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5:10 (금)
분자생물학 전공 활용 … 과학저널 부고 통해 인물 조명
분자생물학 전공 활용 … 과학저널 부고 통해 인물 조명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4.07.21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67. 강석기 ‘전업과학저술가’

2014년을 ‘靑馬’의 해라고 부른다. 그런데 주위에서 파란색 말을 본 적 없다. 척추동물에는 파란색 색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마’는 존재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 3월 출간된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강석기 지음, MID 刊)에서 찾을 수 있다. 파란색 깃털을 가진 새들을 떠올리며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면 과학에 흠뻑 취할 준비가 됐다. 문제의 열쇠는 멜라닌, 구조색, 케라틴 단백질, 틴들 산란에 있다.


이번 책의 저자는 과학저술가(science writer) 강석기다. 그의 전작 『과학 한잔 하실래요?』와 『사이언스 소믈리에』는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될 정도로 필력을 인정받았다. 과학 하면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게 태반인데 강 작가는 쉽게 풀어낸다. 그는 서울대에서 화학과 분자생물학(同 대학원)을 전공했다. 그래서 강 작가의 글에는 화학과 분자생물 관련 내용에 막힘이 없다. 그동안 과학전문 기자로 활동해온 전력까지 더해져 글은 훨씬 매끄럽다. 전업 작가로 나선 그를 만나봤다.


우선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제목이 눈길을 끈다. 어떤 의도인지 묻자 강 작가는 “동음이의어 한자의 묘미를 살린 것인데 앞은 취할 取, 뒤 역시(!) 취할 醉다”라며 “과학을 적극적으로 찾다보니 어느새 과학에 흠뻑 취했다는 의미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되기를 희망한 제목이다”라고 말했다. 책은 최근 핫 이슈에서 시작해, 건강·의학, 영양과학, 생명과학, 신경과학·심리학, 수학컴퓨터과학, 물리학·화학, 인물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한다.

이슈와 건강, 신경과학에서 인물까지 종횡무진
그런데 지난 책들과 이번 책이 에세이들을 모아놓다 보니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지는 못한 것 같다. 콘텐츠는 풍부한데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까. 이러한 의견에 대해 강 작가는 “한 해 동안 있었던 과학이슈들을 다룬 에세이를 모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라면서 “국내에 이런 순발력으로 최신 과학 동향 전반을 리뷰할 수 있는 책이 없기 때문에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그는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본격적인 단행본은 워낙 큰일이라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서 “대신 외국 단행본을 번역하는 일을 먼저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반물질』(프랭크 클로우스 지음, MID 刊)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했다. 조만간 새로운 번역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책의 범위가 광범하지만 그 내용은 알차고 깊이가 있다. 예를 들어,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인간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차이에 대해 표면 단백질끼리의 결합과 이후 바이러스의 침투여부로 설명한다. 헤마글루티닌(H)은 조류 소화관(인간은 상기도) 세포표면에 있는 시알산과 갈락토스의 알파2, 3(인간은 알파2, 6)-결합을 인식해 달라붙는다.


강 작가는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을 인용해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의 몸에서 분리한 H7N9형의 게놈을 조사한 결과 헤마글루티닌의 아미노산 서열 가운데 하나가 바뀌면서, 기존 알파2, 3-결합을 인식하는데 더해 알파2, 6-결합에도 달라붙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라고 적었다. 다시 말해 “H7N9형은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인간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과도기적 형태인 셈”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H7N9형 감염자가 적은 이유는 사람의 기도를 덮고 있는, 점막층의 뮤신 단백질 때문이다. 뮤신 단백질은 시알산과 갈락토스의 알파2, 3-결합을 하고 있어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대개 여기에 머문다. 하지만 변이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에 위험을 간과할 순 없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강 작가는 “지구촌이 되면서 인구의 이동이 워낙 심해 자칫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나갈 개연성이 높다”면서도 “2009년 신종플루에서 봤듯이 각국이 협력해 신속하게 대처하면 팬데믹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바이러스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존재다. 강 작가는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놓일 정도로 단순한 생명체이지만 판도라바이러스처럼 불과 10여 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유형도 있고 아무튼 아직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라고 지적했다. <사이언스>는 지난해 7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장 큰 판도라바이러스의 발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에는 판도라바이러스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과 함께 바이러스의 기원과 역사적 내용도 담고 있다. 1998년 프랑스 지중해대 디디에르 라울 교수팀은 시료를 분석한다. 그 시료는 영국 공중보건연구소 역학조사팀이 예산 삭감으로 냉동고 한 쪽에 버려둔 것이었다. 2003년 라울 교수팀은 끈질긴 연구 끝에 길이가 0.7마이크로미터, 게놈 크기가 118만 염기, 유전자 1천여 개로 이뤄진 거대한 미미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강 작가는 주로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참조한다. 과학 에세이를 쓰는데 가장 좋은 소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독료가 꽤 비싸지만 두 저널을 구독 중이다. 이 밖에 강 작가는 위키피디아를 많이 참조한다. 그 이유는 “어떤 주제에 대한 개론이 될 뿐 아니라 참고문헌도 잘 소개돼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전업’ 과학저술가의 국내 가능성은?
국내 출판 시장이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전업 과학작가의 생활이 어렵지 않을까 궁금하다. 강 작가는 “스스로 다운시프트족(downshifter)이라고 위로하며 살고 있다”라고 말한다. 전업작가가 된 지 2년. 경제적 위축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는 “과학 단행본 출판은 워낙 공이 많이 들어가므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다양한 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면서 “따라서 콘텐츠가 좋은 외서를 번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출판시장 위축에 대해선 “하루 24시간은 불변이므로 인터넷과 SNS에 많은 시간을 쓰는 현대인들이 책을 덜 읽는 건 불가피한, 한마디로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 발달로 인해 “모든 사람이 콘텐츠 소비자이면서 생산자가 된 것”이 주원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책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아마도 과학저널의 부고를 통해 본 인물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기획에 대해 강 작가는 “쏠림현상은 과학자도 예외가 아니다”고 답했다. 아인슈타인 전기는 여럿이지만 묵묵히 연구한 과학자들은 설사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작들부터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를 수록했다. 강 작가는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를 존경한다. 생어법(DNA 염기 서열 분석법 중의 하나)으로 유명한 프레더릭 생어는 “노벨화학상을 두 번 탔을 정도로 대단한 과학자이지만 늘 겸손했고 65세 정년을 맞아 미련 없이 학계를 떠났고 그 뒤 어떤 감투도 쓰려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나중 30년은 조용히 살았다.


한편, 강 작가는 미국에서 인사를 건넨 적 있는 칼 짐머(『바이러스 행성』, 『기생충 제국』 등의 저자)도 좋아한다. 칼 짐머에 대해 강 작가는 “해박한 지식과 철저하면서도 광범위한 취재, 탁월한 구성과 글 솜씨 등 경이로운 능력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국내에 드문 ‘전업 과학저술가’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ity@empa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