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00 (금)
[딸깍발이]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딸깍발이]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서울대·국문학
  • 승인 2014.06.23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서울대·국문학
최근 들어 일제 침략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가 새롭게 문제시되고 있다. 국무총리 지명과, 또 『제국의 위안부』라는 저술과 관련해서다. 역사관이 정치 문제로 본격 거론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과잉 역사, 과잉 정치적인 우리 사회의 풍토에 비춰볼 때 이는 하나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학계, 특히 국문학계와 국사학계에서는 이 문제가 지난 15년간의 중심적인 학문적 논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은 저항 민족주의에 입각한 식민지 시대 분석 및 평가를 비판하면서, 그 시대에 한국의 근대화가 실질적으로 이뤄졌음을 적극적으로 논변하려 했다.

논자들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이 논리는 식민지 지배가 근대적 제도의 이식, 경제 성장, 삶의 향상에 기여했다는 논리를 취한다. 또한 이 논리는 현상을 현상 그대로 인정하라고 주장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국 근대화의 기초이자 동력이 된 것이 사실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이에 따라 개항에서‘한일합방’에 이르는 개화기에 관한 인식, 1940년 전후 일제 말기 역사 및 문학사의 해석, 해방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재평가 같은 문제들이 그 세부적 논점을 이루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실험장이 됐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의들은 뜻밖에도, 근대란 무엇이며 또 어떤 근대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적 논의를 충분히 수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단순 명료하게 답변하는 방법이 있다. 즉 근대란 생산양식으로 보면 자본주의요, 국가체제로 보면 국민국가요,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 보면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규정하고 나면, 이 모든 것이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하기 이전의 한국에는 없었거나 충분치 않았으므로, 근대란 결국 수입되고 이식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와 달리 생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근대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것과 새로운 것, 낯선 것이 공존하면서 관계 맺는 과정 그 자체이며, 이를 통해 자기 사회의‘유전적’형질에 걸맞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실험의 장이다. 따라서 문제는 자본주의, 국민국가, 개인주의 자체가 아니라 어떤 자본주의냐, 국민국가냐 개인주의냐이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들어오는 것들만큼이나 원래 있었던 것들이다. 때문에 서양에는 그들에 걸맞은 근대가 있을 수 있고, 일본이나 중국, 한국에는 또 그 역사적 토양이나 환경에 걸맞은 근대가 있을 수 있다.

한국에 있어 일제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는 이 과거의 힘을 삭제하려는 외부적 억압 과정이요, 그 외부만으로 내부를 규정하려 한,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시도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강제 속에서 한국인은 자신의 역량을 부정당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의식적 결과의 하나가 바로 일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근대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오해된 인식은 다시 우리 자신의 과거를 부정 또는 망각하게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 또는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현재가 오직 현존하는 것인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19세기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세기 이전에 지나갔지만 그 세기의 형성을 위해서 공헌한 모든 세기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을 초점을 조금 바꿔 보자. 즉 현재 속에 응축된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현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로지 가까운 과거만 알 뿐 먼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는 이는 현재를, 따라서 근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중심적 논점으로 제기된 지도 벌써 15년이나 흘러버렸다. 이제 다시 우리의 지난 150년 근대화 과정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찾아 나설 때다. 근대란 무엇인가. 아니, 한국에서 근대란 어떤 과정이었고, 또 어떤 과정이 돼야 했나? 역사를 현상만으로 보고, 따라서 외면적 현재만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이 물음에 좋은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서울대·국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