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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추위와 이사회의 다른 결정 … '순혈주의'는 숙제로 남아
총추위와 이사회의 다른 결정 … '순혈주의'는 숙제로 남아
  • 서옥식 서울대 총장추천위원회 추천위원
  • 승인 2014.06.2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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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선거, 첫 간선제가 남긴 것

서울대 개교 이래, 그리고 법인화 이후 처음 간선제로 치러진 서울대 총장선거에서 같은 대학의 법과대학장을 지낸 성낙인 교수(64세)가 선출됐다. 성 교수는 대통령의 임명을 거쳐 현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7월 20일부터 제 26대 총장으로 4년간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새 총장은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와 이사회의 순차적인 선출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총추위는 총장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12명에 대해 서류심사와 소견(정책발표) 청취, 질의ㆍ응답 등을 거쳐 1차로 후보(예비후보)를 5명으로 압축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교수·교직원 정책평가단 244명의 평가 등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성 교수와 오세정 교수(61세ㆍ물리천문학부), 강태진 교수(62세ㆍ재료공학부) 등 3명의 후보를 확정했다. 이사회는 3명의 후보를 투표에 부쳐 재적이사 과반수(8표)의 찬성을 얻은 성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이사회 표결 결과는 총추위의 평가와는 다른 것이어서 일부 교수들의 반발 등 후유증이 예상된다. 교수와 교직원의 정책평가 40%와 총추위원 자체 점수 60%가 반영된 총추위 최종평가에서는 오 교수가 1위, 성 교수와 강 교수가 각각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이사회가 교수·교직원들의 의사가 반영된 총추위의 결정을 무시했다”며 사퇴의사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사회는 진보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으로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국ㆍ공립대 통합 및 서울대 폐지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법인화 3년째의 서울대호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선장에 성 교수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풀이도 나온다.

간선제 총장 선출세칙 재정비 서둘러야

서울대가 총장 간선제를 도입하게 된 것은 직선을 할 경우 정부의 위탁관리나 다름없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와 감독을 받음으로써 대학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의 타락선거를 뺨치는 파벌조성, 흑색선전, 돈 선거, 보직나눠먹기 등 직선제의 부작용도 고려됐다. 이번 선거는 대학사회는 물론 정부와 국민의 큰 관심속에 치러졌다. 일부 대학에서는 서울대 총장 간선제가 성공적일 경우 이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총추위의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법인화 시대의 서울대호 첫 선장에 걸맞은 글로벌 리더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울대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세계중심대학으로 키우기 위해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내야 했다. 서울대는 2025년 세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대는 2013년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QS(Quacuarelli Symonds) 종합평가에서 세계 35위, 2014년 영국의 THE(Times Higher Education) 종합평가에서 세계 26위에 올랐다.

또한 ‘지식나눔대학’으로서의 서울대의 사회적 책무를 통감하면서 타 대학들이 기피하는 과제나 학문연구를 기꺼이 수행하고 통일이나 평화, 복지 같은 국가 어젠다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후보를 골라야한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총추위가 후보 평가 항목으로 크게 △비전과 리더십 △교육·연구 등 정책과 실현가능성 △국제적 안목 등 3개 분야를 제시한 것도 서울대의 국제경쟁력강화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장 선거는 또한 선발기준과 방법 등 세칙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총추위가 출범함으로써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총추위가 입법, 선거관리, 투표라는 3역을 담당해야했다. 벌써부터 새 총장이 취임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간선제 총장 선출세칙 재정비라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같은 문제점 때문이다.

과거 선거 비해 도덕성 검증 강화된 것은 큰 수확

이번 선거가 과거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면 후보들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총추위는 후보들의 인사검증을 위한 검증소위를 구성하고 징계·윤리규정 위반사항 및 성희롱·성폭력 등의 인권 침해행위, 논문표절 등 연구진실성 문제, 사외이사 수임 등에 관한 사항을 검증했다. 특히 예비후보자들에게 총 200문항으로 된 정부의‘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를 배포, 문제 있다고 판단되는 답변에 대해서는 소명을 요구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대학총장 인사검증에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가 만든 이 질문서가 적용된 것은 서울대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질문서는 본인과 가족의 이중국적관계, 병역, 전과, 재산, 납세, 연구윤리, 직무윤리, 사생활 등에 관한 문항들에 숨김없이 답하도록 돼 있다. 예컨대 거주목적 이외의 부동산(주택, 상가, 오피스텔, 대지)을 보유한 사실이 있는가? 해외여행시 면세점에서 400달러 이상의 물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가? 자녀를 특급호텔에서 결혼시킨 적이 있는가? 등도 검증대상이었다. 정부 각료에 대한 인사청문회 수준 이상의 도덕성 검증이 대학총장에게 적용된 것이다. 총추위원과 후보 간의 접촉이 일절 금지되는 행동강령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직선제의 폐단으로 지적됐던 금품·향응제공이나 개별방문, 언론개별 인터뷰, 벽보부착 등 선거과열현상 이 사라지고 교수 간 편 가르기 분위기도 완화됐다. 간선제를 하니 한마디로 학교가 조용해진 것이다.

막판 유언비어·흑색선전 오점 남겨

그러나 교수·교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복지혜택 공약 같은 포퓰리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후보의 세부공약을 살펴보면 심지어 동문 결속강화, 대학가 상권 발전방안 등 서울대 발전과 직접 관련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정책까지 들어 있을 정도였다. 특정후보의 낙선을 겨냥한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음해성 투서 등은 직선제 때와 마찬가지였다. 한 후보의 ‘성추문’의혹이 담긴 괴문서가 학내에 나돌았으며 한 언론에는 익명의 제보자가 후보 2명의 ‘논문 자기표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숙제로 남은 순혈주의 벽

이번 선거결과는 총체적으로 ‘KS’(경기고-서울대)라는 서울대의 고질적인 순혈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총장에 뽑힌 성 교수를 포함, 오세정 교수, 강태진 교수 등 최종적으로 총장후보에 오른 3명 모두가 ‘KS’출신이다. 올해 처음 외국인을 포함한 학외 인사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등 사실상 국제공모제를 실시했지만 출사표를 던진 12명은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전ㆍ현직 서울대 교수였고 이 가운데 7명은 경기고 졸업자였다. 무늬만 국제공모제인 셈이다.

심지어 총추위원 30명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87%(26명), 경기고(경기여고 포함) 출신이 30%(9명)이었다. 최종적으로 후보를 검증하고 총장을 뽑은 이사회도 이사 15명 중 14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총추위가 총장선출 시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능력과 덕망을 겸비한 학외 인사 영입을 위한 총장후보초빙위원회를 아예 처음부터 구성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러한 폐쇄적인 선출구조 아래서는 서울대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외국인 총장이나 비서울대 출신인사를 영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관악ㆍ연건ㆍ평창 등 3개 캠퍼스에 대학원을 포함한 26개 단과대학, 학생 3만5천여 명, 교수 2천3백여 명, 교직원 1천여 명의 거대한 공룡조직인 서울대 현황이나 문제점을 학외 인사나 외국인이 잘 파악할 있겠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순혈주의가 파괴되지 않는 한 학교 운영이 학내 이기주의와 우물 안 개구리식 자만에 빠져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이 떨어지고 학풍이 편향되는 등 학문의 다양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서옥식 서울대 총장추천위원회 추천위원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을 맡고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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