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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서의 여교수
학자로서의 여교수
  • 신명아 경희대 · 영문학
  • 승인 2014.09.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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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서의 여교수는 학문은 물론 사회 자체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호 필연적 관계다. 다시 말해 그 삶은 한층 더 비판적 시각으로 학문과 생활에 임하는 것이다.”

‘학자로서의 여교수’라는 제목은 모순어법처럼 들린다. 학문에 성역이 없듯이, 페미니즘을 제외하고 학문과 젠더는 직접 관계는 없는 것 같다. 근대 이후 신과 종교 대신에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과 제반 객관적 학문이 패권을 차지했다. 근래에 과학의 객관성은 인간중심주의라며 인류학을 밀어내고 제왕적 위치를 점했다.

인간은 물론 세부적 범주인 젠더를 초월한다는 객관적 학문은 여성학자 다나 해러웨이에 의해 그 객관성이 와해된다. 해러웨이는 학문이, 특히 과학이 얼마나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지를 밝힌다. 해러웨이는 군산복합체인 뒤퐁 회사가 여성 유방암의 연구를 위해 여성 유방 유전자를 쥐에게 이식한 후 소위 종양쥐를 미국 전 대학 실험실에 대량으로 팔아 이득을 챙기는 인간중심주의의 행태를 고발했다. 해러웨이는 맑스가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해 커뮤니스트 강령을 내놓았듯이, 약탈당하는 종양쥐로 대변되는 모든 억압된 생명체를 위해 ‘사이보그 강령’을 내놓으며 과학의 일방적 횡포를 비판했다.

또한 과학계에서의 여성 과학자에 대한 폄하적 시각에 대한 비판으로 과학의 객관성에 찬물을 끼얹었다. 필자도 초창기 교수 시절 의학 및 과학계에서 일부 여성 의사 및 과학자들의 획기적 발표를 남성 과학자들이 폄하적 자세로 깎아내려 자신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방어하는 현상을 보고받은 적이 있다. 이것이 20여년 이전이기에 지금은 이 현상이 과거의 전설이기를 바란다.

학자로서의 여교수의 역할은 생활의 영역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신임학자 시절 필자 소속 단과대학의 전무후무한 여성 학장이었던 이숙자 교수가 필자를 교양주임으로 추천했을 때 보직 무경험 여교수라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쳤다. 사회적 전통적 편견에 맞선 이 전 학장은 자신의 소신을 밀고가 일을 성사시켰다. 이런 소신 있는 자세가 학자로서의 여교수가 따라야 할 전례다.

필자는 그 이후 여학생 과장으로 보직을 옮기면서 여학생들을 위해 공지영 작가를 특강에 초대했다. 당시 공 작가의 인기는 최고였기에 좌석이 부족해 통로에 남학생들이 서서 청강했다. 이 특강에서 필자는 진실을 연구하고 옹호하는 일에 여성이라는 세부 범주가 필요한가에 대해 질문했다. 공 작가의 대답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여성으로서의 저항은 필요하며, 이런 차별이 없어질 때 자연히 여성으로서의 이슈는 여성을 초월한 생태계 등 전 지구적 이슈로 전환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은 당시에 필자의 관심이던 ‘독일에서의 68혁명의 비혁명적 현상’에 맞물려 이해가 쉽게 됐다. 68혁명은 수십 년간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학생들이 봉기를 일으켜 하야하게 만든 젊은이들의 혁명이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1967년 버클리대 학생들이 월남전 반대를 위해 징병영장을 태우는 것을 시작으로 온 미국의 젊은이들이 펜타곤으로 몰려가 대규모 반전시위를 했다. 이런 혁명의 기운이 중국에서는 모택동의 혁명으로 나타나고 프랑스의 지성인들을 모택동주의자로 만들었지만, 독일에서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국가의 행정부 안으로 들어가 행정부 안에서 혁신을 일으켰다.

이런 혁명의 전 지구적 확산은 학자로서의 여교수의 역할이 의식해야 할 현상이다. 학자로서의 여교수는 모순어법적 관계는커녕 서로 반향을 일으켜 학문은 물론 사회 자체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호 필연적 관계다. 해러웨이는 학자로서의 여교수의 ‘산 경험’(lived experience)에 입각한 학문적 활동을 통해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환영을 깨고 과학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인식하게 하고 그들의 권리도 인정하게 만들었다. 또한 학자로서 한 여교수의 소신은 필자가 보직에서 배제됨 없이 성공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했다.

이제 이런 두 학자로서의 여교수의 공헌에 힘입어 필자는 본인의 학문인 문학과 정신분석의 담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 등 비윤리적 비극을 경험한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탈바꿈하는 일에 종사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학자로서의 여교수의 삶은 한층 더 비판적 시각으로 학문과 생활에 임하는 것임을 공표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신명아 경희대·영문학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영어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 비평과 이론학회 수석부회장으로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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