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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느끼는 한글의 비애
한글날에 느끼는 한글의 비애
  • 김영명 한림대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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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김영명
한림대·정치학/한글문화연대 대표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그러나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글날이 공휴일, 곧 ‘노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노는 날이면 사람들은 쉬다가도 “그런데 오늘 왜 쉬지?” 자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한글날이란 걸 알게 되고, 그러면 한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도 갖게 된다. 그러나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으니, 그런 기회는 없어지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한글도 점차 희미해져 간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노태우 정부가 구정과 추석 연휴를 늘리면서 “노는 날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만만한 한글날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문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 국민과 전세계에 공포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이 축구 강국일 뿐 아니라 문화국가이기도 한 사실을 확인하려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나, 기업계와 행정자치부가 ‘경제 논리’로 반대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한글날이 ‘안 노는 날’이 된 뒤 한글과 우리말의 위상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형편없던 국민들의 국어 실력은 더 엉망이 되고 있으며, 영어 없이는 언어 생활 전반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양반 사대부들이 이를 어찌 천시했는가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한글과 우리말을 천시했던가? 그들이 내세운 온갖 그럴듯한 이유의 핵심에는 ‘중국에 부끄럽고’ 너무 쉬워 귀천의 구분을 없앨지 모른다는 사실이 있었다. 다시 말해 국내외적인 계층 구조를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길준이 ‘서유견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국한문 혼용체를 선보이자 그 친구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냐고 진심으로 걱정한 바 있다. 이런 전통이 우리의 언어 생활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들은 한글만으로는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어렵고 한자를 쓰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글을 보노라면 얼마나 우리말이 서투른지 실감하게 된다. 관중 포숙의 ‘관포지교’를 들먹이거나 진시황의 고사를 언급하지 않고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교육받았으니, 그들이 한글로만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역사나 한문학 분야와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글로만 글을 써서 뜻이 통하지 않으면 그것은 글을 잘못 썼기 때문이지 한글 전용 때문은 아니다. 한글 투, 우리말 투로 글을 쓰는 연습을 해 본 뒤에 한글에 대해 불평하기를 부탁한다.

또한 요즘은 한문만이 문제가 아니다. 영어 섞어 쓰기가 더 중요한 현실 문제로 대두했다. 젊은 지식층에 올수록 영어 한 마디 섞지 않으면 말을 못하고 로마자 섞지 않으면 글을 못 쓴다. 국한문 혼용을 두고 지금껏 지루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문제는 국영문(한글-로마자) 혼용이다. 사람들은 이제 영문자를 섞지 않고는 글쓰기가 어렵다고 불평한다.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자 애용자와 영어 애용자는 종류가 다르지만, 한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외국의 ‘높은’ 문물을 추종하고 자기 것을 천시한다는 점이다. 자기 것으로는 되지 않으니 앞선 외래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문을 그렇게 숭상했고, 우리말을 없애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옛날에는 문화적 사대주의 때문이었지만, 요즘은 경제 논리를 더 내세운다.

앞의 것은 그만두고라도 과연 한글 천시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요즘의 정보화 시대에 한글의 적극적인 개발과 이용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경제적 이득은 매우 크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이용한 우리 정보기술이 세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맞서 자국 언어 소프트웨어가 굳건히 자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 뿐이다.

이전의 한글 천시 사상이 낳은 것은 중국에 대한 완전한 정신적 예속이었다. 이제 영어 숭배가 미국 숭배와 더불어 이에 버금가는 정신적 예속을 낳고 있다.

한글날에 즈음해 다시 한번 한글의 비애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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