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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11.분단극복사학(강만길)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 11.분단극복사학(강만길)
  • 김기봉 경기대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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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신에 대한 소박한 믿음…단선적 진보주의는 극복대상
한국사학계가 식민사관의 잔재인 정체성론을 되풀이하고, 다분히
후진적인 실증주의에 빠져있을 때 매운 ‘죽비’로 등장한
분단극복사학은 현실 직시의 학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선구자적으로 보여줬다. 분단극복사학의 태생적 성격이 특정한
이론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학문이 구성되는 무의미한 방식에
제동을 건 일종의 사고전환의 기폭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의 역사적 전개를 체계적인 이론화의 과정으로보다는, 열린 시각에서 민족사의 현안들과 대화하며 성장해온
일종의 역사철학으로 파악하는 것은 분단극복사학의 순기능들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전제가 될 것이다. 한편 분단극복사학은
민족사학의 지도이념으로 수용되면서 학계에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스스로 갱신하며 자라나는 변증법적 측면보다는,
그 안의 대전제들을 강요하는 독트린으로서의 위상도 드러냈다.
그럴 경우 분단극복사학은 그 이론적 현재성을 논의해야할
문제적 대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분단극복사학을 검토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김기봉/경기대·서양사

분단극복사학은 1970년대 중반 강만길 교수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제기하고 이후 ‘한국민족운동사론’, ‘통일운동시대의 역사인식’ 등에서 완성시킨 것으로, 일종의 통일사관이다. 당대를 바라보는 마땅한 역사적 인식틀이 없던 상황에서 우리 역사현실을 ‘분단시대’로 규정하고, 분단된 민족현실을 통일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에 역사학의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분단극복사학’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역사의 신에 대한 소박한 믿음…단선적 진보주의는 극복대상
한국사학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부재했다. 그 부재의 일차적인 원인은 분단이다. 분단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한국사학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강만길은 1970년대 말 이런 한국사학의 장애를 넘어서기 위한 처방으로 ‘분단극복사학’을 제시했다. 그는 1945년 이후의 시기를 ‘해방 후의 시대’가 아니라 ‘분단시대’로 부르는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분단체제를 기정사실화 해 그 속에 안주하는 일을 경계하고 그 시대를 청산해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단극복사학을 정립했다. 분단극복사학은 가치중립이라는 진공상태에 빠진 실증사학에 대한 대안에 목말라했던 당시 젊은 역사학도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분단극복사학의 등장 이후 한국 역사학의 지형도는 격세지감으로 변하는 현실에 부응해서 현상적으로는 크게 바뀐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민족의 분단현실은 극복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근 고등학교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역사학의 한 분야로서 현대사의 위치는 여태까지 불안하다. 강만길이 그토록 역설했던 현실의 문제 해결에 복무하는 역사학 본연의 기능 회복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그렇다면 분단극복사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한국사 연구의 패러다임으로 유효한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이에 대한 성찰을 하고자 한다.

분단극복사학은 냉전시대의 산물
첫째, 지금 우리의 역사현실을 분단시대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민족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아직도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21세기 우리 역사를 분단시대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민족사의 한 시기를 분단시대로 성격규정 하는 것의 전제는 분단체제의 고착을 정당화 했던 좌우익 사이의 사상적 분열이었다. 이러한 사상적 분열은 민족통일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주의 이론의 수립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분단극복사학의 골자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세계사적으로는 이데올로기 대립은 종식됐지만, 탈냉전적 역사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약화되기는커녕 반대로 강화됨으로써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 됐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분단극복사학의 장래는 어떠한가. 분단극복사학은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탈냉전적 역사현실을 밝히는 사론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국민국가의 경계가 무너지는 세계화 시대에서 통일국민국가의 수립을 역사의 목표로 설정하는 사론이 내포하는 시대착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은 최근 출간된 사론집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에 잘 나타나 있다.
강만길은 21세기 세계사는 국민국가의 권한을 약화하고 국경을 낮추는 추세로 나아가는 데 비해, 21세기 한반도의 역사는 근대 국민국가 형성의 완성단계로서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세계사적 현실과 민족사적 요청 사이의 불일치를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의 모순이 아니라 민족사적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의 변증법으로 파악했다. 요컨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분단국가가 하나의 통일 민족국가로 되는 일은 근대 국민국가의 부정적 속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위협을 없앰으로써 좁게는 동아시아의 평화에 넓게는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상을 현실화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질적인 체제로 존재하는 남북한이 어떻게 하나의 민족국가로 통일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분단극복의 방식이 유일하게 통일민족국가이어야 하는가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지 않고 ‘탈분단’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민족주의가 역사의 반역으로 나타나는 세계사적 현실 속에서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상정하는 통일지상주의는 극복의 대상이 돼야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의 한국사는 통일왕조 내지는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역사의 정상적 발전과정으로 설정하는 목적론적 역사관에 입각해서 씌어졌다. 하지만 분열은 나쁜 것이고 통일은 좋은 것이라는 민족사의 거대담론에 의거해서만 우리 역사를 보는 것의 문제점은 없는가. 우리는 통일신라시대보다는 오히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경쟁했던 삼국시대에서 잃어버린 더 많은 역사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는 없는가. 남북국시대가 아니라 통일신라시대를 正史로 규정하고, 또 잠시나마 제국의 이상을 품었던 후삼국시대를 혼돈의 시대로 기술하면서 고려와 조선과 같은 통일 왕조국가를 민족사의 본류로 규정하는 메타역사를 해체한다면, 지금의 분단 상황을 위기이거나 민족사적인 모순이 아니라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로 재인식하는 현대사의 서술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역사적 사고실험의 전제는 남북국시대에서 신라가 당의 힘을 빌어 발해를 견제하고, 발해가 일본에 조빙했던 과거의 잘못을 오늘에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1945년 8월 15일 이후 역사를 해방과 분단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사론도 재평가해봐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20세기 후반기는 부정적인 분단시대 일뿐만 아니라 절대적 빈곤에서 해방돼 마침내 선진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연 근대화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우리 역사의 비극이 근대화라는 세계사적인 경쟁에서 낙오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면, 20세기 후반은 그 후진성을 만회하는 시기였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낙관 금물
20세기 후반의 한국 근대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제기할 수 있는 두 번째 문제는 ‘근대’ 개념의 이중성이다. 그는 분단시대에 살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근대는 아직 진행중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강만길은 근대 개념을 ‘지향 혹은 기획’으로서의 근대와 ‘시대 혹은 현실’로서의 근대라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다. 요청으로서 근대와 현실로서 근대라는 근대 개념의 이중적인 사용법은 우리는 근대라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근대의 기획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모순을 낳는다. 근대의 완성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에 두는 사론에 의거하면, 1970년대에 민족해방전쟁을 통해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한 베트남이 1990년대에 와서야 국민국가를 수립한 독일보다 선진적인 역사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해야만 하는 모순에 봉착한다.
근대화 문제와 연관해서 세번째로 검토할 사항은 분단극복사학은 결국 역사의 단선적 발전, 곧 진보로서의 역사를 신봉하는 근대주의에 속한다는 것이다. E.H. 카가 진보로서의 역사를 과학적인 역사인식의 전제로 삼았던 것처럼, 강만길은 역사발전의 바른 노선에 입각한 역사적 당위성을 역사의 객관성과 상치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고, 최근의 책 제목처럼 역사란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역사 정의에서 일차적인 문제는 누구의 어떤 이상인가 하는 점이다. 강만길은 인류사회의 민주주의를 역사가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렇다면 강만길의 사론은 민주주의를 역사발전의 종점으로 설정한 후쿠야먀의 역사종말론과 무엇이 다른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강만길은 민족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러면 민족과 인류사회 그리고 민족과 더불어 유럽공동체와 대비되는 새로운 역사단위로 성찰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사이의 충돌은 없는가. 강만길은 동아시아 공동체가 유럽연합체보다 더 결속력이 강하고 그런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립은 한민족 공동체의 형성을 더욱더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 역사적 근거는 무엇인가.
또 다시 민족사적인 차원에서의 시대적 요청이 동아시아적 차원에서의 현실 인식을 재단하는 것은 아닌가. 일례로 일제에 의해 고안된 대동아주의가 동서양의 문명 충돌이라는 이른바 ‘태평양전쟁’을 낳았다는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고 오늘날 우리민족의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동아시아의 귀환을 모색하는 것의 역사적 정당성은 무엇인가.
강만길은 역사의 신을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과연 정의로운가. 역사를 보는 시각과 관점을 좌우하는 메타역사로서의 사론에서 관건은 결국 누구의 신이고 누구를 위한 역사의 정의인가 하는 문제다. 민족주의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제시한다고 믿었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면, 이제는 분단극복사학 자체가 극복의 대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문제는 역사의 망망대해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다른 대안적 사론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근대적 거대담론에 의해 역사인식이 더 이상 전유될 수 없는 오늘의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어떤 사론으로 우리 역사의 길을 밝힐 수 있는가. 역사학이란 시간 속의 학문이다. 역사가 변하면 역사학도 변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가는 시지푸스적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자다.

여전히 ‘학문적 죽비’로 기능
우연인지 혹은 인연이 닿아서인지 필자는 이번 학기 교육대학원 ‘역사학 특강’이라는 강의에서 교재로 강만길의 최근작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를 읽고 있다. 역사교사가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들과 우리 역사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보기 위한 취지로 그런 선택을 했다. 분단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적 삶을 억압하는 구조다. 그런 역사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강만길은 50년 동안 우리 역사의 해방을 위해 역사를 공부해온 분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역사학은 특히 한국 현대사는 그런 강만길의 사론에서 해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루시앵 페브르가 말했던가. 가장 훌륭한 역사가는 30년 후에는 더 이상 읽혀지지 않을 만큼 자기시대의 문제와 치열하게 씨름하는 역사를 쓰는 역사가라고. 다시 페브르의 말을 인용하면, “문제가 없으면 역사가 없다”. 통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탈분단의 상황이 도래한다면, 분단극복사학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다행히도 분단극복사학이 우리 역사학에 모습을 나타낸 지 아직 30년이 채 안됐다. 그렇기 때문에 실증사학을 유일한 과학적 역사로 여기고 역사학의 현재적 문제의식을 상실했던 시대를 질타하기 위해 나타난 강만길의 분단극복사학이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도 여전히 후배 역사가들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학문적 죽비’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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