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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디오게네스와 스피노자
[딸깍발이] 디오게네스와 스피노자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문학
  • 승인 2014.08.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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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문학
화창한 대낮에도 어둡다고 등불을 들고 다닌 철학자가 그리스에 있었다. 디오게네스다. 역설적인 얘기다.

그는 이른바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말은 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고 한다. 성가시게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개처럼 그 학파의 사람들은 남들은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고 한다.

이 디오게네스에 관해 남겨져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대왕이 그에게 와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햇빛을 쏘이고 싶으니 비켜 달라고 했다.

많이들 아는 얘기다. 디오게네스는 인위적인 권력과 질서 대신에 자연의 원리를 숭상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회의 인습과 상식을 넘어서 보편적인 원리, 진실을 추구했다.

이 디오게네스가 철학사상에 미친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코스모폴리타니즘’, 즉 세계시민의 사상이다. 당신은 어느 폴리스의 사람인가? 나는 어느 폴리스의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지금 그의 저서나 문장이 가장 많이 일실된 철학자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권력에서 먼 학자들, 권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학자들은 즐겨 버림받았다. 그들의 책은 진리에서 멀다 해서 불에 태워지고 압수를 당했다. 사물의 원리를 더 넓은 견지에서, 해당 사회의 힘과 질서의 바깥에서 보려는 사람은 삶이 위태로워지기 쉽다.

아마도 스피노자는 그런 이치를 일찍 몸으로 깨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학설은 일찍부터 그 자신의 태생인 유대인들의 종교적 신념과는 먼 거리에 있었다. 그는 파문을 당했고, 그의 학설을 미워하는 이의 칼에 침습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나서부터 소속돼 있던 공동체를 떠나 홀로 안경 세공을 하면서 살아갔다. 대학에서 교수로 와 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도 그는 거절했다. 그는 오래 살지 못했다. 폐결핵으로 40대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스피노자의 사유는 들뢰즈 같은 이들의 밝은 조명 아래 빛나고 있다. 들뢰즈는 즐겨 잊혔거나 중요시 되지 못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서 우리들 앞에 내민다. 그러면 우리들은 놀란다. 그런 일이, 그런 논리가, 그런 종합의 길이 있었는가 하고.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니체를 넘어 카프카로. 영토를 넘어 지배되지 않는 영역으로. 생명이 날 것으로 빛나는 지역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 지식인의 존립 조건은 실로 위태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옛날 일제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처럼, 추운 겨울날 고원의 칼끝에 서서 한 발 재겨 디딜 수조차 없을 것 같은 심정을 다시 느낀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규격화된 학문 제도는 지식인 학자들로 하여금 냉장고에 들어가라고 한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아느냐고 묻는다. 삼단계로 풀어내라고 한다. 먼저 칼을 산다. 들어가지 않는 부위들을 베어낸다. 그리고 넣는다.

음산하다. 그러나 위태로움은 학자들을 둘러싼 학문 제도로부터만 오지 않는다. 그보다 더 크고 강한 힘들이 있다. 신임교수들이 이제는 ‘한갓’ 회사원이 된 것 같은 심정을 호소하는 학교가 늘고 있고, 좁게 전문화된 분과 학문의 영역을 넘어 글을 쓰고 활동하거나 하면 당장 눈총을 받기 쉽다.

통속에 들어가 있어도 만 리 떨어진 곳을 사랑하고, 혼자 살아가는 방 옷걸이에 칼에 찔렸던 옷을 걸어놓고 혼자만의 진리를 찾아간 철인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바윗덩이처럼 굳었는지, 그들의 외로움이 얼마나 금덩이처럼 빛났는지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도 기억되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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