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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목민시대의 패러다임과 ‘사회 이후 사회’
신유목민시대의 패러다임과 ‘사회 이후 사회’
  • 교수신문
  • 승인 2014.07.1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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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모빌리티』 존 어리 지음|강현수·이희상 옮김|아카넷|636쪽|37,000원

사회학자로서 저자의 주된 관심은 모빌리티가 어떻게 개별사회에 초점을 둔 서구 사회학의 ‘역사적 연구주제’를 바꾸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늘날을 ‘신유목민 시대’라 한다. 이는 모빌리티의 증대로 초래된 사회변동의 시대를 의미한다. 모빌리티(mobility)는 근대의 시공간성과 사회성을 형해화하면서 ‘사회 이후 사회’를 출현시킨다. 영국 랭커스터대 존 어리(J. Urry) 교수(사회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모빌리티 스쿨’은 메타포, 여행, 감각, 시간, 거주, 네트워크, 흐름 등 모빌리티와 관련된 개념을 갖고 ‘고정사회 이후의 유동사회’를 논구하고 있다.
모빌리티는 우리말로 이동성이다. 이동수단을 이용해 움직이는 그 뭔가를 의미하지만, 어리가 말하는 모빌리티는 그 이상의 ‘복잡계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모빌리티를 (근대의)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재구성하는 물질적 변환물로 간주한다. 즉 다양한 모빌리티는 ‘다층적 감각, 상상적 여행, 이미지와 정보의 이동, 접속과 연계 등’을 통해 ‘사회로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 as society)’을 ‘모빌리티로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 as mobility)’으로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다.


근대사회를 규정해 왔던 고정된 것(시공간적으로 고착되는 것)과 견줄 때, 모빌리티의 증대에 따른 ‘유동적인 것’은 사회적 관계나 의미의 정형성과 반복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뿐 아니라, 정보, 돈, 생각까지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이동 중에 있음으로써, 사회적인 것의 형태(예, 관계양상), 나아가 그에 담긴 의미구조는 전에 없이 새로워지고 있다.


어리는 이렇듯 모빌리티를 사회를 보는 새로운 렌즈로 제시하면서 사회과학의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을 전개하고 있다. 2000년 출간된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Sociology Beyond Societies)』에서 어리는 이러한 입장을 처음으로 정립했고, 이후 일련의 저서를 통해 개별 주제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2007년 발표된 『모빌리티(Mobilities)』는 모빌리티 테제를 가장 정치하게 논구하는 저서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모바일 세계’는 모빌리티 연구의 이론과 방법론을 논의하고 있다. 제2부 ‘이동과 통신’은 역사적으로 발달해온 다양한 모빌리티 시스템들, 즉 걷기, 기차, 자동차, 항공, 통신을 각각 다룬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마지막 제3부 ‘이동 중인 사회와 시스템’은 제2부에서 설명한 다양한 모빌리티 시스템이 상호 의존적으로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회 공간적 현상과 영향, 그리고 문제를 논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본다면, 이 책은 2000년 저서의 핵심내용을 심화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학자로서 어리의 주된 관심은 모빌리티가 어떻게 개별사회에 초점을 둔 서구 사회학의 ‘역사적 연구주제(historic subject-matter)’를 바꾸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즉, ‘다양한 범지구적 네트워크와 흐름들(global networks and flows)’이 재생산되는 규정력을 스스로 갖고 있는 ‘내생적 사회구조(endogenous social structure)’를 어떻게 해체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 주목하는 모빌리티 중 신체(사람)의 다양한 이동은 일, 주거, 여가, 종교, 가족관계, 범죄활동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체의 이러한 모빌리티는 사물 혹은 비인간적 객체(objects)의 흐름과 함께 혼합돼 있다는 점에 모빌리티 시대의 새로움이 있다. 흐름의 주체인 사람의 육체, 감정, 정체성, 관계성 등은 흐름의 객체인 기계, 기술, 코드, 텍스트,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데이터 베이스 등의 비인간적 사물의 흐름과 결합돼 혼종을 이루면서 유동적 흐름 혹은 흐름의 유동성을 만들어낸다. 사회적 관계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대신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모빌리티에 조응되는 사회적 관계는 사람과 기계, 기술, 물체, 텍스트, 이미지, 물리적 환경이 한 몸이 된 하이브리드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힘(human powers)이 기호, 기계, 기술, 텍스트, 환경, 동물, 식물, 폐기물 등을 포함한 물질적 사물(objects)들과 인간의 복잡한 상호결합(interconnections)으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더 이상 ‘유일하게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권력을 얻지 않는다.
인간과 사물간의 상호결합에 의해 생겨나는 ‘비인간적 혼종(hybrids)’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사회학의 핵심 개념인 (합리성과 의지를 가진) ‘주체’ 혹은 ‘행위자’(agency)란 개념은 재음미돼야 한다. 이는 인간이 주체로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환경(circumstance)과의 관계 속에서만, 즉, 사물로 구성되는 환경과 상호결합을 통해서만 행위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사물, 환경) 간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합리성과 의지를 가진 고립된 주체의 설정,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의 작동은 더 이상 유의하지 않다.


인간행위자(human agency)의 자율적 영역이 없다면, 명확한 사회적 실재는 없다. 인간과 사회의 변증법에 대해선 수많은 논자들이 언급했지만, 그 관계는 사회적인 것(인간과 인간의 관계)을 약화시키고, 인간과 비인간적인 객체(예, 이미지, 기호, 정보 등)와의 관계로 대체해 볼 때, 훨씬 더 명확해진다. 사회란 실체는 인간과 수많은 비인간적 사물들 간의 상호결합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인간적인 사회’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인간사회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사람-사물의 혼성물로서 ‘포스트 휴먼 사회(post-human society)’로 전환된다.


모빌리티의 증대와 가속화에 따라 사회적 시간과 공간의 지형 변화, 그로 인한 사회의 종언은 사회적 영토성에 기반 한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특정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을 때, 다양한 ‘기능적 필요사항(functional requirements)’(예, 국민의 권리보호, 경제적 가치의 생산과 교환 등)은 어떻게 충족될 수 있을까. 오늘날 범지구적으로 제기되는 ‘기능적 필요사항’의 충족은 국가의 변화, 즉 일국적 국민의 ‘내생적 조절자’에서 다양한 모빌리티의 결과를 촉진하고, 조절하며, 반응하는 ‘외생적 국가’로 전환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사회학 또한 국민국가 사회에 맞춰진 설명방식을 버리고 지구화 시대의 ‘유동적 세계(fluid world)’, ‘수평적 모빌리티’, ‘부상하는 혼성적 실체들(emerging hybrid entities)’, ‘비장소적 공간’, ‘초월적 시간(timeless time)’ 등을 주목하고 설명하는 새로운 실천지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책은 사회에 관한 근대지식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패러다임 전환’으로 일컬어지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부분에서 논증과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위한 가장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조명래 단국대·지역정치경제학
필자는 영국 서섹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간과 환경의 정치경제학’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다. 『녹색사회의 탐색』, 『공간으로 사회 읽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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