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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불청객, 방랑하는 육식동물
해변의 불청객, 방랑하는 육식동물
  • 교수신문
  • 승인 2014.07.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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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 109. 해파리

 

▲ 유령해파리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한여름이 다가오니 해수욕장은 분빌 것이고, 그러면 짓궂은 해파리가 난데없이 떼 지어(bloom, swarm) 기승을 떨 것이다. 갈팡질팡, 안절부절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할 수 있겠지만, 그거야 팽팽 놀다 당하는 일인데 뭘. 그러나 일손 바쁘게 생사를 걸고 그물질하는, 얼굴이 거슬거슬한 어부들은 기껏 해파리만 한가득 건져 올려 파리만 날리니 죽을상이다. 한 마디로 되게 반갑잖은 손님이다. 아니, 어부들의 삶을 노략질 하는 원수들로 말도 섞기 싫은 발칙한 놈들이다.


해파리는 너울너울 바다 물살 따라 둥둥 떠다니는 것이 꼭 중천의 달 모양을 했다고 ‘海月’, 물이 많아 살이 흐물흐물하다고 ‘水母’라 부른다. 『玆山魚譜』에는 해파리를 긴 팔(촉수)이 여덟 개가 달렸다고 ‘海八魚’라 했으니, 아마도 ‘해팔어’가 ‘해파리’로 굳어져 불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해파리는 흐물흐물 뭉그러지기 쉬운 한천질(젤라틴 단백질)로 돼 있어서 영어로는 ‘jellyfish’라 부른다. 물에 살면 무조건 물고기(어류)가 아니라도 ‘魚’요 ‘fish’다.


해파리는 ‘刺胞動物(cnidarian, 쏘는 세포를 가진 동물)’로 둥그런 삿갓(umbrella)과 길쭉한 촉수(tentacle)가 있고, 觸手(tentacle)에 있는 많은 ‘刺胞(쏘는 세포)’는 독을 갖고 있어서 방어와 공격에 쓴다. 자포는 오직 자포동물만이 갖는 특수세포이고, 여기에는 해파리, 말미잘, 히드라(hydra), 산호들이 속한다. 그리고 종(bell) 모양의 갓을 오므렸다 폈다 해 운동을 하면서, 쫙 펼 때 쑥 들어오는 먹잇감을 그러모은다. 해파리는 5억 년 전쯤에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며, 세계적으로 200여종이 살고, 주로 해안을 따라 플랑크톤(‘방랑자’란 의미가 들어있음)처럼 떠다니지만 깊은 바다에 사는 종도 있으며, 한국에는 없지만 몇 종의 민물해파리가 있다 한다. 수명은 2~6주지만 몇몇 종은 1년 가까이 살며, 심해 것이 더 오래 산다고 한다. 해파리는 생식방법이 특이하다. 해파리는 자웅이체(암수딴몸)로, 물에 떠다니는 성체해파리를 ‘메두사(medusa)’라 부른다. 반면에 수정란이 발생해 ‘플라눌라(planula)’가 됐다가 단단한 물체의 바닥에 붙어서 ‘스트로빌라(strobila)’로 변하는 유생세대인 폴립(polyp)을 거친 다음, 거기에서 떨어져 나와 헤엄칠 수 있는 ‘에피라(ephyra)’ 시기를 거친 후 성체해파리가 된다.

물에 뜨는 성체 ‘메두사세대’는 유성세대이고, 움직이지 않고 고착생활을 하는 유생인 ‘폴립세대’는 무성세대이며, 이렇게 유성세대와 무성세대가 교대로 일어나는 ‘世代交番(세대교대)’을 한다. 해파리 하면 뭐래도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알싸한 해파리냉채다. 동물의 진화순서를 따지면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원생동물, 먹지 못하는 해면동물 다음(세 번째)에 자포동물이 자리한다. 식재료로 사용하는 해파리는 ‘근구(根口)해파리’목에 속하는 11종인데, 그 중에서 살이 쫄깃하고 독이 없는 중국의 Rhopilema esculentum이나 미국의 Stomolophus meleagris(cannonball jellyfish)를 주로 수입한다. 냉채는 삿갓을 식용하는데, 이들 식용 해파리 갓의 지름이 무려 1m, 무게가 물경 150kg이나 된다고 하며, 95~95%가 물로 돼 있는데, 소금에 절이면 물이 빠져 원래 체중의 7~10%로 준다. 여러 과정을 거쳐 시장에 팔려나온 해파리는 94%가 물이고 6%의 단백질인데, 단백질의 주성분은 존득존득한 콜라겐(collagen)이며, 그래서 해파리로 류머티즘(rheumatism) 치료약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해수욕장이나 어장을 발칵 뒤집어 놓는, 가장 말썽피우는 사고뭉치 해파리는 작은부레관해파리, 노무라입깃해파리, 유령해파리가 삼인방이라 한다. 그 중에서 어민들이 질색하는 녀석은 여름과 가을에 한국·일본·중국해 연안에 나타나는 노무라입깃해파리(Nemopilema nomurai, Nomura′s jellyfish)인데, 큰 놈은 갓길이 2m 안팎에 필자 체중의 3배에 달하는 200kg남짓 나가며, 벌러덩 누워있는 대부등만한 몸집사진만 봐도 등골이 오싹해 온다.

어떤 종은 빛을 감각하는 홑눈(單眼, ocelli)을 갖는가 하면, 24개의 눈을 가진 것도 있다. 중추신경조차 없지만 그물처럼 상피에 퍼진 신경망으로 감각한다. 해파리의 날카로운 침(자포)이 피부를 찌르면 벌겋게 퉁퉁 붓고, 통증을 일으키며, 채찍 모양의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가뜩이나 호흡곤란, 오한, 구역질, 근육마비에 심하면 심장마비로 생명까지 위협한다. 그러면 왜 세계적으로 해파리가 된통 늘어나 험악스레 성질을 부리는 것일까?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생태계 균형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물고기의 남획으로 인해 해파리의 천적이 거덜 난 것도 이유다. 다랑어, 도미, 상어, 바다거북이, 황새치(swordfish)들이 해파리의 포식자이며, 해파리는 육식동물로 딴 해파리를 主食으로 하며, 플랑크톤, 갑각류, 물고기알,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어쨌거나 주먹구구식으로 보면 해파리가 당장은 인간에게 해로울지 몰라도 생태계에는 외려 필히 있어야 하는 소중한 실체로, 필요 없는 생물은 절대 창조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를 되우 못살게 구는 것은 결단코 해파리무리가 아니라 겸손치 못한 傍若無人한 우리 인간이렷다. 온 세상의 동식물들이 인간 꼬락서니 보기 싫어 못 살겠다고 내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구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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