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인들은 공부를 하면서 종이, 붓, 먹, 벼루의 文房四友를 매우 소중히 생각했다. 때로는 여기에 물을 담는 연적까지 포함해, 맑은 물을 길어오고, 먹을 갈고, 종이를 펼치고, 붓을 들어 쓰는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마음을 닦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양을 떠나서도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좋은 문구류는 그 자체로 흐뭇한 기쁨을 준다.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노트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 잘 만들어진 펜이 종이 위를 달릴 때의 부드러운 감촉과 삭삭 스치는 소리, 그리고 다채로운 각종 보조 도구들, 즉 클립, 종이집게, 메모지, 포스트잇 등의 다양한 색채와 모양은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절로 들게 만든다. 그래서 공부하는 이들에게 문구점은 보물 가게와도 같은 곳이고, 문구점에 들러 색다른 좋은 물건을 하나둘씩 건지는 것은 주머니가 가벼운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소소한 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와 같은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거의 대부분의 글쓰기가 컴퓨터를 통한 작업이 됐다. 이래서야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채워가던, 또는 노트를 한 장 한 장 메꿔가던 손맛을 찾을 수도 없고, 틀린 곳을 지우고, 줄을 긋고, 다른 색깔의 펜으로 표시를 하고 하는 등등의 흔적도 마찬가지로 찾을 수 없게 됐다. 오로지 워드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흰 바탕 위에 글자를 ‘찍을’뿐이다. 물론 글자를 ‘찍는’ 행위는 타자기가 나오면서 시작됐지만 타자기에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즉 타이핑의 감촉, 적당하게 키가 튀어 오르는 반동, 활자가 날아가 종이를 때리는 타닥타닥 하는 물리적 소리, 그리고 잘못 치면 그 흔적이 남는 것까지 타자는 디지털적 행위가 아닌 아날로그적 행위였다. 그래서 타자기로 친 원고는 그것을 ‘찍은’ 사람의 물리적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는 화면 위에 뜬 백지에 전자적 흔적을 남기는 일이 ‘글쓰기’가 됐고, 온라인으로 검색을 해서 PDF파일을 다운받아 ‘띄워 놓고 읽는’ 일이 ‘독서’ 내지는 ‘공부’로 자리 잡았다. PDF파일에는 내 맘대로 줄을 긋거나 칠을 하거나 주석을 달거나 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굳이 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읽어보지만 힘들게 논문이나 책을 찾아서 읽었을 때만큼의 소중함은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가 속도와 편리를 요구하니 이러한 방식은 아무래도 점점 더 굳어질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동료들은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입력펜 등에 무척 신경을 쓴다.
어떤 이들은 키보드의 터치 감촉에도 예민해서 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명품 키보드를 사기도 한다. 그 가격이면 일반 키보드는 열 개도 더 살 것이다. 마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 특정 브랜드의 노트북 컴퓨터만을 고집하다가 그 브랜드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더니 다시는 예전 같은 ‘느낌’이 안 온다고 서운해 하는 분도 보았다. 또는 컴퓨터나 그 액세서리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튜닝’해서 쓰는 고수들도 있다. 나처럼 둔감한 사람은 아무거나 작동만 하면 그냥 쓰지만-지금 이 글도 연구소의 공용 컴퓨터로 ‘찍고’ 있다- 많은 공부의 고수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속물주의나 물신숭배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둔감한 나도 이십년 전부터 노트북 컴퓨터를 네 번 가량 바꿨지만 과거에 쓰던 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보관하고 있다. 키보드가 닳아질 때까지 리포트를 쓰고, 번역을 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썼던 추억이 어린 기계들이라서 그렇다. 이것이 벼루였다면? 이십년 정도는 너끈히 쓰고, 평생 쓰다가 자손이나 제자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깨지지만 않았다면…. 그러나 1번 노트북 컴퓨터는 여전히 전원을 켜면 부팅이 되지만 아무 데도 쓸 데는 없다. 아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전원을 넣어 본다. 아직도 살아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이들은 동종의 다른 중고 기계들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
전주의 최명희 기념관을 가니 그녀가 쓴 원고지 수천 매를 유리 박스에 넣어 기둥처럼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파란 색 잉크로 꾹꾹 눌러 쓴 그 원고지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우리 세대 중 어떤 이가 저명한 작가나 학자가 된다면 그 기념관에는 무엇을 둘까? “이것은 저명한 학자 ○○○씨가 5년간 사용했던 노트북 컴퓨터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 노트북 컴퓨터와 다른 수많은 동일 기종의 노트북 컴퓨터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누군가의 흔적이 조금 남고, 때가 조금 탔다는 것 외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내게 맞는 새로운 문방사우들, 즉 컴퓨터와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나 입력 패드를 구해서 쓰겠다는 욕망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조금 더 편리해보겠다는 욕심이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와 진실로 교감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이때 이 도구들은 단지 도구이기를 그치고 내 정신과 몸의 확장이 되며, 그 자체로 나를 돕는 어떤 중요한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과거의 문방사우와는 달리 내 몸에 의해, 내 행위에 의해 변형되고 그러면서 내게 맞춰지고 적응이 되는 정도가 매우 희박하다는 점은 아쉽기 짝이 없다.
기술복제 시대에 문방사우도 대량 생산된 ‘제품’이 됐고, 그만큼 그 사용자와의 교감의 정도와 교감의 흔적마저도 희미해지게 됐다. 오늘날 ‘정보’는 어디서나 흘러넘치지만 정작 사유의 깊이는 빈곤해진 듯하다. 어쩌면 공부의 이러한 ‘물질성’이 희박해진 것도 그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다음 호 필자는 강명신 강릉원주대 교수입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의학사 필자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생명 윤리와 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