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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쟁 : 프랑스, 1천5백여명 유대인 학살한 최고령 파퐁 석방 논란
해외논쟁 : 프랑스, 1천5백여명 유대인 학살한 최고령 파퐁 석방 논란
  • 김유석/통신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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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0:45:56

지난 9월 18일 프랑스 항소재판소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조종한 혐의로 수감 중이었던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을 석방했다. 그는 1998년 프랑스 중죄 재판소에서 2차 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비시 정권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활동하면서 1천5백6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런 그가 92세라는 고령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더 이상 수감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돼 석방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논쟁은 프랑스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주 미묘하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사실 모리스 파퐁 사건은 프랑스의 사법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길고 복잡한 사건이었다. 1910년생인 그는 파리 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 사회학을 공부했고, 1935년 정계에 입문, 2차 대전 중이던 1942년에 지롱드 주 정부의 총 비서로 근무했다. 한편으로 나치의 신임을 받았던 그는 암암리에 레지스탕스 세력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특히 1943년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 지역 유대인 2백명의 명단을 삭제함으로써 인종학살 저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후 모리스 파퐁은 정계에서 승승장구했고, 1981년 미테랑 집권 전까지 파리 경찰청장과 재무장관 등 행정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문제의 발단은 1981년, 그가 비시정권 시절 어린이 2백명을 포함한 1천5백60명의 유대인을 체포, 아우슈비츠로 이송하는 데 공모했다는 사실이 ‘까나르 앙셰네’지에 폭로됨으로써 시작됐다. 모리스 파퐁은 그것이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일이며 자신은 과거에 대해 일말의 후회나 죄책감도 갖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파퐁이 레지스탕스 운동을 일부 지원한 것은 인정되나 1942년 이래로 유대인 학살에 개입한 책임이 엄연히 있으며 이는 명백히 반 인륜 범죄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 결국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파퐁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그는 89세의 나이에 상테 감옥으로 이송됐다. 1981년 모리스 파퐁에 대한 고소장이 공식 접수된 이래로 1998년 최종 판결까지 무려 17년을 끈 재판의 결말이었다. 이 재판이 프랑스 사법사상 최장기간에 걸친 것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인권·반인륜 17년 동안 팽팽히 맞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종 인권단체들이 모리스 파퐁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서기 시작했다. 92세의 고령에다 심장질환까지 앓고 있는 노인을 감옥에서 죽게 하는 것이 과연 인륜적인 행동이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실제로 현재 프랑스에는 60세 이상의 고령 수형자들이 1천7백64명 있으며, 이들 중 자살을 제외하고 1백37명이 감옥에서 죽었다고 지적하며, 인권 차원에서 죽음을 앞둔 고령 수형자들의 석방을 확대함으로써 ‘좀더 인간다운 최후(fin plus humaine)’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파 신문인 ‘르몽드’ 역시 사설을 통해 파퐁은 명백히 반 인륜적 범죄자이며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고령 수형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사법체제가 지닌 별개의 의무이며, 그런 의미에서 파퐁에 대한 항소재판소의 석방결정은 옳은 것이었다고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범죄 가운데 반인륜 범죄를 가장 악랄한 것으로 보고 공소시효까지 없애가면서 엄중하게 응징하는 프랑스의 법 체제에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파퐁은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 프랑스 내 유대인 단체를 비롯, 수많은 정치단체들은 파퐁을 결코 석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라크 대통령도 파퐁을 석방해 달라는 세 차례의 탄원을 모두 거부했으며, 프랑스 법원 역시 파퐁의 건강 상태가 석방의 사유로 충분하긴 하지만, 그의 사회 복귀를 보장할만한 충분한 근거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의 모리스 파퐁에 대한 석방압력은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올해 7월 유럽연합 인권 재판소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모리스 파퐁의 항소 기각건과 관련해 프랑스를 불공정 재판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내외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프랑스 항소법원은 지난 9월 18일 모리스 파퐁이 고령으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수형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 석방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시즘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상테 감옥을 나온 파퐁은 고향인 그레츠-아르맹빌리에로 돌아갔다. 그는 거기서 자유의 몸으로 곧 다가올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귀향을 지켜본 프랑스 지식인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고령 수형자들에 대한 인권과 그들의 ‘좀더 인간적인 최후’가 보장될 수 있는 길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이면 이 논의가 다른 사람도 아닌 1천5백60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모리스 파퐁의 석방을 통해 이슈화됐는가 하는 것이었다. 인권이라는 숭고한 이념이 가장 반 인륜적인 범죄자에게 적용돼야 하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누벨 옵세르바퇴르’지 편집장이자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 논객 가운데 한 사람인 장 다니엘은 자신의 당혹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의에 영광을 안겨주었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모리스 파퐁은 어떠한 자백도, 조금의 회한도, 아무런 후회나 뉘우침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조건에서라면 비시 정부하의 이 고위 공무원에게는 눈곱만큼의 관용이나 연민도 생길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아픈 것이 명백하다면, 나는 그를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그의 구금이 빈사상태의 노인을 담보로 한 가학적인 보복으로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이는 쇼와(파시즘) 시대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에게 부과해온 것과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석/통신원 파리1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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