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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권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만들겠다"
"동아시아 인권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만들겠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8.18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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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차기회장에 선출된 김미경 히로시마시립대 교수
"2016년에 임기가 시작되면 한국, 일본, 중국의 연관 기구, 단체, 정부부처, NGO들이 같이 협조해 동아시아에서 세계인권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진실화해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 가장 앞서가고 있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인권담론의 발전과 정책적 실현에 있어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제도는 미국의 모델에서 따온 듯합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한국만의 패러다임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즉 너무 일괄적이고 기계적인 평가보다는 제 3의 방식도 인정해주는 융통성을 가진 평가제도의 도입이 없이는 모두가 SSCI, Scopus, A&HCI만 보고 달리는 기형적인 출판방식과 과도한 경쟁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행착오의 과정과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김미경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 부교수는 미국 조지아대에서 사회학·여성학으로 석·박사를 한 뒤 미국무성 공공외교 전문위원(2000~2004), 미국 포틀랜드주립대 풀브라이트 교수 (2004~2005)를 거쳐 2005년 10월부터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에 재직해온 해외 학자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차기 회장에 선출돼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교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 23회 세계정치학회의 인권분과 차기 회장으로 7월 24일 선출됐다. 역대 회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동양인으로 전 세계에서 인권을 전공하는 5백여명의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임기는 2016년부터 2년이며 동아시아를 인권담론의 메카로 재조명, 부상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세계정치학회(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는 1949년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 활동하던 정치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국제적인 학회다. 창립 이후 그 규모와 영향력이 매년 신장돼 1960년에는 24개 회원국이 가입했으며 2014년 현재 총 52개국에서 약 4천 명의 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사이의 간극과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 관련 패널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인권분과의 경우는 흔히 RC(Research Committee)26으로 불리고 있다. 1970년 뮌헨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연구 분과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26번째로 승인된 분과이기 때문이다. 1976년에 14개에 머물던 연구 분과 수가 2014년 현재 52개로 증가했으며 인권분과에서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대회의 패널조직, 타 학회와의 공동회의조직, 워크숍 개최 등의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다.

김미경 교수는 인권 분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권’이라는 장르의 통학제성을 고려해‘비교민주주의’ 분과 또는 ‘성의 정치와 정책’ 분과 등의 타 연구 분과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 협조해 공동패널을 조직하기도 합니다. 학제간의 인위적인 벽을 허물고 문제를 좀 더 다각적, 현실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인 셈이죠.” 김 교수는 세계의 각 지역과 나라, 여러 집단과 개인을 아우르는 인권연구의 특성상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인간존중이라는 당위적 규범과 분과 내에서의 사안관련 합의도출을 위해 구성원들이 매우 활발한 토론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인권분과의 문화적 특징으로 꼽기도 했다. 이메일로 김 교수를 만났다.

 

△ 지난 7월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세계정치학회는 어떤 학회인인가? 인권분과가 학회에 있다는 것도 독특한데, ‘인권분과’는 어떤 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요.

“세계정치학회(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는 1949년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 활동하던 정치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국제적인 학회입니다. 창립 이후 그 규모와 영향력이 매년 신장돼 1960년에는 24개 회원국이 가입했으며 2014년 현재 총 52개국에서 약 4천 명의 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사이의 간극과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유럽과 라틴아메리카 관련 패널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인권분과의 경우는 RC(Research Committee)26으로 흔히 불리는데 1970년 뮌헨에서 개최된 세계대회에서 연구 분과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26번째로 승인된 분과이기 때문입니다. 1976년에 14개에 머물던 연구 분과의 수가 2014년 현재 52개로 증가했으며 인권분과에서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대회의 패널조직, 타 학회와의 공동회의조직, 워크숍 개최 등의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9·11테러사건이후 미국 내 아랍계 주민들의 인권문제와 테러분자로 지목돼 타나모만 수용소에 불법감금 돼 있는 용의자들의 상황을 집중조명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아랍의 봄’과 관련된 이슬람종교와 민주주의에 관한 워크숍 등이 지난 2년간 영국의 글라스고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개최됐니다.

‘인권’이라는 장르의 통학제성을 고려해비교민주주의’분과 또는 ‘성의 정치와 정책’ 분과 등의 타 연구 분과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 협조하여 공동패널을 조직하기도 합니다. 이는 학제간의 인위적인 벽을 허물고 문제를 좀 더 다각적, 현실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입니다. 세계의 각 지역과 나라, 여러 집단과 개인을 아우르는 인권연구의 특성상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인간존중이라는 당위적 규범과 분과 내에서의 사안관련 합의도출을 위해 성원들이 매우 활발한 토론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인권분과의 문화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 특히 차기 회장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동아시아를 인권담론의 메카로 재조명, 부상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계시더군요. ‘위안부 문제’가 한일 국제관계에서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사안인데, 한국인으로서 일본 대학에 적을 둔 선생님의 위치가 ‘인권분과 차기 회장’ 선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진 않았나요?

“세계의 여느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예외 없이 다양한 인권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제각각의 정치구조, 종교적 습성, 역사적 경험, 사회복지제도, 법제도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과 종류의 인권사안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정리되지 않은 군부독재시절의 유산과 그 보상의 문제,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는 식민지 유산과 유럽 중심의 인권담론에 대한 저항,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와 인종주의의 잔재, 유럽 대륙의 이민자 문제와 현재진행중인 재정위기 등은 인권연구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를 동시에 노정시킨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번에 제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도 종군위안부나 탈북자문제 등의 아시아 중심적 이슈의 부각이나 국제사회의 증대된 관심에서 일방적으로 탄력을 받았다기보다는 수년 간 한 사람의 회원으로서 꾸준히 봉사해 온 노력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선출권을 가진 회원들의 절대다수가 자신의 나라와 커뮤니티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인간존중가치의 유린이라는 전제를 상정하더라도 위안부나 탈북자문제라는 구체적인 사안중심으로 회장을 뽑는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특수한 직업군인 학자들이 모인 단체에서 저보다 훌륭하시고 바쁘신 분들을 위해 소리 내지 않는 봉사를 꾸준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회의배포용 자료를 만든다거나 각국 학자들 사이의 교류의 장 만들기, 사소한 이메일 연락 등과 같이 작지만 누군가가 해야만 되는 일들을 자발적으로 처리를 한 편입니다.

또한 심각한 인권상황에도 불구하고 소속대학의 출장비 지원불가 등의 경제적인 이유로 회의참석에 어려움을 겪던 개발도상국출신 회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IPSA의 본부에 집중적으로 어필하고 노력한 부분도 미미하게나마 회원들의 단결에 일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인권분과 미팅에 참석했을 당시 유일한 동양인으로서의 어색함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고 비유럽, 비선진국 출신 회원들도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토론과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했습니다. 차기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니 조금이나마 역량을 발휘해 동아시아의 인권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균형 잡힌 인권담론을 이끌어내는 아시아적 공헌이 될 것입니다. 2016년에 임기가 시작되면 한국, 일본, 중국의 연관 기구, 단체, 정부부처, NGO들이 같이 협조해 동아시아에서 세계인권대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진실화해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 가장 앞서가고 있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인권담론의 발전과 정책적 실현에 있어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유교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동아시아에서의 인권담론은 상당히 왜곡, 정치화돼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일부 서구사회의 이익과 냉전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안보의 맥락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동양의 사상과 전통이 인권유린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이해의 깊이와 넓이가 좁은 인식적 편향에서 기인된다고 생각하며 동양과 서양의 인권사상은 상이한 면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고 이런 공통분모의 모색과 상호이해를 통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역사적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대명제 하에서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위안부문제의 해결과 북한 인권에 대한 건설적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펠로로 한국에 나와 계신 것으로 압니다. 2학기부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어떤 작업을 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 봄 학기동안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방한연구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연구의 주제는 ‘한국인의 기억’으로 남한의 대학생들과 탈북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기억하고 인식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수치스러운 역사에 관한 비교연구입니다. 이는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접근하는 제도로서의 한반도통일이 아니라 남북한의 사람들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평화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을 위함입니다. 미래지향적 사고가 미덕으로 인식되는 남한사회의 기억정향과 긴 시간대를 아우르는 전통적 기억의 패턴을 가지는 북한사회가 어떻게 하면 깊고 두터운 화해, 그리고 더 나아가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연구입니다.

남한보다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고 단군신화가 정사로 자리를 잡을 만큼 긴 기억의 파장을 가진 북한사회의 구성원들이 무게를 둘 남북한 간의 어두운 과거사를 생각해 볼 때 사람들이 체감하고 만들어야할 남북한 간의 화해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지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매개할 중요한 변수가 인권의식, 인권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60년이 넘게 지속된 대립, 경쟁구도 속에서 감히 그리고 미처 규명하지 못해 묻어둔 역사가 언제, 그리고 또 어떤 형태로 상호갈등의 진원지로 부상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만 보더라도 제주 4·3 사건, 완도군 민간인 학살사건, 월북납치자의 문제 등의 정리되지 않은 인권관련 기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보여 지는 북한 내부의 실정과 인권유린, 그 방치의 책임소재규명, 한국전쟁에 관련된 남북한 기억의 괴리, 남·북한 각각에서 교직된 배신과 충절의 사안 (예: 비전향 장기수, 자진월북, 탈북) 등은 무척 조심스럽고도 엄정한 진실규명, 처벌 그리고 보상 등의 인권관련 과제들을 남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9월부터 12월까지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해외초빙학자로 연구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정치동학, 경제통합의 관점과는 다른 시선으로 ‘동아시아 커뮤니티’ 담론을 분석하려고 합니다. 공동연구자는 영국 캠브리지대의 석좌교수인 권헌익 교수님이십니다. 기억, 인권, 화해, 평화라는 아직까지는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은, 하지만 매우 핵심적인 개념들을 통해 ‘동아시아 커뮤니티’ 담론을 분석하고 꿰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권과 평화에 관한 이론들은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배태됐습니다. 인도의 비폭력평화주의는 반식민지 저항운동이었고 미국의 인권운동도 인종차별이라는 어두운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대항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인종주의 운동도 인종주의적 식민지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커뮤니티’ 공동연구는 유럽 등에서 이미 오래 전에 과거사로 해결된 트라우마의 기억이 동아시아에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기억의 끈질김이라는 현상에 천착하면서 이를 동아시아적인 인권, 화해, 평화담론으로 제시하려는 노력의 일부입니다. 일본의 평화주의가 히로시마의 피폭에 경험에 근거한 반핵운동이라면 아시아에서의 평화는 인권과 기억의 화해와 동아시아적 평화운동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에는 언제부터 재직하셨는지요? ‘(평화)연구소’ 소속 교수는 일반 교수들과 신분상 차별이 있습니까?

“2005년부터 일본 히로시마시립대-평화연구소에서 연구, 강의, 그리고 학교 행정을 담당하며 대학교원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3년여 전 대학이 법인화된 이후 임용당시의 연구 교수라는 개념자체가 없어지고 강의, 학생서비스, 지역사회 공헌, 산학협동 등과 같은 역할들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학생을 지식의 소비자로, 대학을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는 조직으로, 교수를 지식이라는 상품의 전달자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10월이면 일본생활 만 9년이 됩니다. 일본 히로시마로 가게 된 계기는 거의 운명에 가깝습니다. 2004년부터 1년 동안 풀브라이트 교수로 봉직한 미국 포틀랜드주립대가 소재한 미국의 오레건주는 겨울 내내 비가 옵니다. 비가 그친 어느 겨울 날 제 머리를 스친 건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라는 것이었고, 그와 동시에 ‘이젠 세 끼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고 싶다’라는 평범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밥 한 공기’는 향수였고 고향이었고 정체성의 상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히로시마에서의 모든 경험은 제가 지금 천착하고 있는 연구과제의 영감이 됐습니다. 재일한국인의 인권문제, 전쟁, 과거사, 보상과 사과를 통한 화해 그리고 평화에 관한 집착은 아시아에서의 폭력과 전쟁, 역사화해,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규범과 이상, 그리고 평화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으며 이것이 아시아가 인류의 문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한가지의 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학계는 지금 논문 중심의 업적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저술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잇따르고 있지만, 더 많은 지혜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고요. 세계정치학회의 경험, 그리고 일본 학계에서의 경험에서 본다면, 논문 중심 평가 제도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학계의 경쟁적 현실에 대해서는 체감하고 있는 바입니다. 교수평가와 보상제도가 계량화돼 나누고 물려주는 지식과 학풍은 사라지고 점수가 되지 않으면 조금의 시간과 에너지도 쓰려고 하지 않는 매우 전략적인 연구자세가 대세인 듯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메일을 보내도 이해타산에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답신조차 받기 어려운 이기적인 분위기에 놀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미국에서처럼 ‘출판 아니면 죽음 (publish or perish)’의 패러다임이 한국의 학계에 좀 더 경쟁적인 형태로 변형돼 이식된 듯합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세계정치학회는 매우 두꺼운 층의 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국적, 인종 등과는 상관없이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좋은 연구, 자신의 지식을 건설적으로 나누어 주는 학자, 이기고 인정받기 위해 동료를 필요이상으로 공격하지 않는 성품을 가진 분들이 오래 남아서 활동을 하시고 존경을 받습니다. 평생을 같이 걸어가는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일은 매우 전인적인 자질이 요구됩니다.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오래 동안 꾸준히 자신의 영역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긴 호흡이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인 듯합니다. 긴 호흡은 주로 저술활동에서 가능하며 산뜻하고 명쾌한 분석은 짧은 논문의 형태에서 자주 보이는 듯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칼 마르크스나 막스 베버가 지금 이 시대의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3류 지식인으로 끝이 났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SSCI, Scopus등과 같은 랭킹매기기에 한국처럼 집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끼리 모여서 만드는 작은 저널들이 더 자주 인용되고 더 높이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유는 ‘선수들끼리는 절대 속일 수 없다’는 특유의 ‘끼리만의 문화코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끼리 엄정하게 평가하고 혹독한 상호비판의 과정을 견디어야만 매우 인색하게 인정해주는 소집단 내에서의 역학이 해외의 어느 유명저널에 논문을 싣는다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의 제도는 미국의 모델에서 따온 듯합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한국만의 패러다임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즉 너무 일괄적이고 기계적인 평가보다는 제 3의 방식도 인정해주는 융통성을 가진 평가제도의 도입이 없이는 모두가 SSCI, Scopus, A&HCI만 보고 달리는 기형적인 출판방식과 과도한 경쟁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행착오의 과정과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차기 회장으로서 공적 역할과 더불어, 앞으로 개인적 구상이 있다면?

 “좋은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죽고 난 다음에도 읽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흩어진 듯 보이는 현상들이라도 종으로, 횡으로 엮어서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지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서양문명에 몰입한 뒤 미국유학, 미국정부 공무원, 미국대학 교수를 거쳐서 제 모국, 제 고향 가까이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히로시마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저의 이론, 공헌을 남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 세상 어디라도 가야겠다는 절실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삶의 모토인 ‘받은 만큼 돌려주고 떠나기 위해서’ 세계정치학회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김미경 교수는 올해 4월부터 이달까지 국제교류재단 한국학 중앙연구원 방한 펠로로 와 있다. 2학기부터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해외학자로 연구할 예정이다. 지은 책으로는 『동북아시아의 기억(Northeast Asia’s Difficult Past: Essays in Collective Memory)』(Palgrave Macmillan, 2010), 『인권의 안보화:동아시아의 탈북자(Securitization of Human Rights: North Korean Refugees in East Asia)』(Praeger, 2012), 『동아시아의 기억과 화해(Routledge Handbook of Memory and Reconciliation in East Asia)』(Routledge, 2014) 등이 있다. 미국 맥팔랜드(McFarland) 출판사 편집장(SSCI 저널, 2012-2013), 영국 세이지(Sage) 출판사 한국인의 기억 특별호 편집장(SSCI, SCOPUS 저널, 2013년)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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