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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한국노동법학회 추계학술대회 ‘최근 10년간의 한국노동법의 평가와 과제’
학술대회 : 한국노동법학회 추계학술대회 ‘최근 10년간의 한국노동법의 평가와 과제’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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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2:27:54
“민주헌정 이후에도 여전히 노동법은 민주화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퇴보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나타나는 일관된 흐름은 ‘노동보호 규제의 완화와 단결활동 규제의 강화’ 경향이다.”

지난 5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열린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추계학술대회에 참가한 노동법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최근 10년간 한국노동법의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자처한 김영삼·김대중 정부 10년간의 노동법 현황을 재점검하면서 대안을 모색했다. 노동법학자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특히 IMF 이후 한국사회는 자본의 효율성 보호에 너무 경사돼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데 이렇다 할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학술대회는 두 개의 주제로 나눠 진행됐다. ‘노동법제 변화의 평가와 과제’에서는 문헌상의 법제의 변화를 확인했다면, ‘노동법 해석·집행의 평가와 과제’에서는 판례를 통해 지난 10년간 변화의 추이를 살핀 것이다. 이 자리에는 하경효 고려대 교수(법학), 이광택 국민대 교수(법학), 이흥재 서울대 교수(법학), 김선수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철수 이화여대 교수(법학)가 발표자로 참가했다.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명료하다.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문민정부-국민의 정부라는 ‘민주적 함의’를 가시화한 시기에 과연 노동법에서도 그만큼의 민주화가 이뤄졌냐는 것. 문제제기만큼 대답도 명료했다. ‘그렇지 않다’. 김인재 상지대 교수(법학)는 “노동법학계 내에서도 현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현재 노동자의 권익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진단했다.

민주주의 이행기의 깊은 그늘
이흥재 교수는 발표문 ‘민주헌정이후 노동판례 경향의 특징’을 통해 근로3권의 법리적 해석에 깃든 현실 변화를 추적했다. 고용안정보다는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경영해고 및 해고의 절차적 제한을 완화하고, 비정규직고용자를 대량 고용할 수 있도록 법적계기를 마련했는가하면, 고용승계의 부담 없이 효율적인 기업변경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 등 판례는 ‘노동보호 규제 완화’ 일색이다.

이 교수는 “민주헌정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경향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한마디로 ‘노동보호 규제의 완화와 단결활동 규제의 강화’ 경향”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 보호 규제는 이완화하려는 유연한 인식기준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3권 특히 단체행동권의 보장은 규제하려는 이중적 판단 기준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인식의 기층에는 경쟁원리를 강조하는 자본의 효율성을 위해 공생원리에 입각한 노동보호의 사회적 형평성을 평가절하 함으로써 법리적으로 ‘노동법의 시민법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하나의 기준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문민-국민의 정부를 지나면서도 우리 노동법은 여전히 ‘사회법적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다.

김선수 변호사 역시 같은 입장이다. ‘공권력의 노동사건에 대한 법집행의 평가와 과제’를 통해 제기한 김 변호사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노동자들이 단순 파업에 참가하는 것도 쉽게 ‘위법’으로 과잉 해석될 우려가 많다는 것.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헌법상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평화적인 파업조차도 형법상의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며 법원에 의해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고 있는 정당성의 요건을 모두 구비해야만 위법성이 조각돼 형사책임이 면제되는 것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민주헌정기 사회환경 주목하자”
이 같은 법 해석과 운용은 노동현장에서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절대적인 우위에 서게 한다. 김 변호사는 “우선적으로 시급한 것은 쟁의행위를 헌법상의 기본권행사로 이해하고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따라서 형사처벌과 징계해고가 뒤따르는 쟁의행위를 사실상 행할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비정규직으로써 고용불안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흥재 교수가 제기한 것처럼 지금 과제는 “자본의 효율성 보호에 너무 경직돼 있는 현재의 판례법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하는 데 있다. 민주헌정 직후의 당시 사회환경을 주목할 수도 있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IMF 이후 경제위기 부담 분배에서도 ‘고통’을 짊어진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는 국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는 아직도 형성중에 있으며, 국가는 여전히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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