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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아
히스테리아
  • 교수신문
  • 승인 2014.08.26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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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詩 _ 김이듬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
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
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
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
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
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잡해죽겠는데 안
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사
이더잖아 아웃사이더가 아냐 넌 자면서도 중얼거리
네 갑작스런 출혈인데 피 흐르는데 반복적으로 열렸
다 닫혔다 하는 큰 문이 달린 세계 이동하다 반복적
으로 멈추는 바퀴 바뀌지 않는 노선 벗어나야 하는
데 나가야 하는데 대형 생리대가 필요해요 곯아떨어
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
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일 놈
을 한 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
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
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 8)

□ 「히스테리아」를 쓴 김이듬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경상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베를린, 달렘의 노래』 등과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가 있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시집은 누가 주체이고 누가 타자인지 면밀히 캐물으며, 중심을 이전하는 운동을 만들어내는, 변두리에서 그려낸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화이자, 산술적으로 더해진 언표의 차원에 제 말의 가능성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곱해나감으로써 새로이 개척해내는 감수성의 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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