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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나 푸성귀들이 실하게 자라는 까닭
감자나 푸성귀들이 실하게 자라는 까닭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 승인 2014.08.18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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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11. 고랭지 채소

▲ 노란 속잎이 차는 결구배추는 고랭지 재배에 좋은 배추다.
禪農一體라, 수도와 농사는 같은 것. 하여 心田 가꾸기와 밭갈이는 다르지 않다! 필자는 아침에 일찌감치 집을 나와 콧구멍만한 글방(書齋)에서 글 농사짓기를 하다가는 오후 4시면 제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벌떡 일어나 벼락같이 텃밭으로 재우쳐 달려간다. 농사는 과학이요 예술이라 했겠다.

‘사람의 천적은 벌레(곤충)와 잡초’라는 말이 진정 옳다. 야마리 까진 심술보인 노린재, 28점무당벌레 나부랭이들을 일일이 손으로 잡는 것은 물론하고, 장마 끝에 우거진 잡풀과의 전쟁은 절박한 지경이라, 쪼그리고 앉아 한창 김을 매고나면 오금이 저리고, 허리는 내 허리가 아니다. 뽑고 돌아서면 어느새 숲을 이루니 넌더리나는 싸움이 한도 끝도 없다. 농약이 어떻고, 제초제가 저렇고 하지만 그것들 없으면 호랑이보다 무서운 굶음이 기다리니, 무릇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 살충제요 제초제로다.

겨울을 지내봐야 봄 그리운 줄 안다고 했던가. 겨울은 떠나기 싫고 봄은 오고 싶어 하는,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4월 초순경이면 비로소 봄기운에 마음이 설레고 안달난다. 春不耕種 秋後悔라! 농사꾼은 굶어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고 하지. 고맙게도 해마다 제자교수가 겨우내 냉골에 둬서 생기를 잃지 않은 ‘씨감자’를 대관령 어디선가에서 구해준다. 이래 봄 농사는 태동한다.

그건 봄 농사이야기고, 해마다 이맘때면 김장채소로 쓸 배추, 무를 포함해 봄에 심었던 상추, 쑥갓, 아욱 등속의 씨를 다시 뿌린다. 밑거름복합비료를 설렁설렁 흩뿌리고는 밭을 살짝 뒤집어 흙살을 곱게 다듬은 다음에 비닐 덮기(muclching)를 하니, 거기엔 물기가 많아야 잘 크는, 머잖아 속고갱이가 꽉 들어찰 배추모종 심을 자리를 손질한 것이다. 二期作(동일한 농장에 1년에 2회 동일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재배형식)하는 밭농사는 이렇게 한 해 두 번의 농번기를 맞는다.

푸나무 중에서 풀은 나름대로 다르지만, 나무만은 대낮은 따스하고 한밤엔 서늘한 봄가을에 주로 자란다. 이렇듯 한창 크는 아이들의 키를 재 봐도 갈봄에 무럭무럭 자란다. 무더운 여름철엔 벼나 고추, 가지 같은 원산지가 무더운 열대지방인 몇몇 곡식들과 철도 모르고 설치는 바랭이, 비름, 방동사니, 뚝새풀(독새풀) 같은 잡초들이 철만난 듯 설쳐댄다. 쇠뿔도 녹인다는 여름 더위에 남새들도 다 물러빠지며, 햇볕 쨍쨍 내려쬐는 한낮에는 나무들도 잎이 후줄근히 매가리를 잃고 시들시들 처지거나 돌돌 말리면서 광합성을 멈춘다. 사람이 기진맥진하면 식물도 몹시 지치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초목이 다 한낮엔 더워도 좋으나 오밤중이 찜통인 열대야엔 죽을 맛이다. 그런데 낮은 푹푹 쪄도 밤만 되면 가을이라 모기가 숫제 없다는 태백준령, 대관령의 여름밤은 몹시 추워서 옷을 껴입는다. 말해서 高冷地(high altitude cool region)로, 실제로 그곳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고랭지 채소가 지천으로 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그곳의 감자, 고구마도 딴 곳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오직 葉綠素가 가득 든 葉綠體를 가진 녹색식물만이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는 초능력을 가진다. 녹색식물은 光合成(photosynthesis)해 스스로 살아가는 自家營養하는 장하되 장한 생물인 반면 동물은 허깨비요 바보천치로, 他家營養하는 무력하고 무능한 생물이다. 그래서 녹색식물을 生産者(producer)라 부르고, 동물은 오직 식물을 먹고 살기에 消費者(consumer)일 따름이다.

그렇다. 지구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온 것! 재언하지만 세상에서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오직 녹색식물(葉綠體)뿐이다. 때문에 靈物인 풀 한 포기나 나뭇잎 하나도 만만히 보아 허투루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 또한 植物(plants)은 食物(foods)을 만드는 工場(plants)으로 우리에게 젖을 주는 어머니다! 쇠고기, 물고기 같은 고치붙이들도 죄다 식물(쌀, 밀가루, 옥수수 등)을 먹고 태양에너지로 살을 찌운 것이 아닌가. 하여 밥이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태양을 씹는 일이요, 토마토나 귤 즙을 마시는 것은 태양을 들이키는 것.

그런데 식물은 낮에는 광합성으로 여러 양분을 만들고, 낮밤으로 그것을 이용해 숨쉬기(呼吸)를 하니, 광합성이 양분을 만드는 同化作用(수입)이라면 호흡은 양분을 소비하는 異化作用(소비)것이다. ‘광합성-호흡=저장’이란 등식은 우리 가정에서 ‘수입-소비=저축’과 같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호흡과 성장에 쓰고 남은 여분을 잎, 뿌리, 줄기, 열매, 씨앗들에 저장한다. 한데 낮의 온도가 적당하면 광합성(수입)이 잘 되지만, 밤이 더우면 더울수록 호흡량(소비)이 늘어난다. 그러기에 밤낮 더운 한여름보다 낮이 덥고 밤이 싸늘한(호흡량이 적은) 봄가을에 식물이 잘 자라니, 나무는 1년에 두 번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춘추지절엔 많이 만들고 적게 소비하니 식물체가 무성할뿐더러 잎줄기와 뿌리에도 양분저장이 팍팍 는다.

결론이다. 낮엔 후터분하고 밤은 썰렁한 고랭지인 대관령에는 낮 광합성(생산량)은 한껏 일어나고, 밤의 호흡량(소비량)이 된통 줄어들어 그곳의 감자, 고구마는 거짓말 조금 섞어 얼추 아이 머리통만하고, 배추는 한 아름드리요 무, 당근은 처녀 다리통만하다. 고랭지에서 감자나 푸성귀들이 실하고 큼직하게 낫자라는 까닭을 알았다. 天高馬肥의 이치도 깨닫고….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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