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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분단극복사학’ 제창해온 강만길 상지대 총장
인터뷰 : ‘분단극복사학’ 제창해온 강만길 상지대 총장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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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보다 평화정착이 급선무다”
약속장소인 중앙일보사 로비에 도착하자 멀리 머리가 희끗한 어른이 보인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이다. 뒷짐을 진 강 총장은 동판으로 제작한 역사신문을 구경하고 있다. 철필로 새겨넣은 동판 속의 역사가 상당 부분 그의 손을 거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매우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강 총장은 1시간 뒤 일본인 학자와 대담하기로 약속이 돼 있어 서둘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분단극복사학이 시작된 배경에 대해 강 총장은 “당시는 군사독재정권이 분단모순·민족모순을 ‘민족중흥’의 이름으로 호도하면서 양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분단체제가 고착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퍼져나갈 때”였다며 “유신체제 아래서 민중민족주의 운동을 위해 역사학이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보니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현실이 역사적 배신을 하고 있는데 역사학은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자괴감도 그의 등을 떠밀었다.

역사학자의 주장은 항상 실증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분단현실을 인식하고 통일과업 수행에 역사학이 노력하자는 주장에 대한 뒷받침 작업으로 강 총장이 주목한 것은 일제시대 중국관내와 만주 지방에서 펼쳐진 민족해방운동이었다. “통일을 위해 좌우가 합작했던 전통을 오늘날의 계급연합적인 운동을 위한 구체적 자료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강 총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단시대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넓은 공감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대중적인 언어로 시대사도 두어권 저술했습니다. 그를 통해 민중들이 주체가 돼 이끌어가는 역사의 실체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죠.” 말하자면 그의 역사 대중화 작업은 아카데믹한 역사를 민중 속의 역사로 바꾸는 층위와, 민중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의 이중적 층위에서 이뤄진 셈이다.

강 총장은 자신의 분단극복사학이 우리 학계에 미친 긍정적 영향으로 “일제시대의 민족해방운동, 해방 이후의 분단고착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많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을 꼽는다. 그리고 그런 객관적 역사인식이 오늘날 통일 문제가 상당히 진전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강 총장은 분단극복사학이 역사 속의 과업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학문으로 남길 원한다. 그것은 분단극복사학이 끊임없이 현실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수정해가는 열린 체계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단은 아직 우리의 인간적인 삶을 많이 제약하고 있어요. 이것은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민족논리를 통해 해결해야 하죠. 그렇다고 민족논리를 너무 앞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요즘은 두개의 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게 중요한 때가 아니에요. 어떻게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것인가가 화두죠. 철도를 건설하는 것도 평화정착의 한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그 외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이 減軍하는 등 통일을 위한 토대가 먼저 만들어지고 난 뒤에 구체적으로 통일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쏟아지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시담론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적 개인들을 연구하는 분위기에 대해 강 총장은 집단과 개인을 분리시켜 생각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내보인다.

“인류는 개인들의 집합체죠. 개개인의 구성원 없이 민족이라는 추상적 단위가 상정될 순 없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집합의 정치적 사유가 일직선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의 임무는 개개인들이 따를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 민족통일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등이 그런 가치들이지요.”

강총장은 앞으로 통일 교육을 위한 역사책을 낼 계획이다. “요즘은 6·15공동선언 이전의 내용으로 역사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웃어요”라며 그는 교육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그만큼 아이들의 역사인식이 교과서를 뛰어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강 총장은 “아이들에게 통일의 필요성, 통일을 위한 지금까지의 과정,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등을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게 요즘 내가 해야할 가장 큰 일이 아닌가 해요”라며 웃는다. 그 일을 위해 한국통사 서술 같은 과업은 뒤로 미뤄둔 상태다. 현실에 복무해 미래를 일구는 것이 역사학자의 일이라 믿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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