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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허약한 정당체제 개혁만이 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허약한 정당체제 개혁만이 길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9.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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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치


전환기 한국 종합진단, 지속가능발전 탐색

최근 우리 사회는 경제, 사회,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구조적 리모델링을 요구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 근대화 50년 경제 성장은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그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으며,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이것들이 전방위적으로 구조화돼 가고 있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발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 ‘전환기 한국 종합진단, 지속가능발전 탐색’을 주제로 기획연재를 마련, 한국사회의 지속가능발전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유엔 등 국내외 관련기관의 지식과 경험을 참조해 과학기술, 교육, 정치, 재정, 경제, 경영, 문화, 역사문화, 보건, 안전, 고령화, 여성, 중소기업, 농촌, 국토환경, 주거, 생태, 수자원, 기후변화, 원자력, 도시건축, 디자인, 통일 등 23개의 주제를 선정했다. 집필진은 관련 분야의 대표적 학자와 국책연구원 원장 등으로 구성했다. 이 연재를 통해 구석구석(facts)을 파헤쳐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needs)를 통합적(integral)으로 해결하고, 나아가 환경권을 보호하면서 삶의 질(well-being)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한국형 지속가능발전 모델 개발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하고 위기를 맞고 있다. 진보를 대표하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중요 요인 중의 하나로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허약한 정당체제’를 지적한다. “한국의 정당체제가 사회 속에서 정치적으로 유효한 집단들을 기반으로 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 사이에서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고 공직을 획득할 수 있느냐하는 공직 추구를 향한 투쟁이라는 성격을 중심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조직하는 정당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점을 강조한다.


한국정치에서 좌/우 또는 진보/보수대립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면서 사생결단적 투쟁처럼 나타나게 되는 근본 이유로 사회 갈등에 뿌리 내리지 못한 나쁜 정당들이 서로 투쟁만하는 허약한 정당 체제로 인해 시민시회의 운동이 정당의 역학을 대행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당과 좋은 정치 지도자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최선이다”고 주장한다.
한편, 합리적 보수를 대표하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전 이사장도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로 “정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당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회의원도 그렇고 당 대표도 그렇고 국가발전 비전을 고민하는 정당이 별로 없고, 경제 발전, 사회통합, 국제관계 등등 많은 과제가 막 나오는데 이걸 풀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경영을 가진 정치가 나와야 선진화도 되고 통일도 된다”는 주장을 편다.


분명 한국 사회는 뒤틀리고 왜곡된 정당 구조로 인해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극단과 배제의 증오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법과 원칙이 무시되면서 감성적 포퓰리즘이 정치판을 지배하고, 국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특정 인물의 지시와 통제에 맹종하는 전근대적 계파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이로 인해 한국 정당들은 국민들의 실생활 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둘러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잡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다. 여기에 집권 여당의 지도부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만을 살피면서 무기력화 되고 있다. 야당은 정당고유의 기능을 멀리한 채 ‘운동의 정치’, ‘거리의 정치’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민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허약한 정당체제가 한국 정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과거와 같은 형태의 정치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정치 관계법 조항 몇 개 고친다고 정치 개혁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국회 선진화법을 만들었다고 국회 공전과 파행이 멈춰서지는 않는다.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오른쪽 표에서 보듯이, 지속가능한 정치 발전을 위한 해답의 열쇠는 원내중심 정당 체제를 구축해 상생의 정치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원내 중심 정당 체제란 한마디로 원외의 정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개혁 과제는 첫째, 당원과 일반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는 원외 대표 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한국 정당에서 당 대표는 과거와 같은 제왕적 총재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당 대표는 공천권을 쥐고 있고, 주요 당직에 대한 배분권을 갖고 있으며, 국회의 요직을 임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정당의 대표는 여전히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권력’보다는 ‘개인화된(personalized) 권력’을 향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런데 이런 원외 당 대표 체제는 당내 계파정치를 강화시키고 당내 정치를 대선을 향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주범이다. 당 대표가 지역에 바탕을 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일 경우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당에서는 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당 대표를 추종하는 주류 세력과 반대하는 비주류 세력 간에는 끝없는 계파 갈등이 지속된다. 親李 대 親朴, 親盧 대 非盧라는 계파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 강제적 당론을 폐지해야 한다. 무쯔(Mutz)는 “긴밀하고 끈끈하게 묶여진 집단은 통일성과 균질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한편으로 지지자들을 정치적으로 적극 동원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나와 남을 이분법적 구분하고 절대주의적 선악대결을 벌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개방성과 관용의 전제로 한 토의를 시도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의회란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다.


그런데 한국 의원들은 자신들이 당 대표, 대통령과 같이 동등하게 국민을 대변하는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인식이 약하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당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가 임명하는 의원 출신 사무총장이 당의 모든 운영과 재정을 관장하며, 이와 같은 왜곡된 정당 구조 속에서 지시와 복종의 불문율이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의원들이 강제적 당론에 종속되는 상황이 고착화되고 있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여야가 국회에서 강제적 당론과 강제적 당론으로 격돌하면 대화와 타협의 상생 국회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의원들이 당 조직으로부터 개인적 자율성을 상당 수준 확보해서 원내 의사과정에서 자유롭게 토의에 참여하고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선거제도의 변혁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상향식 공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중앙당이 지배하는 공천 제도 하에서는 의원들의 자율성을 기대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보스정치와 머신 정치(machine politics)로 얼룩졌던 미국 정당들은 1903년 위스콘신주에서 처음으로 주민들이 정당의 공직 후보를 직접 뽑는 예비선거제도 (primary election)를 도입함으로써 대변혁을 이뤄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치열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사람이 공천을 받는 ‘충원 구조’의 변혁만이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 문화에 부합하는 ‘한국형 국민공천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더불어 망국적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선거 제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대안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고 독일에서와 같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넷째,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 보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정당 국고 보조금 제도는 1981년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 관제 야당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기관도 아닌 일종의 임의 단체인 정당이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로 운영돼 매년 수백억원의 국고 보조금을 보조 받는 구조는 오히려 비대한 원외 정당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만약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를 존속시키려고 하면 당비 매칭 펀드제를 채택해서 진성 당원들이 납부하는 당비와 연계해서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또한 정당 국고보조금이 정당의 정책 정당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약하면, 원외 중심 정당체제와 지역 패권 정당 체제가 무너지고 원내 중심 정당체제가 구축되면 지지자 중심의 정책 정당이 만들어지고, 국회의원들은 강제적 당론에 구속되지 않고 자율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의정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럴 경우, 정당들은 국가 발전 가치를 추구하고 되고, 여야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와 정책 연합이 가능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생산적 정치 또는 국가 경영정치가 구축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제 한국 정치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이 분명해 졌다. 좋은 정당과 국가 경영 능력을 갖춘 좋은 리더를 통해 의회중심의 정치를 복원·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지도자는 저절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에 대한 안목, 국가 경영 능력, 도덕성, 서민적 사고, 국민 소통 기술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화려하게 부상돼야 한다. 국민들이 포퓰리즘과 지역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언론이 미래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검증을 게을리 하면 절대로 좋은 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 분명 좋은 지도자는 ‘책임지는 유권자와 언론’에 의해 결정된다. 아마존 강의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 엄청난 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나비 효과의 핵심이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작지만 의미 있는 정당 체제의 변화로 지속가능한 정치 발전의 나비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김형준 명지대·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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