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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확산조짐의 인물비평,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슈 : 확산조짐의 인물비평, 어떻게 볼 것인가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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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0:43:25
최근 계간 사회비평 2002년 가을호에는 인물비평이라는 이름의 글이 두 편 실렸다. 그 동안 여러 지면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임지현 한양대 교수(사학), 문학평론가 남진우 등이 실명비판, 혹은 지식인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주거니 받거니 오고간 글들이 더러 있었지만, 꼭지 이름까지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인물비평’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비평 편집주간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의 말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일단은” 대담한 시도인 셈이다. 아울러 인물비평이 새로운 지적작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인물비평에서 허용될 수 있는 ‘비평’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등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인물의 ‘무엇’을 비평할 것인가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비평이 시도한 인물비평은 인물비평이라고 보기 힘들다. 비평의 대상인 자유기고가 진중권 씨와 소설가 복거일 씨에 대한 비판 지점은 그 ‘인물됨‘이 아니라 글쓰기와 논리전개 방식이다. 안진걸 씨는 진중권 씨의 글쓰기가 “가혹하면서 일방적인, 조롱하고 매도하며 쾌락하는 듯한 글쓰기, 특정 집단에 대한 왜곡된 증오감으로 점철된 글쓰기”라고 비판한다. 즉, 진중권 씨가 사상과 담론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 글쓰기 방식과 말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복거일 씨가 ‘철학과 현실’ 여름호에 발표한 ‘친일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라는 글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복씨가 펼치는 논리의 허술함과 친일문제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비판하고 있다. 정씨는 그 글이 한 마디로 ‘친일파 무죄론’이며, 복씨가 “이 같은 논쟁적인 주장을 펴면서도 친일파 관련 연구서나 자료집 하나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쓴 불성실한 글”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 면에서 복거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그가 내세우는 논리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이렇듯, 비평자들도 아직까지 인물비평과 담론비평, 혹은 주제비평을 명확히 구분 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상과 이념, 혹은 담론에 대한 비평과 인물비평은 어떤 지점이 다른가.
인물비평을 기획한 김진석 사회비평 주간은 그 부분에 대해 “애매하고 어렵다”라고 말문을 연다.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가 가장 어렵다. 일부 문학비평처럼 ‘주례사비평’으로 일관하면 인물비평도 쉬워지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지식사회에서 아직까지 인물비평이 힘든 이유는 개인이 정치, 사회, 문화 등 너무 많은 문제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인물비평을 위해서는 한 인물의 복잡한 면을 들여다봐야 하지만,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균형 잡기 힘든 부분이 많다”라고 토로한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고, 때로 싸우기도 하고 때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논쟁은 잘 안하고, 두루뭉실한 소리만 한다는 것이다. 인물비평은 두루뭉실한 지식계에 명확한 논점을 제시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아울러 인물비평의 생명은 ‘움직이는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물비평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 꺼리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크고, 인신공격에 대해 지레걱정이 앞서는 부분도 있다. 인물에 대해 비평한다는 것은 곧, 그 인물에 대해 욕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회적인 풍토도 한몫 거든다.
그렇다면 다른 지식인들은 인물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지식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두루뭉실한 논쟁문화에 적극적인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와, 지식인을 평가하는 방식은 그의 지식이어야지 인격이 아니라는 것, 자칫 인격모독의 소지가 크다는 부정적인 견해 두 가지이다.

“논쟁문화 부활이다”· “상업적 글쓰기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일단 우리 사회의 인물비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전제한 뒤, “특정 언론이 정치인이나 소설가, 연예인들에 대해 ‘입맛에 맞게’ 재단하는 감정적 인물비평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반면에 사회비평처럼 지식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매체에서 벌이는 인물비평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좀더 활발한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한 편으로 김 교수는 인물비평을 지식사회의 ‘세대교체’와 연결 짓기도 한다. “인물비평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지식의 구체제’가 점점 소멸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학맥도 없이 순전히 자주적인 힘으로 성장한 신진 지식인들이 본격적인 인물비평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50, 60대 지식인들이 너무 흠이 많아 누구를 비평할 처지가 못된다는 방증과도 같다”는 것.
인물비평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은 인격비평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인물비평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권 교수가 생각하는 비평은 “개인의 생각이나 사상, 입장과 철학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지, 개인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은 아니다. “한국사회 지식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말을 바꾸고 일관성 있는 생각을 펼치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이런 면에서 엄밀한 지식인 비평은 필요하지만, 인물비평의 방식은 아니다. 우리가 한 지식인을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글을 통해 드러내는 사상과 철학일 뿐, 인격은 아니다. 인격을 모르는데 어떻게 인물을 비평할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또한 지나치게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복잡한 역사적 현실을 흐릴 수 있다고 권 교수는 지적한다. 권 교수는 아울러 지금의 인물비평이 ‘대중적 글쓰기’로 알려진 이들을 지나치게 주목하는 상업성이 엿보인다고 지적하면서, “한켠에서 묵묵히 업적을 쌓은 지식인에 대한 정중한 비평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인물비평을 ‘당하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비평의 당사자인 진중권 씨는 정작 “인물비평에는 관심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특정한 발언과 사상적 맥락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인물비평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특정 ‘사안’에 대해 논쟁해야지 개인의 ‘성향’을 건드릴 필요가 있는가. 한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이 논쟁거리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라는 것이 그 이유.
인격모독과 담론비평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인물비평은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지식인 사회의 새로운 흐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물비평의 필요성을 회의하는 많은 지식인들 틈에서 어떤 인물을 찾아 어떻게 비평해야 할지, 판을 벌인 이들의 고민은 자못 크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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