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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用의 시간, 無用의 시간
有用의 시간, 無用의 시간
  • 교수신문
  • 승인 2014.07.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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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 대학가는 여름방학을 맞아 겉으로는 비교적 조용해졌다.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학생과 교수 모두 방학 동안에도 쉴 틈 없이 바쁘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대학마저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둘리면서 학생들은 어려워진 취업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땀을 흘리고, 교수들은 학기 중 강의 때문에 미뤄둔 논문을 작성하고 연구비 수주를 위한 제안서를 쓰느라 고심하고 있다. 재학생을 위한 여름학기와 외국학생을 위한 서머스쿨도 진행되고 있고, 외국어강좌와 취업특강, 초중고생들을 위한 각종 캠프도 개설돼 분주하다.


이런 학내의 바쁜 움직임과 함께 모처럼 긴 방학을 맞은 우리 대학생들은 농촌봉사활동, 기업체 인턴, 국토대장정과 해외여행,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 등으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의 방학활동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은 역시 農活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수출주도형산업정책 때문에 농업인구가 급감해 이제 농촌에는 노인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대학생들이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고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식민지시대의 농촌계몽운동에 뿌리를 둔 대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은 대학생들이 힘든 농사일을 직접 체험하면서 농민들과 어려움을 같이 나눔으로써 자신의 삶을 성숙시키는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되고 있다.


한편 교수들은 학기 중에는 강의 부담과 학생 지도, 각종 자문과 산학협력 등으로 한 학기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방학을 맞아 연구와 실험에 집중적인 시간을 보내거나 필요한 연구자료의 수집과 최신의 학술정보의 교류를 위해 학회 및 워크숍 참석, 공동연구를 하는 연구소 탐방, 연구현장 조사 및 답사 등으로 방학을 활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방학만으로 시간이 부족할 경우 체계적인 저술활동이나 집중적인 연구, 해외연구기관과의 공동협력을 위해서는 연구년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대학인들은 학기 중 有用의 시간에는 교육을 하고, 방학이라는 無用의 자유시간에는 연구와 봉사에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유용의 시간과 무용의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대학인들에게 요즘 들어 효율성과 경제적 이유를 들어 여름방학을 줄여 기존 2학기제를 3학기로 개편하려는 논의나 교수들의 연구년제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3학기제를 시행하는 영국 대학의 경우에도 여름방학이 길고 부활절에 한 달 방학이 있어 실제 학사운용은 우리나라의 2학기제와 별 차이가 없어, 자칫 3학기제 도입이 학사운영은 똑같이 하면서 등록금만 한 학기 더 받으려는 대학들의 얄팍한 경영논리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들의 연구년제 축소와 폐지 시도는 단기적으로는 강사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연구역량의 쇠퇴와 최신 학문과의 격차를 초래해 정부와 대학당국이 강조해마지 않는 국제적 경쟁력의 하락을 가져오는 소탐대실의 위험성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과 활용보다 각 분야에서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창조적 인물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한다면, 대학교수들의 연구년을 개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제 분야에도 이런 제도를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와 대학 당국은 세종대왕이 왜 東湖의 廢寺를 수리해 독서당을 마련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 독서와 연구에 전념케 했었는지 그 깊은 뜻을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김 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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