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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정치경제 지형변화에 대처하는 영국학계
[해외학술]정치경제 지형변화에 대처하는 영국학계
  • 이택광 통신원
  • 승인 2001.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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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귀환’…문화연구 이후 영국 비평계의 활로

불우했던 한 유태계 독일 철학자의 유령이 지금 영국의 비평학계를 떠돌고 있다. 의아스러운 일이지만 그 유령의 얼굴은 그러나 마르크스의 것이 아니라 벤야민의 것이다. 영국에서 테리 이글턴이 벤야민에 대한 책을 출간한 때가 1981년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또한 그가 그 책의 서문에서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벤야민의 귀환을 회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면, 이 유령의 출몰이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속적이었던 수용의 과정과 별도로 벤야민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시점은 1990년대였다. 다분히 전략적 차원에서 벤야민을 ‘이용’했던 이글턴과 대조적으로 90년대의 논의는 벤야민의 사상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야기했던 결정적 요인은 문화연구로 대표되는 영국 학계의 이론적 모색이 감당해야만 했던 새로운 정치 경제적 현실이었다. 하버마스를 제외하고 시종일관 비판이론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던 영국의 학계에서 벤야민의 인기는 의외의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도리어 이런 사실이 벤야민과 비판이론의 변별성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영국의 학계는 정치 경제적 지형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1960년대의 경제적 풍요는 대학의 팽창과 창조적인 청년문화의 약진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런 문화의 과잉현상은 영국 학계의 새로운 이론적 도전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이런 이론에 대한 요구로 인해 알뛰세와 바흐친을 도입하면서 전후 세대의 비평가들은 신선한 문화적 역동성의 창조와 더불어 아카데믹한 형식비평을 행할 수 있었던 반면 자신들에게 닥쳐올 미래의 위기에 대해 어떤 실천적 힘도 결집시킬 수 없었다. 그 위기의 실체가 보수당의 대처 정권이 등장하면서 표면화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처의 경제정책과 문화담론의 ‘퇴출’

요크셔 특유의 급진적 낭만주의를 배경으로 노동운동과 지속적인 관련을 맺어왔던 에드워드 톰슨의 알뛰세 비판과 그 시기를 전후한 비평의 전환은 벤야민에 대한 이글턴의 책에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후에 출간된 그의 책 ‘문학이론 입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이론적 전환이 그려낸 무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글턴 세대의 반성과 변화는 전후의 풍요로움 속에서 외면당했던 경제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전통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영국 지식인들에게 도리어 그것이 ‘특수한 것’임을 일깨웠던 페리 앤더슨의 선언만큼이나 이 지각변동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대학의 팽창으로 손쉽게 강단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대처 정권의 ‘경제적’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영국의 지식인들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 새로운 천착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정치 경제적 현실 앞에 무능함을 드러낸 문화담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형식의 상대적 자율성에 입각했던 이글턴 세대의 비평작업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종말을 고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에 따라 비평이론도 자연스럽게 문화적 형식의 독립성을 인정했던 문화연구로부터 형식의 타율성을 강조하는 신역사주의와 문화유물론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것이다.

문화연구에서 신역사주의와 문화유물론으로

물론 이 전환의 모티브로 작용했던 이론이 바로 푸코와 벤야민이다. 특히 벤야민은 특유의 문체로 인해 상이한 견해와 논쟁들을 유도했는데, 크게 이 논쟁들을 분류한다면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입장이 있다고 하겠다. 주로 전자가 기술에 대한 벤야민의 유물론적 입장과 혁명적 해석학을 논의의 중심에 놓고 있다면 후자는 벤야민의 문화이론과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논의를 문제삼고 있다.


두 입장의 충돌은 종종 흥미로운 담론의 쟁투를 확인시켜주는데, 그 중에서도 안젤라 맥로비와 페미니스트들의 벤야민 해석에 대한 에스더 레슬리의 반박이 주목을 끈다. 레슬리는 벤야민의 ‘산책자’라는 이미지를 포스트모던 소비문화 분석에 적용한 맥로비의 논의를 이론적으로 통박했으며, 더불어 근대적 주체의 알레고리를 포스트모던 문화의 분석틀로 사용하는 오류를 지적했다.


또한 이 활동적인 여성 비평가는 ‘창녀’의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는 벤야민의 반여성주의적 경향을 지적한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벤야민의 개념이 자본주의적 물신화에 대한 알레고리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처럼 부쩍 빈번해진 벤야민에 대한 논의는, ‘뉴 저먼 크리틱’, ‘모던 랭귀지 노트’, ‘뉴 포메이션스’, ‘다이어크리틱스’, ‘크리티컬 인콰이어리’와 같은 저명한 영미권 저널들이 앞다투어 벤야민 특집을 꾸민 것과 함께 최근 영역본으로 재출간된 선집과 유고 노트 ‘아케이드 프로젝트’(Belknap 刊, 1999)의 덕분이기도 하다. 새롭게 출간된 책들에 대한 많은 논평들과 학술회, 그리고 대학별 독서모임들이 속속 등장하게된 것은 벤야민의 이론이 가진 매력 때문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위치하면서 사회적 실천과 이론의 통합을 모색해왔던 영국 학계의 현실인식 때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별 이견을 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국에서 지금 풍미하고 있는 벤야민의 인기는 그러므로 단순한 대중적 호기심이나 지적 상업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도리어 영국에서 벤야민은 문화연구 이후 지리멸렬한 영국 비평계의 활로를 개척할 유용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leetg6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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