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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名論 통해 문제 접근 … 해결책일까? 해소책일까?
唯名論 통해 문제 접근 … 해결책일까? 해소책일까?
  • 교수신문
  • 승인 2014.09.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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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심신 문제』 백도형 지음|아카넷|432쪽|26,000원

현대 심리철학에서 심신 문제 논의가 일단 어떤 의미에서건 속성이 실재함을 전제하고 진행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저자의 입장은 심신 문제에 대한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백도형 숭실대 교수의 저서 『심신 문제』는 중후하면서도 야심찬 내용을 담고 있는 역작이다. 철학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는 심신 문제에 대해 저자가 20년 넘게 몰두해온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후하며, 이 문제에 대한 기존의 모든 해결책을 비판하고 독자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야심차다.


백 교수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심신 문제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이중적 측면을 조화롭게 해명하고자 하는 문제다.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계에 속하는 하나의 생물종으로서 특히 그 신체적 측면에서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정신적 측면은 자연 법칙의 지배를 벗어난 자유로움과 합리성 및 주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표면상 서로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범주에 속하는 인간의 신체적 특성과 정신적 특성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이라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룰 수 있는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데카르트는 신체와 정신이 각각 ‘延長됨’과 ‘생각함’을 본질로 갖는 서로 독립된 실체들이라는 ‘실체이원론’을 제안하면서, 이 두 실체가 인과적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인간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체와 독립된 정신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철학자들은 오늘날 소수에 불과하다. 심신 문제에 대한 현대 철학의 논의는 일반적으로 신체라는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 단일한 실체가 물리적 속성 및 정신적 속성이라는 두 범주의 속성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 두 범주의 속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특히 1970년대부터 심리철학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비환원적 물리주의’는 정신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에 의존해있기는 하지만 후자로 환원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물리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정신적 속성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 심리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김재권 브라운대 석좌교수는 비환원적 물리주의를 받아들일 경우 놀랍게도 정신적 속성이 아무런 인과적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附隨現象으로 전락해버림으로써 ‘제거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귀결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적 속성이 물리적 속성에 기능적으로 환원돼야 한다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논증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심리철학 논의에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논의는 여러 면에서 김재권의 비환원적 물리주의 비판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비환원적 물리주의가 제거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김재권의 논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김재권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기능적 환원주의’ 또한 제거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에 따르면, 속성들이 실재한다는 기본적 전제와 더불어 물리주의를 받아들이는 한 오직 제거주의만이 심신 문제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저자는 제거주의가 정신적 속성의 실재성을 부정함으로써 우리의 상식적 직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비환원적 물리주의, 기능적 환원주의, 제거주의 모두가 난점을 갖고 있다면, 심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감한 제안을 한다. 이 세 입장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 전제, 즉 정신적 속성이든 물리적 속성이든 도대체 속성이라는 존재자가 세계에 실재한다는 전제 자체를 거부하고, 실재하는 것은 오직 개별자들뿐이며 이른바 속성이라는 것은 인식 주체의 관점이 반영된 언어 표현으로서의 술어에 불과하다는 형이상학적 唯名論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러한 유명론의 가장 만족스러운 형태로, 저자는 특정한 4차원 시공간 위치를 갖는 點으로서의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사건들이 세계를 이루는 근본 개별자들이라는 ‘4차원 개별자론’을 제안한다. 그의 4차원 개별자론에서 개별 사건의 ‘속성’ 및 그 ‘인과적 영향력’에 대한 논의는 존재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어떤 특정 이론 체계 내에서만 성립하는 언어 차원의 논의로 이해된다. 특히 저자에 따르면 4차원 개별자론에서는 비록 사건들로 이뤄진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지만 이 단일한 세계가 언어 차원에서 다양한 이론들로 서술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됨으로써 심리학을 비롯한 제반 학문 분야의 자율성이 보장되며, 이에 따라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 특성의 자율성 또한 보장될 수 있다.


심신 문제에 대한 일반적 해결책으로서 저자가 제안한 속성 유명론 및 그의 4차원 개별자론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제안이 중요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속성의 언어 독립적 실재성을 부정하면서도 개별자의 언어 독립적 실재성은 인정하는 저자의 입장이 과연 일관성 있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가령 그가 말하는 세계의 근본 개별자들은 ‘4차원’, ‘시공간’, ‘위치’, ‘점’, ‘순간’, ‘사건’ 등의 용어들을 통해 서술돼야만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서 이 개별자들이 그것들을 서술하는 우리의 언어와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현대 심리철학에서 심신 문제 논의가 일단 어떤 의미에서건 속성이 실재함을 전제하고 진행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전제 자체를 거부하는 저자의 입장은 심신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아예 심신 문제 자체를 사이비 문제로 취급해버리는 ‘해소책’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의문 또한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들과는 별도로, 논문 중심의 연구 평가 체제로 인해 긴 호흡의 저서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랜 기간 묵묵히 수행해온 연구를 바탕으로 마침내 400페이지가 넘는 역저를 완성해낸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성실함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백 교수의 이번 저서에 대해 앞으로 철학계에서 활발한 논쟁과 평가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진호 서울대·철학과
필자는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상언어의 개념틀과 과학언어의 개념틀이 제시하는 세계상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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