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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학술지?
기타학술지?
  • 이기홍/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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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이기홍/편집기획위원·강원대

학술진흥재단에 온라인으로 연구비를 신청하는데 화면에 연구실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통보가 떠올랐다. ‘대표실적’ 5편을 입력했는데도 충족되지 않다니.

몇시간을 씨름하다가 학술진흥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국내전문학술지와 국외전문학술지만 대표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제한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기타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대표실적으로 지정한, 아니 그런 책에 논문을 게재한 또는 그 책을 기타학술지로 분류해서 입력한 내 불찰이었다.

그 책은 내 은사 한분의 정년을 기념하는 논문집이었다. 회갑기념논문집이나 정년기념논문집 간행을 허례라고 힐난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나는 제자들이 스승의 학은을 기리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게으름 때문에 그런 논문집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글을 실었고, 연구실적을 입력하면서 저서로 구분하기도 마땅치 않고 또 전문학술지라는 구분을 선택하기도 마땅치 않고 해서 기타학술지이라는 범주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기야, 그 논문집의 간행위원회에서 ‘연구실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미리 연락하면 이름있는 학술지에 게재를 주선하겠노라고 일찌감치 통문을 보내왔었는데, 나는 그것 또한 제대로 챙기지 않고 건성으로 지나치는 불찰을 저질렀다.

모두가 데데하고 덤벙거리는 내 허물에서 비롯된 일이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이른바 ‘연구의 질 관리’를 위해 게재된 논문에 대한 심사가 엄격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기록이 있는) 전문학술지로 한정해 연구자의 능력을 확인하려는 학술진흥재단의 고충도 이해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꾸 약이 올랐다. 필자 자신이 ‘대표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데도 기타학술지에 실렸으면 ‘대표’가 될 수 없다니,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인가. 대표는 ‘전문’경기장에만 내보내고 ‘기타’경기장에는 非 대표만 내보라는 말인가.

내친 김에 더 이야기해보자. 대표실적이 부족한 사람은 연구능력이 모자란 것인가. 연구능력이 모자란 사람은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는 것인가. 연구능력이 모자란 사람을 지원해 연구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왜 있을 수 없는가. 대표실적이 부족한 사람을 지원해 대표실적을 더 많이 발표하게 하는 일은 왜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이 대목에서 (신)자유주의자는 ‘시장의 힘과 경쟁의 논리’를 상기시킬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일단 검증된 능력과 실적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잣대라고 강변할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변할 수 없다니, “Long live the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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