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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세계일주
사마천의 세계일주
  •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
  • 승인 2014.09.1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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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正史의 체재를 확립한 역사서의 전범이다. 또한 간결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사기』의 문장은 문학작품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과거의 문인들에게 『사기』는 서사 산문의 전범으로서 六經과 마찬가지로 필독서나 다름없었다. 
   사마천은 어떻게 이처럼 탁월한 문장력을 지니게 됐을까. 그는 『사기』 「太史公自序」에서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龍門에서 태어나 河山의 남쪽에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다. 나이 열 살에 古文을 외고, 스무 살에 남쪽으로 가서 江水와 淮水를 유람했다. 會稽로 올라가 禹임금의 무덤을 찾아보고 舜임금이 묻힌 九疑山을 구경했다. 沅水와 湘水에 배를 띄우고 북쪽으로 汶水와 泗水를 건넜다. 齊나라와 魯나라의 도읍에서 공부하며 공자의 유풍을 보았으며, 맹자가 살았던 鄒와 에서 鄕射禮를 거행했다. , 薛, 彭城에서 곤란을 겪고 梁, 楚를 거쳐 돌아왔다. 그리고는 낭중이 돼 황제의 명령에 따라 서쪽으로 巴, 蜀 이남, 남쪽으로 , , 昆明을 섭렵하고 돌아왔다.”(司馬遷, 「太史公自序」, 『史記』) 
   사마천의 탁월한 문장력의 원천은 다름아닌 여행이었다. 중원 한복판에서 태어난 사마천은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중국 전역을 일주하는 대장정에 올랐다. 그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취를 추적하고 역사의 현장을 탐방한 역사학자였으며, 성현을 선망해 儒學의 총본산을 찾은 유학생이었으며, 武帝의 대외 경략을 선두에서 실행한 ‘파이오니어’였다. 사마천의 여행 경로는 漢 제국의 판도를 넘어 중국인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까지 뻗어 있다. 사마천의 여행은 당시로서는 세계일주나 다름없었다. 후대의 문인들은 사마천의 세계일주를 遠遊 또는 壯遊라고 일컬었다. 
   宋代의 문호 소철이 “사마천은 천하를 다니며 사해의 名山大川을 두루 유람하고 燕, 趙의 호걸들과 교유했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호탕하고 제법 기이한 기운이 있다”(蘇轍, 「上樞密韓太尉書」, 『欒城集』)라고 주장한 이래, 문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많은 여행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문인들의 공통적인 관념이었다. 여행을 통한 호연지기의 배양이 문장력을 향상시킨다는 文氣論에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사마천의 세계일주가 『사기』의 내용과 문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마천의 세계일주는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였던 ‘인간 사마천’을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마천의 여행 편력보다는 ‘나이 열 살에 고문을 외었다’는 자술에 주목하고자 한다. 스무 살부터 시작되는 그의 여행 경험에 앞서 십년 간의 독서 경험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놓치면 곤란하다. 그 십년간의 독서 경험이 없었더라면 사마천의 세계일주는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정도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되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행의 감동과 여운은 독서의 넓이와 깊이에 비례한다. 독서 없는 여행이 경험치를 더하기로 늘려주는 산술급수라면 독서와 여행의 병행은 경험치를 곱하기로 늘려주는 기하급수이다.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면, 그 원인은 여행 경험의 부족이 아니라 독서 경험의 부족이다. 
   계속되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해외여행객의 지출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제 사마천의 원유는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해외여행객과 달리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출판시장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물론 여행의 목적은 여러 가지다. 휴식을 위한 여행도 필요하고, 경치를 즐기는 여행도 좋다. 하지만 여행이 변화와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독서는 필수다. 이 점에서 조선 초기의 문장가 서거정의 ‘독서 여행 병행론’의 일독을 권한다. 
   “선비는 먼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집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와 고금의 일을 알 수 있거늘, 어찌 먼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선비는 먼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가? 왕명으로 사방을 다니며 산천을 두루 유람하면 문장력과 기상을 기를 수 있거늘, 어찌 먼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만 권의 책을 읽어 본체를 확립하고, 사방을 유람해 이를 적용하는 데 통달한 다음에야 대장부의 할 일이 끝날 것이다.”(徐居正, 「送李書狀詩序」, 『四佳集』)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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