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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랑스 뮤지컬 답사기
나의 프랑스 뮤지컬 답사기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4.07.25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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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1992년 파리 ‘마가도르’ 극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봤다. 공연은 프랑스어로 이뤄졌다. 소규모지만 무대 앞에 자리한 오케스트라, 360도 회전하는 무대, 결합과 분리가 자유로운 거대한 바리케이드, 자베르 경감의 삼각모, 퀭한 눈의 어린 코제트, 야수 같은 눈빛의 장 발장, 시위대가 흔드는 붉은 깃발, 어느 것 하나 이 뮤지컬 특징을 이루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완성도가 높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친숙한 멜로디와 극의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뮤지컬이 지금까지도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세계적인 공연으로 회를 거듭하고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만 5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뮤지컬을 알아본 나의 선견지명에 괜히 자부심이 들기도 한다.

불문학 전공자로서 빅토르 위고의 5권짜리 장편 소설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거대한 서사구조는 차치하고라도 이기심과 희생, 사욕과 인간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장 발장, 원칙과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한 치의 관용과 용서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자베르를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말하자면 대문호의 원작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힘이자 난관으로 작용했다.

사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에서 탄생했지만 세계적인 뮤지컬로 성장한 데는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의 기획력과 원작의 재현보다는 이해에 중점을 둔 연출의 힘이 컸다. 말하자면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뮤지컬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다.

나의 두 번째 프랑스 뮤지컬은 「노트르담 드 파리」다. 이 뮤지컬 역시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큰 성공을 거뒀고 국내에 프랑스 뮤지컬 붐을 일으켰다.

나는 이 공연을 몇 달 앞두고 홍대 앞 지하 카페에 친구 둘과 모였다. 나를 비롯한 세 사람 모두 프랑스 리옹의 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로, 한 사람은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 뮤지컬이 국내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고, 원작을 번역 출간하면 틀림없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의기투합했다. 번역은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밤샘 작업 끝에 공연 전에 책이 출간됐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번역한 책은 대형 출판사가 먼저 나서는 바람에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지만 뮤지컬의 성공과 함께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도 우리는 「레 미제라블」을 번역 출간했는데, 베스트셀러에 대한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작가의 원작을 공연작품으로 만든 이 두 편의 프랑스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프랑스 뮤지컬은 영미 뮤지컬에 비해 주제가 무겁고 무대 장치 또한 단순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많지 않은 대신 ‘들을 거리’가 많다. 문학작품이 원작이니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 역시 담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볼거리’를 찾는 우리나라 관객의 취향에 들어맞는 뮤지컬이다.

프랑스 뮤지컬과 관련된 나의 세 번째 여정은 대학 강의로 이어졌다. 이미 20년 전에 프랑스 뮤지컬을 봤고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두 편이나 번역했으니, 더 나은 뮤지컬 강의 적임자를 찾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린 터였다. 마침 새로 설립된 사이버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있어 ‘뮤지컬로 읽는 문학 작품’이라는 강좌를 서둘러 개발해 촬영에 들어갔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평소 자주 듣던 뮤지컬 곡을 설명하다 보니 강의를 하면서 이때처럼 즐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이버 강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학생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강의에 관한 의견을 읽다보면 의외로 50대 이상의 주부들이 뮤지컬에 관심이 많고 공연장에 꼭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뮤지컬 강의가 문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주부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일깨워줬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 덕분인지 국내 뮤지컬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제작비만 100억 원에 육박하는 뮤지컬도 심심치 않게 만들어지고 있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비율이 높은 것도 긍정적인 현상이다. 다만 몇몇 대형 라이선스 공연과 스타 배우가 출연한 작품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1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티켓은 뮤지컬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티켓이 없었더라면 나의 프랑스 뮤지컬 입문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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