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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점차 축소돼 왔다” … 연역적 고찰의 아쉬움
“폭력은 점차 축소돼 왔다” … 연역적 고찰의 아쉬움
  • 교수신문
  • 승인 2014.09.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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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북리뷰_ 스티븐 핑커 교수의 도발적 주장


폭력은 결국 인간 본성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연구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이자 사회학적 고찰이다. 과연 인류 역사가 폭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훌러왔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한 고민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연구일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1,046쪽, 60,000원)는 “우리에게는 오늘의 위험들이 있지만 어제의 위험들은 훨씬 더 나빴다”라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모든 연구의 결과가 그렇듯 중요한 건 결과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1천406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폭력에 대한 탐구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보여준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인류학적, 철학적 고찰이 대단하다. 특히 고고학과 민족지학, 문학 등 학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핑거의 사유가 흥미롭다.
파스칼의 인간 한탄으로 시작하는 책은 역사적으로 인류 사회에서 폭력이 줄어들었는지 통계 수치에 근거하여 흘러간다. 핑커는 자칫 폭력의 감소가 덜 폭력적인 문화의 등장이라는 순환 논리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보다는 인류 역사 단계적으로 나타난 전쟁과 살인, 폭력 등의 구체적 수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핑커는 “내가 이 책에서 이해하려는 주제는……폭력 감소 현상이다”라고 적었다.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스티븐 핑커는 여섯 가지 경향성, 다섯 가지 내면의 악마, 네 가지 선한 천사, 다섯 가지 역사적 힘에 더욱 눈길을 돌렸다. 책 제목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링컨의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따왔다.
우선 여섯 가지 경향성은 평화화 과정, 문명화 과정, 긴 평화의 시대, 새로운 평화, 권리 혁명으로 나뉜다. 평화화 과정은 비국가 사회에서 국가 사회로 변화하면서 이룩된 시기다. 약탈과 살인이 일상처럼 번졌던 원시 사회에서 국가 체계로 넘어가며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약 5천 년 전부터 시작된 이 과정은 농업 문명에 기반 한다. 자연 상태에서 나타난 약육강식의 습성이 점차 줄어들었다. 핑커는 폭력이 5분의 1로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문명화 과정은 중세 후기부터 20세기까지로 5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중세 후반부터 유럽 국가들의 살인율은 과거에 비해 50분의 1로 낮아졌다. 인도주의 혁명은 수백 년의 규모로 진행됐다. 17세기와 18세기 이성의 시대 및 유럽 계몽 시대가 바로 이 변화다. 긴 평화의 시대는 제 2체 세계 대전 후 50~60년 동안 이어졌다. 냉전 후 1989년 이래는 새로운 평화의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권리 혁명은 1948년 세계 인권 선언 발기로 상징된다. 이때는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의 권리 등이 주창된다.


다섯 가지 내면의 악마는 포식적(predatory) 혹은 도구적 폭력, 우세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로 제시된다. 특히 이데올로기는 “무제한의 선을 추구하기 위해 무제한의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측면에서 위험하다. 이런 해석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폭력성 혹은 공격성은 인간 내면에 축적돼 발현된다기보다 환경적 유발 기제, 내부적 논리, 신경 생물학적 바탕, 사회적 분포 등 여러 심리 체계들의 종합적 결과물에 가깝다고 본 데 있다. 한마디로 내 안의 폭력이 아니라 조작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네 가지 선한 천사 감정 이입, 자기 통제, 도덕 감각, 이성이 주목된다.


다섯 가지 역사적 힘은 리바이어던, 상업,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로 압축된다. 우리 본성 안에 있는 선한 천사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현됐는지 살펴본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약탈과 습격을 감소하게끔 해 평화화 과정과 문명화 과정을 뒷받침했다. 상업은 모두가 윈윈 하는 게임의 측면에서 설명된다. 여성화는 폭력이 대체로 남성의 오락이었던 측면에서 그 반대급부의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다. 세계주의는 말 그대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한 지구촌 시대를 말한다. 이 시기에 긴 평화, 새로운 평화, 권리 혁명이 일어났다.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는 자각의 시대다. 폭력은 생존과 보복의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개념으로 재구성된다. 폭력은 헛되다. 핑커는 “‘왜 세상에는 전쟁이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 ‘왜 세상에는 평화가 있을까?’라고 물어도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폭력의 증거로 『성경』을 비롯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 문학 작품 속 묘사 장면, 선사시대 인류에 대한 과학적 분석 등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특히 『성경』 부분은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성경은 사실 기나긴 폭력의 찬미나 다름없다.” “성경에 묘사된 세상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혼비백산할 만큼 야만스럽다.” 이는 성경 자체에 대한 여러 종교학자들의 타당한 분석이다. 그래서 핑커는 “폭력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이 워낙 크게 변했기 때문에, 요즘은 신앙인들조차도 성경에 대한 태도를 구획화(compartmentalize)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맥락을 파악하고 더욱 현대적으로 변모한 『성경』의 도덕률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책은 숫자의 힘을 빌려 인류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한다. 하지만 그 구분과 연역적 고찰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다. 물론, 귀납적 결과 부분이 반영된 측면도 있으나 대부분은 저자 자신 혹은 다른 학자들의 주관적 잣대가 적용됐다. 또한 폭력의 감소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게 관건이다. 핑커는 “폭력의 감소는 분명 우리가 음미할 업적이다.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문명과 계몽의 힘들을, 우리는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하리라”고 적었다. 혹자는 폭력이 줄었건 늘었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분명한 건 핑커의 이번 저작이 주장의 파격성, 과학적 분석과 다양한 의견 종합, 결과 도출 과정 등의 측면에서 학술계 전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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