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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은 강화하고 전념은 약해진다
탐색은 강화하고 전념은 약해진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4.06.26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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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64. 디지털과 청소년

 사람이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Her(그녀)」는 주인공이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OS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젠가 정말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 사람보다 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통해 인간관계란 어때야 하는지 돌아본다.
지금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나중에 정말 컴퓨터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에코리브르, 432쪽)는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인터렉티브 기술의 영향력을 살펴본다. 미친 듯 범람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청소년은 과연 어떤 세계 안에 있는 것일까.
책은 2011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강의 ‘사이버심리학’ 수업에서 처음 소개됐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 교수이자 아동 디지털 미디어센터 부책임자인 카베리 수브라맨얌과 체코공화국 마사리코바대 사회학부 교수이자 ‘세계 인터넷 프로젝트: 체코공화국’ 책임자인 데이비드 슈메헬이다. 이들은 2006년 <발달심리학> 학술지에서 처음 연구 주제를 착안했다.

발달 과업과 청소년, 인터넷과 성
저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연구 실행엔 이미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테크놀로지 변화를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둘째, 성인 연구자들로서 외부인 관점에서 청소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 사용과 발달의 의미를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성과 친밀감이라는 발달 과정에서의 청소년을 살펴보고, 공동 구성 모델이라는 미디어 이론을 통해 연구를 진행한다. 성, 정체성, 친밀감의 청소년 발달심리학의 핵심적인 측면에서 윤리와 공동체, 행복, 폭력, 그리고 대안을 고민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발달 과업은 청소년들의 디지털 세계를 파악하는 데 주요한 개념이다. 발달심리학자들은 발달 과업을 ‘하나의 문화가 서로 다른 삶의 단계에 있는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위기나 기대’라고 정의한다.
대화의 장이 인터렉티브 미디어로 옮겨가면서 청소년은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특히 ‘성(sex)’은 청소년들 초미의 관심사인데, 저자들은 기존 연구를 차용해 △접근성(성 관련 콘텐츠 구하기) △지불 가능성(저렴하게 음란물을 구매하거나 성적 의사소통 하기) △익명성이라는 특징을 지적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성 콘텐츠에 많이 노출된 청소년은 나중에 성에 대해 좀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넷이 성적으로 소수자에게 훨씬 더 유용한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관련 정보를 얻거나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디지털 시대, 청소년을 읽어내는 골자는 ‘인터넷은 탐색의 측면을 강화하고, 전념을 약하게 한다’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온라인에선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을 펼쳐 보이고 오프라인에서 강요받는 집중이나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종단 연구로 동시대 집단 추적 필요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읽기』에서 과연 성인과 청소년을 구분하는 것이 유의미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엔 유아기의 어린이들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며 문자를 보낸다. 오히려 성인들보다 더욱 인터렉티브 미디어나 인터넷 환경에 친숙하다. 중요한 건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느냐는 것인데, 기술·환경과 교감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훈육의 대상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연구와 시도는 분명 의미 있지만, 주제가 광범위해 초점이 흐려지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특정 지역이나, 개별 디지털 환경에 주목하고 청소년을 드러내는 성, 정체성, 폭력 등에서 하나의 키워드에 주안점을 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혹은 개별 인터뷰를 전방위로 진행하고 그 안의 의미 분석을 시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들은 마지막 장에서 연구의 한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제시했다. 첫째, 청소년들도 연령에 따라 세분화 한다는 것. 둘째, 디지털 세계에서 맥락의 역할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셋째, 디지털 세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부분은 청소년들이 정말 어떻게 인터렉티브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지는 실제 청소년이 아닌 이상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종단 연구’가 제시됐다. 동시대 출생 집단을 추적해, 디지털 미디어의 효과를 조사해보자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책은 너무 오래된 자료들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저술돼 있다. 2007년 통계조사 결과가 과연 2014년을 사는 하이퍼미디어 융합 시대 청소년에게 얼마나 유의미할지 의문이다. 다만 지극히 학술적인 접근은 연구결과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시대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체성 탐색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성별의 차이와 민족적 정체성은 온라인에서 자기를 표현하는데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체코나 네덜란드 연구 사례 등 기존에 접하지 못한 사례들은 흥미롭다. 한편 책은 전반적으로 번역이 매우 깔끔해서 비전공자들이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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