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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선비를 살찌우던 ‘肥儒魚’
가난한 선비를 살찌우던 ‘肥儒魚’
  • 교수신문
  • 승인 2014.09.1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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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 113. 청어

‘청어 굽는데 된장 칠하듯’이란 살짝 보기 좋게 바르지 않고 더덕더덕 더께가 앉도록 지나치게 발라서 몹시 보기 흉함을,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란 북한어로 눈이 내릴 때는 대구가 많이 잡히고, 비가 올 때는 청어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靑魚는 몸 빛깔이 청록색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옛날에는 청어가 값싸고 맛이 있어 딸깍발이들이 잘 사먹는다 하여‘肥儒魚’로 불렸다고 한다.


청어(Clupea pallasii)는 경골어강, 청어목, 청어과에 속하며, 주로 북태평양(한국, 일본, 러시아, 알래스카, 미국, 멕시코)에 사는지라 ‘태평양 청어(Pacific herring)’라 부른다. 세계적으로 청어과에는 전어, 밴댕이, 정어리, 준치 등 200여종이 있다. “전어 굽는 냄새에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온다”고 했던가. 수온이 2∼10℃에 사는 냉수성인 바닷물고기로, 예전에는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수많이 잡혔으나 해가 갈수록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잡히지 않는다. 같은 과의 정어리가 자취를 감추듯이, 일찍이 없었던 지구온난화로 해수 기온이 오른 탓이다.

▲ 청어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몸빛은 등 쪽은 다소 푸른빛을 띠고, 배 쪽은 은백색이며, 나머지는 아무런 반점 하나 없이 깨끗하고 말끔하다. 몸뚱이는 좌우 양편에서 눌려져 납작(側偏)한 편이고, 몸통 길이는 33㎝ 안팎으로 기름기가 많은 어류라 눈 주위로 기름눈까풀(눈을 덮고 있는 지방질의 눈까풀)이 있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앞쪽으로 약간 돌출되고, 등지느러미는 1개로 몸의 중앙에 위치하며, 꼬리지느러미는 두 갈래로 가운데가 깊이 파였다(forked tail-fin). 비늘은 떨어지기 쉬운 둥근비늘(圓鱗)이며, 배 정중선을 따라 날카로운 모비늘(稜鱗)이 1줄로 난다. 아래턱에는 이(齒)가 전연 없고, 위턱에는 흔적만 있어서 먹이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갑각류의 유생 따위를 아가미로 걸러 먹는다(濾過攝食, filter feeding).


산란기는 4월경으로, 이맘때면 한류가 흐르는 연안에서 무리를 이뤄 內灣이나 河口로 달려와 주로 해조류에 산란한다. 다른 물고기도 그렇지만 한번에 2만 남짓한 알을 낳지만 몽땅 딴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히고 고작 한두 마리만 새끼로 살아남는다고 한다. 청어는 3~4월경, 산란하기 전의 봄 청어가 가장 맛이 좋고, 무침, 구이, 찜, 회, 조림 등 여러 방법으로 조리하며, 그 중에서 등 쪽에 알뜰히 칼집을 드문드문 내고 굵은 소금을 뿌려두어 물기를 뺀 다음에, 석쇠를 달군 후 기름을 바르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청어구이가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것이 일품이다.


청어에는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비타민A, 칼슘, 철분 등의 영양소가 고루 들었으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한다. 필자도 손끝 매운 집사람이 겨울알배기청어를 뚝배기된장국에 박아 자박자박 끓여 줘서 줄곧 豊味를 즐겼었는데, 노후에 이가 시원치 않은 까닭에 잔가시가 겁나 요샌 청어 먹기를 꺼리게 됐다.
더불어 예로부터 즐겨 먹어온 청어과메기가 있다. 과메기는 겨울이 제철이다. 한겨울에 잡은 때깔 좋은 청어의 배를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엮어 그늘진 곳에서 겨우내 얼리면서 말린 과메기 말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날씨가 풀리는 설날 전후까지 과메기를 말리니, 황태를 덕장건조대에서 말리듯 밤낮의 큰 일교차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보름 가까이 숙성시킨다. 이른바 ‘과메기’란 ‘貫目靑魚’, 즉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꿰어(貫目) 말렸다는 뜻인데, 포항 근방에서는 ‘목’을 흔히 ‘메기’로 부르니 결국 ‘貫目’이 ‘과메기’가 된 것이란다.
유례없이 청어가 사라지다 보니 이젠 청어 대신에 꽁치를 말려 관목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릿빛이 돌면서 기름기가 반질반질한 푸진 과메기 한 점을 생미역에 올리고 실파와 초고추장을 곁들여 싸쥐고는 아가리가 찢어지게 한 입 틀어넣어 아귀아귀 씹는다. 물론 소주 한 잔 걸치는 것은 당연지사, 글을 쓰는데도 어찌 이리도 군침이 도는 것일까.


그런데 유럽인들도 청어를 즐긴다. 필자도 네덜란드 길거리 노점에서 체면 불구하고 청어 몇 점을 먹어봤다. 머리와 내장을 손질한 청어를 식초에 절여놓은 것으로, 통째로 들고 씹어 먹는데 맥주나 피클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물고기나 고래, 돌고래, 펭귄들은 말할 것 없고, 나무에 사는 새나 갈매기 같은 바닷새도 다들 등은 검푸르고, 배는 구아닌(guanine) 결정 때문에 은빛이다. 하늘에서 태양이 비치면 위는 밝게 산란·반사하고, 아래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다시 말하면 청어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등짝 색과 어둔 바다 밑바닥 색이, 또 아래서 치보면 뱃바닥의 흰색과 하늘에서 비추는 햇살이 짐짓 비슷해져(blending) 천적(포식자) 눈에 잘 띄지 않고, 또 먹잇감(피식자)이 눈치채지 못한다.


이렇게 햇빛에 노출되는 등은 어두운 색, 그늘진 배는 밝은 색이므로 주변 환경과 색의 조화(일치)를 이뤄 몸을 방어, 은폐하니 일종의 僞裝(camouflage)이다. 이런 현상을 防禦被陰(counter shading)이라 하는데, 이런 원리를 처음 연구 발표한 畵家 테이어(Thayer)의 이름을 따 테이어 법칙(Thayer′s law)이라고 한다. 두말할 것 없이 등의 짙은 색은 나름대로 자외선은 차단하는 데 한몫을 한다. 아무튼 이렇게 여러 동물들의 체색이 흑백배색을 하는 이유를 알았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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