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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만 아는 폐과 기준 … ‘특정학과 죽이기’에 구조조정 악용?
학교만 아는 폐과 기준 … ‘특정학과 죽이기’에 구조조정 악용?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6.09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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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의 두 얼굴①_ 청주대 사회학과 왜 없애려고 하나

청주대 사회학과 폐과 결정에 대한 반발이 대학 울타리를 넘어 학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비판사회학회(회장 노중기 한신대)가 지난 5월 28일 비판 성명을 낸 데 이어 국내 사회학계의 맏이 격인 한국사회학회(회장 윤정로 카이스트)도 조만간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1957년 창립한 한국사회학회는 1천여 명의 교수와 연구자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정로 한국사회학회장(카이스트)는 지난 5일 통화에서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후에도 지속적,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후속조치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지역대학의 학과 폐지를 놓고 국내 사회학계를 대표하는 학회까지 나선 것은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기초학문 붕괴가 인문학을 넘어 사회과학으로까지 번졌다는 위기감 때문만은 아니다. 청주대 사회학과 폐지 과정을 보면 앞으로 대학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예상되는 우려들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폐과’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가까운 미래’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청주대 사회학과 폐지 결정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주대 사회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지난달 26일부터 폐과의 부당함을 알리는 1인 시위에 나섰다.

■ 구성원 의견은 듣지도 않아= ‘일방적 통보’, ‘밀실행정’ 논란은 청주대 사회학과 폐과 결정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불거졌다. 청주대 사회학과 교수들은 폐과 결정이라는 ‘불벼락’을 “학과장 회의에서 (사회과학대학) 학장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고 지적한다. 학교 측은 법과 규정에 의한 적법한 절차를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학과 및 전공 폐지 심의위원회 심의(4월 14일)를 거쳐 교무위원회(4월 15일)에서 폐지를 의결했고, 대학평의원회(4월 16일) 심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청주대 사회학과 교수들은 그러나 “(4월 15일 교무위원회 후 열린) 학과장 회의에서 공식화된 사회학과 폐과 통보 이외에 그 어떤 통로나 회의에서도 당사자는 참여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사회학과 교수들은 “폐과 선언 이후 학교당국은 당사자인 사회학과의 어떤 구성원을 상대로도 공식적, 비공식적 통지나 상의 또는 설명도 없었다”며 “이는 한 마디로 보직교수 관계자들만이 전개한 ‘그들만의 리그’에 의해 저질러진 일방적 밀실행정에 의거해 폐과 절차를 밀어붙였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청주대 교수회 관계자는 “사회과학대학 학장조차 그 자리가 폐과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인지 모르고 급하게 참석해 달라고 해서 갔다고 한다”며 “표면상으로는 학과 및 전공 폐지 심의위원회도 열고 절차를 지킨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지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 폐과 기준, 알 필요도 없다?= 청주대가 사회학과 폐과 결정을 내린 것은 학과 경쟁력 평가에서 이 학과가 3년 연속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학과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구성원이 없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학과 경쟁력은 취업률을 포함한 다양한 지표로 평가한다’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평가지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제일 중요한 잣대가 취업률인데, 두 번째 E등급을 받았다는 지난해에 사회학과는 사회과학대학에서 취업률 1위를 하고 전국 사회학과 5위를 기록해 학교당국으로부터 210만원의 장려금을 받았다”며 “기준은 있고 해마다 바뀌는 것 같은데, 학교당국은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전면 공개는 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폐과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올해는 입학성적의 비중을 지난해보다 4배 높였고, 사회학과 신입생의 커트라인이 청주대 전체보다 낮다고 했다”며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청주대 직원은 “평가기준을 사전에 공개해야 학과에서 대비할 수 있고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데 지금도 기준 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폐과를 결정할 때도 교무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자료를 전혀 첨부하지 않고 3년 연속 E등급을 받았으니 폐과한다는 식으로만 밝히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구조조정 빌미로 ‘특정학과 죽이기’ 비판= ‘평가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상황별로 다른 근거나 지표를 제시’하면서 학교 측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특정학과 죽이기’에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우선 폐과 대상이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에 집중되고 있다. 또 다른 교수회 관계자는 “2008년 철학과, 물리학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여개 학과를 없앴는데, 대부분 인문학이나 기초학문 분야다. 대신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보건계열 학과를 많이 만들고 있다”며 “사회학과도 사회과학대학에서는 가장 기초가 되는 학과인데, 이른바 우리는 돈 되는 쪽으로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나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겨냥한 ‘표적 폐과’라는 의혹도 크다. 지금까지 10여개 학과가 통폐합됐는데 다른 학과와의 통합이 아니라 아예 없어진 학과에는 대개 교수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하고 있는 교수들이 소속돼 있는 탓이다. 2008년 철학과가 그랬고, 2014년 사회학과 또한 그렇다. 비판사회학회조차 지난 5월 28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특정학과에 대한 부당한 탄압의 느낌이 강하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 비판적 교수 압박 수단으로 악용 우려= 구조조정 과정에서 교수 신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이러한 의혹을 부추긴다. 앞의 청주대 교수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학과가 없어지더라도 유사학과로 보내준다거나 교양과목을 개설할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배려가 있었는데, 사회학과의 경우 폐과 결정을 내리면서 교수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며 “학교에 비판적인 교수들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구조조정을 악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과는 이미 일반대학원은 물론 교양강좌도 없앴다”며 “폐과되면 합법적으로 면직하기가 쉬워져 구조조정을 미운 털 박힌 교수들의 군기 잡기로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회 관계자는 “취얼률에 도움이 안 돼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과들은 정년퇴직을 해도 새로 교수를 뽑아주지 않는다”며 “학교 측에서 장기적으로 몇 개 학과를 없애겠다는 목표는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미운 털 박힌 교수들이 속한 학과의 우선순위를 맨 위로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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