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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학술서·고전번역은 논문보다 3~5배 가중치 주자
전문학술서·고전번역은 논문보다 3~5배 가중치 주자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7.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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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21플러스 ‘인문학 평가지표 개선’ 포럼

논문 편수 중심의 연구업적 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BK21 플러스 사업 평가에서 인문학 분야의 경우 논문은 1년에 2편까지만 실적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대신 전문학술서와 고전번역에 대한 가중치를 높여 논문보다 최대 5배의 점수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29일 한양대에서 ‘인문학 분야 평가지표 개선 방향’을 주제로 BK21포럼을 개최한다. 30일에는 공학 분야 평가지표 개선을 위한 포럼이 잇달아 열린다. 이미 예고한 것처럼 BK21플러스 사업은 내년 중간평가에 맞춰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전면 재평가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한국연구재단은 7개 학문분야별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지표 개선안을 마련해왔다.

그 동안 이공계 중심의 지표를 획일적으로 적용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학문분야별 특성을 감안해 평가지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선정평가 때는 과학기술 기초·응용, 인문사회, 디자인·영상으로 나눠 평가했다. 내년 중간평가 때는 이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농림·수산·해양, 의약학, 융·복합 등 7개 분야로 나눠 학문분야별 특성을 반영해 평가지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철학,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가 책임을 맡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다소 획기적인 방안이 여럿 포함됐다. 논문은 1년에 2편까지만 연구업적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것도 1편은 100점으로 인정하되 2편은 200점이 아니라 150점만 인정하는 방식이다. 손 교수는 “논문 편수로 연구업적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구 충실성을 왜곡할 수 있다. 질을 갖고 경쟁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인문학 분야 전문가위원회에 참여한 박찬길 이화여대 교수(영문학)는 “인문학 평가에서는 양적 비교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그 내용의 수준과 적절성을 평가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연구업적 비교가 불가피하다면 대표업적을 제출하도록 해 엄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연구논문을 인정하지 말자는 제안도 나왔다. 논문 집필자가 여러 명일 경우 대표저자 한 명의 업적으로만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논문 공동 집필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악용할 소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손 교수는 “인문학 분야도 같이 연구할 수는 있지만 논문은 각자 자기 관점을 갖고 쓰는 것이라 그런 경우(공동 집필)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연구 실적을 올리기 위해 교수가 논문을 썼는데 대학원생과 같이 썼다는 식으로 꾀를 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나온 인문학 분야 평가지표 개선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저술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고 저술에 대한 평가 비중을 대폭 높인 점이다. 현재 BK21플러스 사업 인문사회 분야 평가에서는 학술저서만 연구실적으로 인정한다(국내 학술지 게재 논문의 2배). 외국어로 발행한 학술저서는 3배로 계산한다. 개선안에서는 저술의 형태에 따라 이 비중을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로 확대했다.

전문학술서로 인정받은 저술은 학술지 게재 논문보다 최소 3배의 가중치를 부여하고, 평가에 따라 최대 5배까지 점수를 인정하자는 것이 인문학 분야 전문가위원회의 제안이다. 기존에는 빠져있던 번역과 교양서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엄정하고 치밀한 주석을 단 고전 번역은 전문학술서와 같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전문연구서나 문학작품에 대한 번역은 최소 2배에서 최대 3배의 가중치를 부여한다. 또 고급 독자들의 열독 대상이 될 수 있는 교양서도 학술지 게재 논문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3배까지 점수로 인정한다.

전문가위원회에 참여한 위행복 한양대 교수(중문학)는 “인문학의 연구 성과는 종류가 다양하며 저술 비중이 높은 것이 본래 양상이다. 학술지 게재 논문 위주로 진행되는 지금의 평가는 인문학 연구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다양한 형태의 저술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고, 중장기적 연구의 기획과 수행을 장려하는 쪽으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화라는 이름으로, A&HCI급 국제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양적평가에서 국내 학술지보다 3배의 점수를 인정하는 평가방식을 폐지하는 제안도 담겼다. 국제 학술지 게재 논문과 국내 학술지 게재 논문을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것이다. 외국어로 쓴 논문은 일차적으로 한국 인문학보다는 해당 언어권의 인문학에 기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큰 이유다. 다만, 대학원생이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해 발표를 할 경우에는 연구성과가 아니라 연구역량 강화 활동으로 봐서 국내 발표보다 1.5배의 점수를 인정해 주자고 전문가위원회는 제안했다.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철학)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인문학의 반자국화와 자발적  식민화는 모국어가 학술적 언어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저급한 언어로 퇴화하며 언어의 계급화 사태를 초래한다”며 또한 “학문적 담론 행위조차 사실상 모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각종 평가 장치에 의해 국내 대학원은 학문적으로 무의미하거나 영어권 대학 유학을 위한 예비학원으로 전락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위원회에서 제안한 평가제도 개선안이 그대로 내년 중간평가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 책임자인 우제창 목포대 교수(생명과학과)는 “학문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가 기본 원칙이고, 긴 안목에서 대학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평가지표를 마련해 달라고 전문가위원회에 부탁했다”며 “분야별 포럼과 8월 22일 전체 포럼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8월 말까지는 평가지표 개선안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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