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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동반자로서 ‘세월호’ 또는 새로운 세계의 모색
사유의 동반자로서 ‘세월호’ 또는 새로운 세계의 모색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9.29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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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계간지 리뷰


가을 계간지들의 지적 자장은 역시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로부터 온 문제의식에서 형성됐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선명한 구절은 아마도 <역사비평> 108호의 「책머리에」 글일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하지만 무책임에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는 한 진실은 은폐되고 위로는 순간으로 남게 될 뿐이다. 교황의 위로가 우리 사회에 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남은 과제를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반복해서 질문을 던지고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며, 그리고 ‘반복해서’ 질문하는 동사로서의 행위, 가을 계간지가 놓인 곳이 아니겠는가.


세월호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가을 계간지는 크게 네 가지 보폭을 제시했다. 첫째, 재난으로서의 세월호를 직시하면서 그것을 전유하거나 넘어서는 것. 여기에는 <문학동네>80호, <문화과학>79호, <창작과비평>165호가 놓인다. 둘째, 재난으로서 세월호의 실체적 진실이 묻혀질 때, 거기서 증식하는 것이 소문임을 지적하는 방식인데 <오늘의 문예비평>94호가 그렇다. 셋째, 재난으로서의 세월호가 국가의 ‘무책임’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무책임의 역사와 제도를 파고들어가기. <역사비평> 108호의 행보였다. 그리고 넷째, 이 지상의 재난을 공공성의 결핍에서 찾아 세월호의 유산을 극복하려는 움직임. <황해문화>84호의 목소리다.


‘문학주의’를 줄기차게 표방해온 <문학동네>가 「특집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를 마련한 것을 보면, 세월호는 우리시대의 사유가 피해갈 수 없는 苦海임이 틀림없다. 시인(진은영), 소설가(박민규, 황정은, 배명훈), 커뮤니케이션전공자(전규찬), 정신심리치료 연구자(김서영), 정치학자(홍철기) 등이 참여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이 특집에서 단연 눈길을 잡는 대목은 소설가 박민규의 다음 문장들이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표지 하단에 ‘416 재난의 시간’이라고 커다랗게 새겨넣은 <문화과학>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세월호, 그리고 앞에서 열거한 그 많은 재난들이 그저 ‘사고’에 그치지 않는 것은 이 참사들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깊이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가 운영되는 방식, 그 작동 체계의 특성에 이와 같은 사고의 필연적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는 말이다.” 이동연, 정원옥, 노명우, 이종찬의 글을 실었는데, 노명우 아주대 교수의 글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야기의 묵시」가 음미할 만하다. 그는 말년의 칸트가 한 말 ‘사유자에게 동반자는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을 인용, 세월호의 묵시를 강조한다. “국가가 무능력을 여전히 유지할 때 비상구는 세계운행의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세계운행의 관행에 정지명령을 내리기 위해 ‘그 날’을 기억하는 사회에 있다. 희생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거기에 있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세월호는 우리 사유자의 동반자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재난의 성찰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라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의도로 특집을 구성한 곳은 <창작과비평>. 김종엽, 김엘리, 정연우, 유정길의 글을 실었다. 사회와 분단체제, 신군사주의, 한국언론, 운동하는 삶의 문화를 각기 주제로 내걸어 구체적 대안을 찾아보려는 기획이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의 글 「불확실한 삶에서 움트는 신군사주의」는 꼼꼼한 독해를 필요로 하는 글로 보인다. ‘감정의 정치학’을 복기할 것을 주문한 김 교수는 분단체제하에서 오랫동안 구조화된 군사주의가 신자유주의와 만나 단순한 폭력과 억압의 지배방식에서 벗어나 대중의 삶 속에서 자기이익과 부합하며 작동하는 新군사주의로 진화했다고 진단한다. 세월호와 함께 이후 되풀이된 군내 폭력 같은 비극적 사고를 낳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 셈이다.


부산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오늘의 문예비평>은 다양한 기획을 꾸렸지만, 역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특집 「소문의 중식, 소문의 정(正/政)체」다. 경제학자 류동민, 김필남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임태훈의 글을 묶었다. 세월호를 둘러싼 ‘출처 없는 말’을 자각하고, 이를 문제화한 <오늘의 문예비평> 특집은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말들 즉, ‘소문’과 관련한” 내용으로 경제, 정치, 문학적 맥락에서 소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나 소문의 양상을 다뤘다.


‘무책임을 향한 중단 없는 질문’을 「책머리에」 제목으로 뽑은 <역사비평>은 무책임의 역사와 제도에 관한 성찰로 특집을 꾸렸다. ‘와우 아파트 붕괴’(염복규), 원자력 안전(박진희), 한국의 관료제(강원택), 재벌의 무책임 경제(장진호) 등을 다뤘는데, 이들이 ‘세월화’와 종횡으로 연계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개발독재형 압축근대화의 그늘을 외면한 권력의 무책임성, 예견되는 원전판 세월호 참사와 이 참사를 막는 길, 그리고 ‘관피아’ 문제를 야기한 한국 관료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결코 축소되지 않는 재벌의 무책임 경제 등은 곱씹어볼 주제다.


인천 새얼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황해문화>는 특집 「‘공공성’을 생각한다」를 내걸었다. 「국가를 생각하며 공공성을 묻다」라는 권두언에서 김진방 교수는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라는 우리 주위에 형성된 흐름을 지적하면서, 제 삼의 흐름으로 ‘공공성’에 눈을 돌리자고 말한다. 이에 맞춰 특집의 글들은 공공성의 개념과 쟁점(고세훈), 공공성의 재구성(고원), 한국사회에서 공공성 논의(류동민), 공공성 실현 전략(하승우)에 밑줄을 쳤다. 특히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의 글 「공공성의 재구성: 성장은 공공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가」는 분명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적 진단으로 읽힌다. ‘국가주의적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한국사회가 실현해야 할 올바른 공공성은 사적 영역의 반정립으로서 공적 영역을 단순히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실현함을 통해서 공동체와 균등하고 조화로운 공존과 번영이 이뤄지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노명우 교수가 인용한 칸트의 말처럼, 지금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사유의 동반자로 내려왔다. 새로운 전망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세월호는 苦海의 바다에서 계속 지식의 성찰을 닦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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