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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 소식 : 중국의 대학개혁열풍과 인문교육
해외대학 소식 : 중국의 대학개혁열풍과 인문교육
  • 황종원 / 해외통신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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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1:09:11

최근 중국 북경대는 전체 학부학생 중 하위 2퍼센트의 열등생들을 대학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학사규정을 공표했다. 이 조치 아래에는 학내 일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암암리에 발생하는 시험과 관련한 각종 뇌물수수행위를 근절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많은 언론으로부터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북경대의 자유스러운 학풍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기괴한 방침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측은 왜 이런 규정을 내놓게 됐을까? 그 이면에는 1~2년 전부터 중국대학가에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대학구조개혁 열풍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북경대의 이상한 조치
지난 9월 16일 중국교육부는 중점 대학들을 대상으로 거액의 지원금을 투자해 대학구조를 개혁하는 이른바 ‘211공정’이 두 번째 단계에 진입했다고 선전했다. 교육부의 이 사업은 본래 중국 내의 유수 대학들의 교육, 연구체계를 세계일류대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 학과간의 구조조정, 신학문과 교차학문의 육성, 대학 내 정보시스템의 구축 및 개선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해의 복단대는 중국에서는 최초로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의 자유로운 전과를 허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대학 관계자들은 일단은 환영하면서도, 전과 허용으로 일부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편중될 것을 우려해 전면적 수용을 꺼리는 듯한 분위기이다.

또, 교수진의 연구업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일부 교수들이 타인의 논문을 베끼는 표절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나 사회적인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표절행위의 비윤리성을 비난하면서도 교수의 연구업적을 일년 단위의 논문 편수로 계산하는 획일적, 양적 평가의 잣대 자체가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가 그간의 대학개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에 관한 평가내용과 계획을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로 제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몇몇 학자들은 학생들에 대한 인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100만여 자에 달하는 분량의 ‘인문교육독본: 인간과 자아’(2002)라는 책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인 夏中義, 丁東, 謝泳 등은 대학교육의 기능이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며 건전한 인격을 갖춘 지성인을 육성하는 작업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목적의식 하에, 지난 20세기 문명 속에 꽃피웠던 사상적 정화들을 엄선해 이 책에 수록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많은 학자, 교육자들이 이들의 문제의식에 호응했고, 얼마 전 북경의 몇몇 학자들은 이 책의 편집자와 현재의 인문교육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좌담회를 가졌다.

“절름발이 대학이 될 수 있다”
“제가 이 책을 엮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9·11 테러가 일어났었는데, 그때 많은 대학생들이 남의 불행에 대해 고소해 하는 광경을 보고, 대학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학에서의 인문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丁東, ‘人與自我’의 편집인)

“현재 중국의 대학개혁정책은 고대 경세치용 사상이 지닌 단점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미국 교육학을 결합시킨 것으로써, 근시안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의 습득을 강조해 숭고한 이상, 원대한 포부, 우주만물에 대한 호기심 등을 유발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資中筠,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 “제가 이해하는 대학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지식의 축적과 전파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변혁을 위해 비판적이고도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북경대는 과거 이 두 가지 기능을 충분히 발휘했었는데, 오늘날 두 번째 기능은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의 의의는 대학이 본래 지녀야 하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기능 회복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錢理群, 북경대 중문과 교수)

이상의 발언에서 우리는 중국의 인문교육이 위기를 맞이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문교육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인문학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것임을 우리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학개혁이 진정한 인간교육을 열망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렴할 수 있을지, 혹시 우리나라처럼 몇 년 후에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그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황종원 / 해외통신원·중국 북경대 종교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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