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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지혜로운人事와 밝은人事
[딸깍발이] 지혜로운人事와 밝은人事
  • 김시천 편집기획위원 / 경희대·동양철학
  • 승인 2014.07.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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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편집기획위원 / 경희대·동양철학
『논어』 「요왈편」에 이런 말이 있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 이 말은 아주 중요한 함축을 갖는다. 우리는 통상 지혜롭기를 원하지만, 실제 지혜가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논어』는 지혜에 대해 가려서 들을 줄 아는 것과 사람을 가릴 줄 아는 것이라 말한다. 지혜는 막연하게 어떤 고차원의 지식도 아니고, 고차원의 해법이나 비방도 아니다. 지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와 지도자에게 이런 지혜는 조건이 아니라 필수다.

『논어』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 이 말은 다른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같은 말이다. 여기서 산은 泰山이고 물은 黃河다. 태산에는 온갖 초목과 금수가 무리 지어 산다. 황하도 마찬가지다. 누렇게 흐르는 도도한 바다 같은 황하에 커다란 그물을 넣으면 온갖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올라온다. 즉 그 속에는 온갖 다양한 만물이 서식하는 것이다.

仁과 知는 수많은 다른 것들을 함께 어우러지게 만드는 마음의 자세와 지적 태도를 가리킨다. 두 가지 모두 포용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인’이 정서적인 교감과 인간적 유대를 통해 발휘되는 포용력이라면, ‘지’는 주변 사람과 말에 대한 분별을 통해 적절하게 조화를 이끌어 낼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은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는 것을 최상으로 친다면, ‘지’는 그런 사람들과 가깝고 먼 거리를 둘 줄 아는 것이다. 마음이 시커먼 사람이라 해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지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다.

그런데 『노자』는 이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남을 잘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는 밝다(知人者, 智. 自知者, 明).” 노자는,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공자가 생각한,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가 도리에 맞는 사람인지, 사람다운 사람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노자가 생각하는 지혜는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밝음이다. 왜냐하면 나의 보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이 말은 실은 손자가 이야기하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과 다르지 않다. 손자가 말하는 지피지기는 적과 아군을 의미한다. 노자가 말하는 다른 사람은 적이기도 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사람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더 넓다. 이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은 2% 부족이다. 왜냐? ‘그’는 언제나 나의 통제 안에 있을 때 내게 좋은 것이다. 그러한 통제력을 내가 갖고 있을 때 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책임자가 인물을 발탁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때때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하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통제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인사 문제에서 말이 많아지는 것은, “그를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를 뽑는 자의 기준과 일반적 기준이 일치하지 않을 때다.

요즘 정부의 인사 문제에 대해 말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요즘의 인사를 보면 『논어』의 지혜보다 『노자』의 밝음이 더 중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시천 편집기획위원 / 경희대·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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