에 너비가 9km로 타림 분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평균 높이는 500m이며,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50°C 이상 올라가 숨이 턱턱 막힌다. 중국에서 가장 큰 온도계가 있다.
『서유기』에 의하면 이곳은 잘난 척 대왕인 牛魔王의 아내(본처)이자 홍해아의 어머니인 나찰녀의 구역. 그녀는 화염산 인근의 취운산 파초동에 살면서, 10년에 한 번씩 화염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제물을 받고 파초선을 부쳐서 화염산의 불기운을 잠재워 주고 있었다. 때문에 파초선의 주인인 그녀의 별명은 鐵扇仙 또는 鐵扇 공주.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으로 가는 길에 화염산을 지나갈 때 엄청난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 나찰녀로부터 파초선을 빌리려고 했는데, 전에 삼장법사 일행이 그녀의 말썽꾸러기 아들 홍해아와 싸운 일 때문에 나찰녀가 부탁을 들어 주지 않는다. 손오공은 속임수를 써서 나찰녀의 뱃속에 들어가 난동을 피워서 파초선을 받아내었으나 그것은 분하게도 가짜 부채였다. 다음으로 우마왕을 통해 부탁하려고 우마왕이 첩인 옥면공주와 살고 있는 마운동으로 찾아갔으나 옥면공주와 시비가 붙는 바람에 우마왕과 싸움이 벌어진다. 손오공은 우마왕이 타고 다니는 금청수를 훔쳐 타고 우마왕으로 변신해 다시 나찰녀를 찾아가서는 우마왕 행세를 하며 진짜 파초선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마왕이 저팔계로 변해 손오공으로부터 파초선을 가로챈다. 손오공과 저팔계는 천신들의 도움을 받아 옥면공주를 때려죽이고 우마왕도 꼼짝을 못하게 몰아붙이니, 아내인 나찰녀는 부득불 파초선을 바치고 만다. 손오공은 파초선을 마흔아홉 번 부쳐 화염산의 불길을 완전히 끈 후 나찰녀에게 돌려준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이렇지만, 실상 화염산 일대를 지나는 카라반 등 행인들은 항시 오금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이곳을 무대로 강도짓을 하는 요괴 우마왕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무뢰배들 때문이다. 그래서 장사치들도 무사를 고용하고 적게는 몇 십에서 많게는 수백 인으로 상단을 꾸렸다.


교역에 능한 카라반의 구성원은 대개 胡商 혹은 興生胡라 불리던 소그드인들이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河中 지역에 기반을 둔 昭武九姓國 출신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가히 눈부신 것이었다. 고래로 아랍 상인, 인도 상인, 중국 상인 뺨치는 장사의 귀재가 바로 이들 소그드 상인들이었다. 아홉 나라 왕가의 姓을 昭武로 정한 것은 눈물 속에 떠나온 고향의 昭武城을 잊지 말자는 결연함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월지, 흉노에 패해 천산을 넘고 파미르를 넘고 넘어 마침내 烏湖河(아무다리야) 북쪽 하중 지방에 새로운 뿌리를 내린 바로 그 집단 월지의 후예들이다. 월지의 다른 부류는 흉노를 피해 서쪽으로 가되 남산(곤륜산맥) 기슭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전자가 소무구성의 주인공들이며, 후자는 다른 이름으로 남산과 총령 곳곳에 나라를 세웠다.
북위를 거쳐 수당시대에 이르기까지 투루판에는 엄청난 숫자의 胡商들이 자리를 잡고 경제력을 장악했다. 금권은 정치권력과 의기투합하기 마련. 투루판의 지배세력인 한족은 사실상 이들 소그드 상인들의 손아귀에 들어있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모든 것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듯, 호상은 한족의 의중을 꿰고 있었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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