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어떤 콤플렉스든 직접 그 원인이 되는 갈등과 직면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콤플렉스의 극복에는 용기, 의지, 감당해 낼 자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무의식에 억압된 갈등을 의식으로 불러와 투명하게 응시하며 해부해 볼 때 콤플렉스로 응집되고 은폐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콤플렉스에 비롯되는 습관들을 의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한 콤플렉스일수록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어렵고, 그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진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짓는 용기와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콤플렉스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콤플렉스에서 자아를 떼어 내는 순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주기도 한다. 이것은 이별의 과정이자 결합의 과정이며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포기할 수도 없고 반복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변혁하고 싶다면 내면을 속박하는 콤플렉스부터 자각하고, 그것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의 모습이 타고난 성격과 기질, 사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이미지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여성이 가정과 양육을 전적으로 맡아야 한다거나, 감상적이고 이해심이 많으며 부드럽고 보살피며 배려해야 한다는 ‘미덕’의 우산 속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미덕의 우산을 벗어던질 때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 낼 용기도 필요하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앞서 간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미완의 숙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은폐되고 지워졌기 때문에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이 무엇을 얼마나 더 이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으며, 결국 성평등은 발견하고 발명해야 하는 것이 됐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겨 온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경계를 발견하고 무너뜨릴 방법을 발명해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고통을 배가하는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를 자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의식이 변한 여성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화한 사회는 다시 여성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은 성취됐다는 자부심을 갖기는 아직 이르다. 혹독한 억압으로 점철됐던 여성의 삶이 이만큼이나마 짐을 덜었다는 것만으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이뤘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야 한다. 그 와중에 개인적 노력과 책임으로 성공을 추구하라고 다그치는 신자유주의는 여성의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개인으로 파편화해 ‘여성’이라는 범주를 해체하고 있다. 또한 소비적 물질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실패한 삶은 가차 없이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사회적 문제까지 개인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현대 사회의 여성은 지적 성취와 경제적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성과 동등한 조건을 획득하지 못한 탓에 사회 곳곳에서 집요한 성차별과 경제적불평등이 여성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것 자체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말하기보다 실상 남녀 간의 비대칭적이고 불균형한 권력의 문제를 낳는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경계를 긋고 정해진 자리와 규범화된 태도를 강요하며 한 가지 질서를 만들어 낼 때 이는 경계선을 사이에 둔 남녀 모두에게 콤플렉스를 심어 주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함과 동시에 개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상투적이고 식상한 빛바랜 꿈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시 빛을 던져 새롭게 꺼내들어야 할 이상이기도 하다.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 오래된 이상은 지금 여성 콤플렉스를 왜 다시 불러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 ‘여성을 위한 모임’이 엮은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7』((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4.9)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여성을 위한 모임은 김영란 숙명여대 교수, 강기정 백석대 부교수, 방금희 번역가 등 여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연구자 8인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