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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생각이 난다
땅콩 생각이 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7.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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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교동 택지에는 아직 집이 들어서지 않아 텃밭으로 쓰는 터가 많다. 상추와 부추, 쑥갓이나 파, 들깨, 가지, 호박을 키운다. 어디서나 흔하게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도라지꽃이 핀 걸 보고, ‘이 동네 사람들은 도라지를 키우는군!’ 했다. 긴 줄기에 난 보라색 하얀색 꽃이 멀리서도 곳곳에 보여서 텃밭이 꼭 화단 같다.


그런데 가까이서 들여다본 내 눈길을 끈 건 땅콩이다. 땅콩을 두세 줄 정도 키우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콩 종류이긴 하지만 잎사귀가 난 모양은 여느 콩과 다르고 오히려 아까시 잎 모양에 가깝게 동글동글하다. 잎의 색도 더 진하고 푸른 기가 있고 표면이 흰색이 감돈다. 그래서 대파색의 느낌이 난다. 그 줄기와 잎을 알아보고 뭐 감동을 먹고 눈길을 준 건 아니다. 어릴 때 내 손으로 키워본 터라 반가와서다.
아니, 반가움만도 아니다. 뭐가 더 있다. 이 여름 이 즈음 그 녀석을 보고 느끼는 이 감정에는. 굳이 딸기 생각을 할라치면 고마움과 달콤함과 통쾌함을 느낀다. 양딸기 키우는 일은 다 하진 않아도 도와드린 적이 있다. 딸기는 알아서(부모님은 늘 알아서 되는 것은 없다고 하셨지만) 줄기를 뻗고 꽃이 피고 그 자리에 오돌토돌한 열매가 열려 탐스럽게 익어간다. 따 먹고 기다리면 다른 열매들이 또 익어있다! 아침 햇살에 익은 딸기를 따 먹으면 참말로 그 맛이란 그만이다.


아침햇살에 이슬방울을 영롱하게 매단 잎사귀들 사이로 보이던 딸기들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포장된 딸기 꾸러미에서는 햇빛을 받으며 잎을 들추면 잎에서 떨어진 이슬로 촉촉이 젖은 그 딸기들의 끄는 힘과 싱그러움을 찾을 수 없다. 아침 공기가 상쾌한 것은 아침 풍경이 싱그러워서다. 아침마다 달콤한 잠을 떨치고 동생들과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듯 뛰어갔다. 빨간 기가 도는 것만 보이면 익었다고 ‘결정하고’ 따 먹던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아주 가끔. 그런데 땅콩에 대한 기억은 조금 다르다.


땅콩은 땅에서 자라는 콩이다. 열매가 땅 속에서 익어 늦가을에 뿌리째 당겨 거둘 때에 어찌나 뿌듯한지! 콩깍지째 잘 씻어 그대로 찐 다음에 식혀서 까먹으면 맛이 좋다. 문제는 이게 땅에서 거두는 여느 먹거리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걸 모르고 덤볐건 거다. 심었다가 땅에서 캐어내면 되는 줄 안 거다.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하려니 한 거다. 장 피아제가 말하는, 6세 수준의 오류. 그 오류가 빚은 오류였다.
고구마에 어미고구마(어른들은 씨고구마라고 불렀음)에서 순이 난 부분을 하나 이상 남도록 잘라서 그 놈을 심고 흙 둔덕을 쌓아주고 콩콩 눌러주면 된다. 땅 위에서 줄기가 왕성하게 뻗어나가는 동안, 땅 속 뿌리도 군데군데 통통해진다. 그게 고구마다! 그걸 파내면 그만이다. 감자는 줄기의 일부가 알아서 땅 속에서 자란다. 땅콩은 달랐다. 그걸 몰랐다.


무와 당근 같은 덩어리는 하나씩 당겨서 꺼내면 된다. 그걸 잡아당기는 일을 도왔다. 땅위에 난 줄기 하나에 뿌리 하나가 달려 일대일대응이다. 그런데 고구마와 감자 같은 덩어리는 일대다 대응이다. 어린 마음에 고마운 녀석들이었다. 그 때는 그게 땅의 고마움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호미로 캐다가 흠을 내거나 아예 동강을 내면 속이 탔지만 잘 파냈을 때는 그만큼 흐뭇하다. 고구마와 감자가 여러 개가 둥글둥글 달려 흙에서 나오니 처음 볼 때 참말로 놀랐다. 동생은 더 했다. 자기는 커서 고구마 농사를 짓겠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감동했다. 어른들이 그 말에 허허 웃으셨다. 난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왜 땅콩에 감작이 됐을까? 길러보겠다고 나설 정도로까지 말이다. 그 고소한 땅콩 맛을 보았을 거다. 중국에서 대량 수입되는 지금과 달라 그 고소하고 듬직한 게 귀했다. 7시 뉴스에 나오는 바로 저 미국 대통령이 땅콩을 키운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건 분명히 기억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재임 시작 연도는 1977년이라고 나온다. 그러면 국민학교 4학년 때다. 그런데 기억으로는 나의 땅콩농사는 그보다는 좀 더 컸을 때 같은데 확인할 길은 없다.


하여간 또, 노란 콩 말고 이 땅콩은 정말로 땅 속에서 난다는 말을 듣고 흥분했다. 이건 아주 확실하다. 심어보겠다고 나섰다. 아주 조르기까진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하하 웃으시며 정말 해볼테냐고 물으셨던 기억은 난다. 그리고 방학 때에 그 이유를 몸소 느꼈다. 학기 중엔 아마 부모님이 돌보셨을 거다. 문제는 여름방학이었다. 뻐꾸기 소리에 매미 소리가 이어지는 계절. 장마철은 최악이다.


하하. 장마철에 쑥쑥 자라 위로 옆으로 풍성해지면 자주 밭에 가서 덮어줘야 한다. 잎이 난 줄기까지 많이 덮어줘야 한다. 덕분에 일기장은 땅콩 이야기로 무성했다. “땅콩 줄기가 또 자랐다. 흙을 덮어주고 왔다”로 자주 채웠다. 지루함과 후회에 재미와 흥분이 다 빠진 쳐진 나에게 유머까지 생겼다(그땐 넋두리였다!). 이게 재크와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계속 자라는 건 아니겠지! 라고. 꽃이 진 씨방이 땅 속에서 콩깍지로 자라도록 덮는 거라는 사실이나 그 때문에 한자이름이 낙화생이라는 사실은 요번에야 찾아보고 알았다.


땅콩을 먹을 때에도 가끔 그 때 생각이 나곤 한다. 그 회상만으로 은근히 농사일에 자신 있다는 눈치를 주면 농사깨나 아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혀를 찰 게 분명하다. 그 해 여름 방학 내내 힘들었지만 일기장은 덕분에 간단히 채웠고 그 몇 줄짜리로 일관한 일기장을 보시고도 선생님은 칭찬까지 해 주셔서 의외였다. 가을걷이는 정말 감동이었다. 선선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이 마른 가을공기. 가을바람의 냄새도 느껴지는 듯하다. 여름방학 일기장엔 못 적었지만 늦가을 저녁 찬 바람에 호호 거리며 수확하며 뿌듯하고 신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알찬’ 보람을 느꼈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고 있다. 20대를 눈앞에 둔 아이는 내 어릴 적 이야기를 시골꼬마의 이야기인 양 듣고 있다가, 외할아버지 똥그란 눈이 생각난단다. 아마 그 큰 눈으로 웃으시며 엄마한테 정말 해볼테냐? 라고 물으셨을 거라고. 정말 그랬다. 하하. 그리곤 난 ‘쌤통’으로 빼도 박도 못하고 장마철 아침마다 낑낑대며 가서 흙을 올렸다. 강릉 사람들 텃밭 마냥 두세 줄이 아니었다. 여러 줄로 즐비했다. 아, 여름이다, 여름!

□ 다음 호 필자는 김현실 연세대 치의대 교수입니다.

강명신 강릉원주대 치대교수·의료윤리
필자는 연세대에서 보건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철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치의학과와 치위생학과와 일반 학부에서 의료윤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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