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숭모회/기념관이 ‘안중근 의사 알리기’ 제1회 UCC 공모전을 연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안 의사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해 생기는 오해를 없애고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 안 의사의 평화사상을 국내외 젊은 세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주제로 동영상, 뮤직비디오, 광고, 애니메이션, 패러디 등 UCC 동영상을 제작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뒤 숭모회에 참가신청서를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오는 8월 18일부터 9월 22일까지 신청서를 받는다. 최우수상(200만원), 우수상(150만원), 장려상(2인 각 50만원)을 시상한다.
이번 공모전은 숭모회 이사를 맡고 있는 이영옥 성균관대 명예교수(68세, 영문학ㆍ사진)가 제안해 추진됐다. “일본은 아베 재집권 이후 점점 극우로 가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제국주의로, 군국주의가 된단 말이죠. 20세기 초상황과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이 교수는 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안의사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본 사람들이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이고 살인자라고 하면, 외국 사람들은 그렇게 알 수밖에요. 안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외국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자료도 없고, 알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돌아가신지 100년이 더 지났는데도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안중근 UCC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 교수는 “7~10분 분량의 동영상에 안 의사의 일생을 다 담기는 어렵겠지요. 안 의사에 대해 하나의 초점과 시각을 잡아내 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안 의사의 평화사상 개념인 ‘동양평화론’의 요점이 잘 드러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안 의사에 관심을 갖고 깊이 알게 된 계기는 부친인 故이종락 선생이 2000년 12월 돌아가신 뒤다. 아버지가 평생 흠모했던 안 의사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이 교수는 2012년 2월 정년퇴임 직후 매주 화요일 두 시간씩 15주 동안 안중근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안중근 의사 홍보대사가 됐다. 2001년 봄에는 부친의 뜻에 따라 숭모회에 1억 원을 기부했고, 이 교수 자신도 성균관대를 정년퇴임하며 숭모회에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 기금으로‘경광 장학금’을 마련해 해마다 3~4명의 학생들에게 300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 교수의 아들과 며느리 이름으로 1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는데, 아들 결혼식 축의금 중 1천만 원을 숭모회 운영비로 기부를 한 것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중국 루쉰 감옥에 수감됐다. 이듬해 사형 집행 전까지 옥중에서 저술한 것이 자서전인『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등이다. “‘안응칠 역사’는 친필 원본도 없어요.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무엇을 했는지 뼈대는 알 수 있어요. 왜곡된 부분도 있을 텐데, 이 책은 그대로 읽어선 안 되고 행간을 읽어야 해요.”
이 교수는 ‘안응칠 역사’ 친필 원본을 찾는 일과 함께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안 의사가 순국 직전에 정근ㆍ공근 두 아우와 홍 신부에게 전한 최후의 유언이다. 이 교수는말한다.“ 지금이호기에요. 중국과 가까운 시기니까요. 이럴 때 빨리 안 의사를 어디에 매장했는지 찾아서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야죠.”
영문학자인 이 교수는 외국인에게 안 의사를 알리는 일에도 나설 생각이다. 안 의사와 관련된 저술의 영문 번역도 계획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하와이대에서 박사를 했다. 성균관대 대외협력처장과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회장과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스코퍼스 한국저널선정위원회 위원, 안중의사숭모회 이사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