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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논문 편수’ 삭제하고 인문사회 ‘저서’ 비중 강화
공학 ‘논문 편수’ 삭제하고 인문사회 ‘저서’ 비중 강화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9.22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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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21플러스사업 평가지표 개선(안) 주요 내용은

“인문학을 따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다.” 지난 17일 공청회에서 공개한 BK21플러스 평가지표 개선안을 두고 교육부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내년 있을 중간평가에 대비해 정책연구진(연구책임자 우제창 목포대)이 마련한 평가 개선안(시안)의 핵심은 학문분야별 특성에 따라 평가지표를 8가지로 나눴다는 점이다.

현재는 크게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분야로 나누고, 다시 과학기술 기초와 응용, 인문사회, 디자인·영상의 4개를 구분해 일부 지표의 인정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수준이었다. 내년 중간평가 때는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생명·수산·해양학, 인문학, 사회과학, 과학기술 기반 융·복합, 인문사회 기반 융·복합 등 8개 분야로 평가한다.

학문분야 특성 반영 8개 학문분야로 나눠 평가 

정책연구 책임자인 우제창 목포대 교수는 “의·생명을 예로 들면 지금은 과학기술 응용에 속해 있어 산학협력도 열심히 해야 하고, 특허도 내야 하고, 의대에 외국인 학생도 뽑으라고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며 “학문분야별로 평가하면 현실에 맞지 않은 이런 어려움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약학과 인문사회 기반 융·복합 분야 평가지표 개선안에서는 실제로 ‘외국인 학생 비율’지표를 삭제했다.

의·약학 분야가 ‘산학 간 인적 및 물적 교류’를 제외하고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사회 기여 실적 및 계획’을 신설한 것도 학문분야의 특성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다. 자연과학 분야 또한 산학협력 대신 ‘과학의 대중화 등 대외협력·사회기여도 실적 및 계획’을 신설했다.

반대로 공학은 산학협력을 35점에서 40점으로 강화했다. 산학협력 실적 중 특허와 기술이전은 각각 6점에서 10점으로 확대하고, 산업체 및 해외 연구기관 연구비 수주실적 지표를 신설해 10점을 배정했다. 해외에서 연구비를 수주할 때는 2배의 가중치를 부여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전일제 대학원생 비율’이나 ‘교육과정의 융·복합 여부’, ‘교차 지원 대학원생 수’ 등을 신설한 것은 융·복합 분야만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다.

SCI 논문 편수 중심의 양적 평가에서 논문의 영향력 지수(Impact Factor) 등 질적 평가를 강화한 것도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공학 분야가 대표적이다. 공학 분야는 참여교수 연구역량을 평가하는 항목에서 아예 ‘교수 1인당 국제 저명 학술지 환산 논문 편수’를 뺐다. 대신 ‘국제 저명 학술지 논문의 환산 보정 IF’ 지표 배점을 2배로 확대했다. 공학 분야 코디네이터를 맡은 박영준 서울대 교수는 “IF에 이미 포함돼 있다고 보고 연구실적에서 논문 편수는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저술 비중을 대폭 확대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평가지표 개선안은 더 극적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학술저서’의 질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를 신설했다. 참여교수 연구역량을 평가할 때 ‘학술저서의 탁월성 정도’를 따로 평가한다. 참여교수 연구역량에서 차지하는 배점도 인문학은 123점 가운데 15점, 사회과학은 127점 가운데 8점이다. 대신 논문 편수 지표는 35점에서 인문학은 20점, 사회과학은 30점으로 줄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문학은 논문이나 저서가 갖는 학문적 선도성과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한 정도(10점)를 신설했다. 사회과학은 학문 선도성과 함께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정도(16점)를 평가한다. “한국의 물리학과 미국의 물리학은 다를 수가 없지만 한국의 사회과학과 미국의 사회과학은 같을 수가 없다. SSCI 논문을 강조하다 보니 젊은 교수들이 한국 문제에는 관심 없다. 미국 한 주의 쓰레기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SSCI를 강조한 것은 세계적 연구방법으로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지 미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과학 분야 코디네이터를 맡은 하연섭 연세대 교수의 설명이다.

학위 심사과정의 엄격성 강조

석·박사급 학문후속세대 양성이라는 사업 취지에 맞춰 ‘대학원 교육과정 내실화’에도 초점을 뒀다. ‘대학원생 연구역량’과 ‘대학원 교육과정’ 지표 비중을 확대했다. 대부분 학문 분야가 대학원생 연구역량은 30점에서 35점으로, 교육과정 구성 및 운영은 25점에서 30점으로 배점을 높였다.

특히 눈에 띄는 지표는 신설한 ‘학위 과정을 위한 교육과정 구성 운영 현황 및 계획’이다. 무엇을 보기 위한 지표일까. 인문학 분야 코디네이터를 맡은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어느 대학을 봐도 학위 수여 과정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 논문 심사서도 1페이지밖에 안 된다. 약간 희석해서 표현했지만 처음에는 ‘학위 수여를 위한 심사과정의 엄격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연섭 교수는 “국내 대학원은 교육과정이 표준화돼 있지 않고, 최소 기준도 없다. 한마디로 생산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대학원생 논문 발표 실적을 제출할 때 석사과정 학생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대학원 교육 내실화를 위한 조치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특수성을 반영했다. 하 교수는 “많은 분들이 석사과정 학생에게 논문을 쓰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관련 분야의 문헌들을 섭렵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단기적으로 논문 생산에만 매달려서는 경쟁력 있는 학문후속세대를 키우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진 구성에서 ‘전공 학과(학사 단위) 전체 교수 중 참여교수 비율’이 새로 들어갔다. 우제창 교수는 “현재는 70% 이상만 참여하면 된다고 하니까 거의 70%에 맞춘다. 그런데 나머지 30%의 교수는 참여를 안 하니까 교육과정 구성도 어렵고, 대학원생 장학금 주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래서 100% 다 들어오면 만점을 주도록 했다. 대신 연구실적에서는 불리한 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됐던 평가지표의 합리성을 높이고, 비슷한 지표는 통폐합해 평가 부담을 완화하려는 노력도 담겼다. BK21사업뿐 아니라 다른 대학평가에서도 논란이 됐던 ‘외국어(영어) 강의 비율’을 삭제했다. ‘취업률’과 ‘취업의 질적 우수성’을 통합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는 아예 ‘취업률 및 질적 우수성’ 대신 ‘배출한 학위자의 해당 전공 분야 취업의 우수성’을 평가한다.

정책연구진이 새로 마련한 평가지표는 기존 사업단 중 하위 50%와 신규 진입하려는 예비사업단을 함께 평가해 지원 대학을 최종 결정하는 ‘재선정평가’에 적용한다. 현재 지원받고 있는 사업단이 2년간의 실적을 평가받는 ‘성과평가’는 분야에 따라 ‘신진 연구인력의 1인당 국제저명 학술지 논문 게재 환산 편수’나 ‘국제 공동연구 실적’ 정도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없다. 교육부는 이번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추가로 반영해 10월 중 ‘BK21플러스 평가 개선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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