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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대학사연구회 지음, 한길사 刊)
[이책을 주목한다]『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대학사연구회 지음, 한길사 刊)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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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에서 베를린까지’ 동서양 대학사 되짚기

지난 1997년 이른바 ‘IMF시대’를 맞으며 국가경제가 일시에 폭삭 내려앉은 경험을 했을 때, 한 문인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 했다. ‘전진 앞으로!’라는 구호를 걷은 후, 오히려 주위를 건사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로 삼자는 뜻이었다. 임계상황에 다다른 것은 비단 경제만이 아니다. 대학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경쟁의 대열에 편입해 교육도 시장논리의 냉혹함 속으로 떠밀린 것도 한참. 급기야는 이상적인 총장상을 세일즈와 비즈니스에 능숙한 기업가로 꼽는 지경에 이르렀다.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교육만이 경쟁력을 지닌다는 모토 아래 실용영어와 전산은 의무교육이 되었고, 마침내 기업이 요구하는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맞춤형 수업’ 개설이라는 ‘산학협동’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큰배움터가 아닌 기능인 양성소, 직업학교로 전락중인 우리네 대학. 이제는 개발과 성장의 행진을 중단시킬 때가 되었다.

행진을 멈추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간 앞만 보느라 소홀했던 옆과 뒤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자리를 가늠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 작업에 시금석이 될 책이 한 권 있다.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사학과)가 주도하는 ‘대학사연구회’에서 우리대학과 세계대학의 역사와 현황을 묶어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한국고등교육의 역사와 대학’, ‘아시아 각국의 대학과 근대’, ‘유럽의 변혁과 대학의 위상’의 세 주제를 일람하다보면 그간 잊어왔던 대학의 이념을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는 한국고등교육의 이상적인 사례를 성균관에서 찾고 있다. 고려시대 국자감, 신라시대 국학, 고려시대 태학에 그 젖줄을 대고 있는 성균관은 알다시피 고려 공민왕 시절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를 분리시켜 교육함으로써 명실공히 유학 교육만을 전담하는 최고학부가 되었다. 당시 성균관은 ‘風化之源’ 혹은 ‘賢士之關’이라고 의미화되었다. 국가 지도이념의 수호처였음을 대변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성균관의 교육방법과 유생들의 풍속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짚어 흥미를 더하는데, 유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규제를 받는 항목들의 면면을 살피면 성균관이 전인교육에 힘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균관의 쇠락은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 흥미로운 유사점을 보여준다. 지금의 교수격인 성균관의 師儒인사가 파행으로 치달아 스승다운 스승을 찾을 수 없었으며, 자연히 성균관은 과거에서 입신하기 위한 명목상의 교육기관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조선후기까지 그 쇠락과 부흥의 반복은 국시의 변화, 국가 전체의 분위기와 그 성쇠를 함께 했다.

근대에 이르러 한국의 대학은 민족운동의 중심지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초의 근대대학이라 인정받는 숭실대학은 일제시대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지였다. 조선총독부가 숭실학교를 ‘불온사상의 근거지’로 주목하고 있었던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지시기 대학설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기도 했다. 김호일 중앙대 교수(사학과)가 집필한 ‘식민지 시기 대학설립운동의 몸부림’ 장에서는, 국민들의 열망으로 민립대학이 건설되었음을 주목하고 서울대학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은 일제 동화교육의 상징으로 그려내고 있다.

대개의 한국대학들이 그 학제를 모방한 미국대학의 소개가 빠져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중국, 타이완, 일본, 인도와 더불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대학의 역사와 이념을 상세히 추적한다. 그 가운데 세계최초의 근대대학으로 꼽힌 베를린대학은 1810년 당시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프로이센의 개혁운동 속에서 문화적 쇄신책으로 건립되었다. ‘19세기 초 프로이센 대학개혁의 구상’의 집필자 오인석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독일에서 근대국가형성의 지적 토대를 대학으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독일의 대학론은 국가적 과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은 애국심을 국민교육에서 끌어내려는 내셔널리즘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이런 시대정신 속에서도 베를린대학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국민대학을 세우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대학의 이념’을 위하여’를 집필한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는 12세기 ‘순수한 학도들의 자유로운 조합’으로 결성된 대학의 이념을 상기시킨다. 16세기 절대주의 국가 속에서도 “학문하는 자의 내면적 고독과 자유”라는 가치를 잃지 않으려 했다는 데 대학의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칼리지와 유니버시티와는 다른 ‘멀티버시티’(multiversity)로 탈바꿈하고 있는 국내대학의 모습은 국가와 대기업에 의한 대학정신의 상실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교양교육과 ‘담론’의 학풍을, 부활시켜야 할 큰배움터 대학의 모습으로 내세우는 이 책의 제안에 반론의 여지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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