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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_ 대동철학회·조선대 인문학연구원의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지상중계_ 대동철학회·조선대 인문학연구원의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6.17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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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우리철학연구소(소장 이철승·조선대) 창립기념 학술대회가 지난달 24일 조선대에서 대동철학회(회장 정세근·충북대)·조선대 인문학연구원(원장 염수균) 공동으로 개최됐다.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수입철학과 훈고학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창립기념 학술대회는 무엇보다 ‘성찰과 반성’에 무게를 실은 자리가 됐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한국철학의 현황과 반성 및 향후 과제」(권인호·대진대), 「서양철학 수입 후 철학수요의 폭증과 철학교육의 폭락」 (홍윤기·동국대), 「동양철학 연구방법론의 궁핍과 문제점, 그리고 모색」(홍원식·계명대), 「북한철학의 패러다임 변화와 사상적 특징」(이병수·건국대), 「20세기 한국철학의 좌표계-‘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김상봉·전남대) 등이다. 논의의 확산과 심화를 위해 홍윤기, 홍원식, 김상봉의 논문을 발췌했다.

서양철학 수입 후 철학수요의 폭증과 철학교육의 폭락
“공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화 없다면 자멸뿐”

▲ 홍윤기 동국대
한국현대철학의 가장 뼈아픈 상실은 약 120년에 걸친 서양철학 수용과정에서 철학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철학적 의사소통의 능력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이라는 사회현실을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한국현대철학(Corean modern philosophy)을 전개할 수 있는 바로 그 시점에 주로 대학에 장착돼 있던 철학교육체계가 급속히 약화되거나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 약화의 원인 또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해방 이래 약 한 세대를 이어져 백종현 서울대 교수가 철학하는 사람에게 다행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라고 표현했던, 대학에서 철학개론이 교양필수였던 시절, 이 강좌를 통해 미래의 한국 엘리트가 될 당대의 대학생들에게 철학에 대한 근본적 관심을 일깨우고 그 중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한국현대철학 1세대의 ‘철학 교육 실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처음 대학 강의실에서 철학개론이나 철학사 수업을 들을 때 왜 우리가 ‘만물은 물이다’라는 탈레스의 말을 첫 강의에서 들어야 했으며, 왜 필로소피아가 愛知學이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들어야 하는지를 알아듣게 설명 들었던 기억이 없다. 이렇게 공허한 철학강의를 듣고 나갔던 학부생들이 나중에 교육관료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가가 됐을 때 대학구조조정의 첫 번째 목표로 철학개론과 초급 독일어를 짚어내는 데 별다른 심적 갈등을 치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의 연구역량과 현실적인 철학체험, 그리고 현지 유학을 통한 철학함의 현장체험을 통해 철학학문과 철학활동의 요체가 습득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함이 인류 문명의 발달에서 각 문명권의 정신적 한계전선에서 인간의 지적 발전을 계도해 온 일종의 파이어니오 활동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체득한 인력들이 충분히 쌓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대학에서의 철학교육 기반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 비극이다. 사실 철학교육 없는 국민교육은 수월성에 있어서 글로벌 차원의 경쟁력을 아예 포기하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고등학교 차원을 넘어 대학의 고등교육과 문화적 차원에서의 성인교육 또는 평생교육에 있어서 아직은 대한민국이 뒤지고 있는 유럽과 영미계통의 고등교육과 중등교육에서는 철학교육을 통해 학습자들에게 자기창조의 잠재력과 자유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인성교육’과 아울러 자기 앎의 근본적 한계선에 서서 교과학습의 콘텐츠를 조망하게 하는 ‘지성교육’을 통일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자기능력의 발휘에 대한 자신감을 주면서 ‘쟁점논변력’을 키우게 해 글로벌 차원으로 전개되는 다원사회에서 자기관심을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갈등에 내한 내구력을 키워 성취능력을 극대화시킨다. 따라서 이제 전국에 30여개 이하로 격감된 대학의 철학과 학부교육에 대한민국 공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구조화되지 않는다면 우선은 대학에서 철학능력을 고도로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제 한계에 다다른 대한민국 중등과정 청소년 교육이 더 철저하게 붕괴해 대한민국 교육활동이 자멸하는 일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동양철학 연구방법론의 궁핍과 문제점, 그리고 모색
“관점·방법 놓고 더 치열한 논쟁을”

▲ 홍원식 계명대
동양철학계의 ‘소통과 문제의식’의 부재는 다시 ‘관점’과 ‘방법’의 부재를 낳는다. ‘왜’가 ‘문제’와 관계된다면, ‘어떻게’는 ‘관점’이나 ‘방법’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문제’가 그렇듯 ‘관점’과 ‘방법’도 홀로 마련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중국철학계에 관점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에는 세계의 중국철학 연구 관점과 방법이 죄다 들어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경우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관점이나 방법들 간에 제대로 된 토론 한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필요로 하고 선호하는 관점과 방법을 취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취한 관점과 방법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아니다. 소통과 문제가 없는 마당에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앞길은 암울하다. 그래도 연구물들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철학 연구자의 수가 급감할 것이란 것과, 그에 따른 연구의 질적 저하가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것은 이 분야 연구자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이다. 같은 중국학이라도 실용적인 분야로만 몰려 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전근대시기 철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근현대시기의 철학에도 관심을 가져 연구의 외연을 넓혀본다거나 전근대시기의 철학을 연구하더라도 현대 중국사회를 분석한다는 관점아래 연구에 임함으로써 지역학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희망적이지 않으며 외적 상황의 호전을 기다릴 뿐이다.


지금으로서 우리 중국철학 연구자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앞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자기만의 연구실에서 나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함께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풀 것인지 서로 만나 얘기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제에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 동양철학계는 자기만족적, 자기신념적 연구 경향이 팽배해 있다. 또한 동양철학을 마치 신앙처럼 대해 서둘러 그것의 부흥을 위해 힘을 쏟는 이들도 있다. 이 모두 ‘문제의식’은 분명하나 도리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며, 실은 그것이 문제의식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 학계의 또 하나 고질적 병폐는 훈고학적 연구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중국철학 관련 고전은 너무나 많다. 자칫하면 고전의 감옥, 고전의 무덤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한국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중국철학은 자주 이중적 모습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철학이 되기도 했다가, 그렇지 않기도 한다. 마치 국학처럼 인식되기도 하고, 전혀 달리 어떻게든 구분해 인식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국이 공자와 그의 유학을 앞세워 문화패권주의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더욱 우리들을 불편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들의 연구를 순순히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중국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이다. 여기에서 ‘관점’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절실해진다. 이미 중국철학 연구 관점과 방법은 갖가지 제시돼 있다.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히 제시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가려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에는 한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분명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만이 한국의 중국철학계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란 확신을 가진다. 거듭 말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은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다.

20세기 한국철학의 좌표계: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현대 한국 철학의 길을 이어가는 방법은?

▲ 김상봉 전남대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물음이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 한국 철학의 좌표계를 그려보았다. 동학을 원점으로 수직과 수평으로 전개되는 그 좌표계는 좌표축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현대 한국 철학은 동·서 철학을 구별 없이 넘나드는 철학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동·서 철학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보다 높은 하나의 지평을 개방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철학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보편적 세계관을 모색한다. 그러나 둘째로 현대 한국 철학은 그 보편적 지평을 겸손하게 상호문화성 속에서 제시한다. 즉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역사적으로 제약된 특정한 장소에서 전개되는 보편의 지평인 것이다.
그런데 셋째로 그 장소는 단지 지리적인 장소만은 아니다. 20세기 한국의 철학자들은 어디든 가장 낮은 장소에서 세계를 바라보려 한다. 그 낮은 곳은 가장 약하고 버림받은 자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그들의 절망과 그들의 믿음이 20세기 한국 철학이 뿌리박고 있는 대지인 것이다. 그런 한에서 현대 한국 철학은 인간의 절망적인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이 응답은 관념적인 위로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인 동시에 절망을 넘어서는 굳건한 믿음이며 동시에 그 믿음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한국 철학은 철학인 동시에 종교이며 또한 혁명적 실천이다. 방법론적으로 보자면 현대 한국 철학은 한 편에서는 언어를 통해 다른 한 편에서는 역사를 통해 존재의 진리를 파악하려 한다. 한국어의 고유성과 현대 한국 역사의 특별한 개성은 현대 한국 철학의 주체성의 뿌리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어가 다른 언어와 다른 고유성을 잃지 않고, 한국의 역사가 다른 나라와 다른 문제 앞에 직면하는 한, 한국인들은 자기 방식으로 철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5·18의 뜻을 서양 철학을 통해 설명할 수 있으며, 누가 다른 나라 철학자의 이론에 기대어 남북통일의 철학적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땅에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철학하려는 사람이라면, 결국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방식으로 철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지금까지 전개돼 온 현대 한국 철학의 길을 이어가는 것이다. 철학이 모두를 위한 학문이라면, 아무도 고립된 홀로주체성 속에서 철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감은 언제나 남을 이어간다는 뜻이요, 이미 열려 있는 길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대 한국 철학의 좌표계를 그려 보았다. 누구든 오늘날 한국 땅에서 스스로 철학하려는 사람은 그 좌표계 위에서 자기가 어디에 서 있고 어떤 길을 이어가야 할 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다 다양하게 이어져 나갈 때, 21세기는 틀림없이 한국 철학의 역사에서 풍요로운 결실의 세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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