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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은 우리시대의 정신이 돼야 합니다”
“‘지속가능성’은 우리시대의 정신이 돼야 합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8.18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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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발전' 통합과학적 작업 모색하는 이영한 지속가능과학회장



1987년 브룬틀랜드 보고서(Brundtland Report)가 “미래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하는 바 없이, 현 세대의 필요와 미래 세대의 필요가 만나는 것”으로 설명한 ‘지속가능성’은 1990년대 이후 세계적 화두가 됐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지속가능성’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왔지만, 이후 이 의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합과학적 시각에서 이론적 틀과 실천 방략을 모색하고 있는 학회가 있어 화제다. 2010년 9월 출범한 지속가능과학회(The Society of Sustainability Science, 회장 이영한 서울과기대 교수, 건축학)다.

 


지속가능과학회는 2010년 7월 학회창립준비위원회를 꾸리고 9월 14일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현 과학한림원장)를 초대회장으로 공식 출범했다. 연간 3~4회씩 학회지 <지속가능연구>를 발행하고 있으며, 매년 심층 주제를 내걸고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는데, 지난 2월에는 ‘우리의 지속가능사회와 디자인 진단’을 다뤄, 학회가 표방한 ‘통합과학적 지속가능한 발전’ 모색 취지를 살렸다. 이영한 회장은 “지속가능과학회는 글로벌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지속가능발전을 목표로 경제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지속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개별 학문 분야를 포괄한 학제적 연구 등 허브 역할을 하고자 한다”라고 학회를 설명한다.


이 학회가 ‘표준 절약형’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것도 독특하지만, 더 눈여겨볼만한 대목은 심포지엄의 구성 방식이다. 2월에 개최한 심포지엄 역시 2인 발표에 각각 4명씩 토론자를 붙여 논의를 심층화했다. 이영한 회장의 발제에 박진희(동국대 교양교육원), 이병룡(사회적책임경영품질원 원장), 정해식(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원), 최돈형(국가환경교육센터 센터장) 등이 머리를 맞댔다. 안애경 쏘노안 대표(서울시립미술관 초청 큐레이터)의 발제에는 김동주(국토연구원 부원장), 이제선(연세대 도시공학과), 이충일(조선일보 도시문제 전문기자), 이혜주(중앙대 다지인학부 교수, 한국브랜드포럼 대표)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개별 학문 분야를 포괄한 학제적 연구의 허브가 되겠다는 학회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7일 오후 서울과기대에서 이영한 회장을 만나 지속가능과학회의 문제의식을 들어봤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2010년 9월 학회가 출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분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 지속가능과학회(The Society of Sustainability Science)를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연구는 철학 등 인문과학, 경제학, 사회학, 교육학 등 사회과학, 기후변화, 영양학, 보건학 등 자연과학과 환경기술, 건축, 도시, 디자인 등 응용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와 관련이 있고 학제적으로 접근하는 통합과학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연구는 전 학문 분야에서 다뤄지고 있으며, 특히 환경기술, 생태, 건축 및 도시계획, 교통, 디자인, 경영, 교육 분야에서 관심이 많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 학회는 소수 있지만, 통합과학으로서의 지속가능발전을 다루는 학회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지속가능발전의 학제적 연구와 활동 그리고 그 허브 역할을 목적으로 지속가능과학회가 설립됐습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계신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김현수 국민대 교수,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 이병룡 사회적책임경영품질연구원 원장, 이혜주 중앙대 교수, 최은희 서울디지털대 교수, 이강군 서경대 교수, 최선 한양디지털대 교수, 김수욱 서울대 교수, 변정우 경희대 교수, 이정자 강원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경영학, 법학, 사회학, 교육, 문화, 관광, 산업공학, IT, 건축, 도시계획, 의학 등을 전공하시는 교수님들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동안 정례적인 학술대회와 논문집 발간과 더불어, ‘지속가능사회 발전을 위한 학제적 협력’, ‘창조경제와 지속가능성’, ‘우리의 지속가능한 사회와 디자인 진단’, ‘통일 한국 지속가능한 과제’ 등을 주제로 학제적인 정책토론회 및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 학회 이름에 ‘과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지속가능과학회라고 하면 자연과학자들이 모여 활동하는 학회냐 하고 질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학에 대한 정의를 사전적으로는 보면, 광의로는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이라는 학을 뜻하고 협의로는 자연과학을 말합니다. '
지속가능과학회의 ‘과학’은 광의의 정의인 ‘학’와 협의의 정의인 ‘자연과학’를 포괄하는 개념이죠. 지속가능발전은 아직 학문적 틀을 가지지 못했고, 실천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있습니다. 이 두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어요. 학적 틀을 갖추게 되면 실천가능성을 높이고, 실천가능성이 높을 때에 학적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의 실천력을 제고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테크놀로지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techne’인데, 이 단어에서 중요한 의미는 현장에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지속가능과학회에서 ‘과학’의 의미는 지속가능발전을 학문 영역으로 정립하고 실천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학계에서의 지속가능과학은 아직 초기단계입니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대나 아리조나주립대, 일본의 도쿄대 등에서 석·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석·박사과정이 없고, 연구단위도 없는 실정이고요. 아직 전문 인력이나, 재정 지원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지속가능발전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지속가능과학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 신생학회인데 그렇다면 지속가능과학회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저희 학회는 오픈 시스템입니다. 학회 홈페이지(www.sustainabilityscience.kr)를 통해 분야에 관계없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저희 학회가 ‘멍석을 깔았으니’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서로 지혜를 모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연회비나 입회비도 비교적 저렴합니다.(웃음)”

△ 지속가능을 경제, 사회, 환경 등 학제적 연구로 확대하면 어떤 점에서 유의미성이 있을까요?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발전(development)과 성장(growth)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장’은 정량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에 ‘발전’은 정량적인 의미와 더불어 정성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sustainability development)’에서 발전은 성장이 아니라 발전입니다. ‘근대 산업시대’가 대량 생산과 소비를 미덕으로 양적 성장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인간의 삶 질의 발전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더 나아가 미래세대와 현세대가 공생할 수 있도록 환경, 경제, 사회가 서로 연계되면서 조화롭게 발전하는 지속가능발전이 이 시대의 정신이 돼야 한다는 게 저희 학회의 생각입니다.
경제부문, 사회부문, 환경부문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습니다.

 

이들은 상극이 될 수도 있고 상생할 수도 있어요. 성장하는 경제, 균형 있는 사회, 건강한 환경은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는 가치로 서로 상극이 아닌 상생할 수 있는 最適解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학제적 연구의 유의미성입니다. 예컨대 앞으로 도래할 남북 협력 시대에 남북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경제적 성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다국적 기업들은 오피스 타운인 여의도보다는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사대문 안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경제적 효율성 위주로 추진된 사업들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나 환경 복원 비용을 지불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한 사회가 건강하고 지속가능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의 핵심 부문인 경제, 사회, 환경을 x, y, z축으로 삼아 역동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사회입니다. 우리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봅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는 탑다운식으로 의사결정이 됐죠. 큰 목소리 하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어요. 이제는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거리낌 없이 수평적으로 SNS를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익명의 글 한 줄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젠 큰 목소리보다는 하모니와 통합이 더 이롭습니다.”

△ ‘지속가능성’이 정말 중요한 화두라면, 학문 공동체와 사회에서 이 의제를 더욱 확대하고 키워나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회장께선 ‘지속가능성’을 시대이념으로 제시했는데, 학계와 사회,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0년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대통령직속으로 설립된 이후 꾸준하게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책이 추진됐습니다. 주로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추진됐고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환경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그간의 성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속가능발전을 국가의 어젠다로 삼아 10여년동안 추진해 왔지만, 유효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 정부마다 국가 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화로운 사회를 꿈꾸는 지속가능발전 시대가 그리 쉽게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독일, 영국 등 지속가능발전의 모범국이라 할 수 있는 서구 국가들도 40~50여년의 노력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발전은 단거리 경기가 아니라 장거리 경기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의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노력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패가 있었다면 그것은 시행착오입니다. 당연히 일어날 수 있죠.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이니까요. 이젠 지금까지의 지속가능발전을 리뷰하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지속가능발전의 영역을 기존의 환경 부문 중심을 넘어서 사회, 경제부문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경제부문이나 사회부문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GDP 성장률이 10여년째 3~4%로 주저앉아 있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최저 GDP 성장률 2%를 위협하고 있으며, 미래 세대인 청년의 실업률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또한 소득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현재 0.36정도인데 더욱 악화되고 있고요. 소득의 불균형이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되는 지수인 0.4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발전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선진국, UN, OECD 등에서 개발한 모델은 공통적 특성이 있으면서 차별화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전반기에 지속가능발전을 주도한 유럽 국가, OECD의 모델을 틀로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델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발전의 국제적 수준을 평가하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위협 요인을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주거 지표를 보면 UN 기준에는 1인당 주거면적으로 돼 있지만, 우리사회의 주거문제는 1인당 주거 면적보다는 하우스 푸어나 렌트 푸어가 더 중요하거든요. 선진국 모델의 형식을 수용하면서도 우리 사회를 진단해 위협 요소를 찾아내서 우리 토양에 맞는 지표를 개발하는 귀납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 ‘지속가능발전 한국 종합진단’ 기획 연재를 <교수신문>에 제안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십시오.

“국내에서 발간된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서적은 의외로 적습니다. 그리고 환경, 건축, 도시, 교육, 경영 등 세부 전공별로 저서는 있는데, 총론적인 책은 없어요. 그래서 경제, 사회, 환경 등 사계 전문가 20여분을 모시고 ‘(가칭) 대한민국 종합진단, 지속가능발전 모색’을 주제로 학제적인 저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교수신문> 지면에 연재함으로써 학계와 폭넓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려는 것이죠. 이 책의 편집 의도는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지속가능발전’이 이시대의 핵심 가치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제2의 한강 기적’, ‘글로벌 선진화 시대’, ‘경제적 민주화’, ‘사회통합’, ‘공정사회’, ‘저탄소녹색사회’, ‘지식 정보화 시대’ 등 다양한 모토들이 병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들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양극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의지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은 이들을 포괄하면서도 더 역동적으로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지속가능발전 상태를 진단하는 것입니다. 지속가능발전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각 부문을 종합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구성은 크게 총론, 경제부문, 사회부문, 환경부문의 4부문으로 구성됩니다. 각 부문별로 세부 주제는 총론과 UN의 활동, 조세재정과 통일, 경제 부문에는 산업구조, 중소기업, 농업, 원자력, 기업경영, 사회 부문에는 고령화, 여성, 교육, 역사문화, 정치, 주거, 환경 부문에는 국토환경, 기후변화, 생태, 수자원, 도시건축, 디자인 등 20여개의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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