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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 또는 촉감이 빚어내는 아주 단순한 흑백의 미학
질감 또는 촉감이 빚어내는 아주 단순한 흑백의 미학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6.08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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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_ 이재삼과 차계남의 어떤 수행

▲ 이재삼, 달빛(Dalbit-Moonshine), 227x543cm, Charcoal on Canvas, 2013

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오는 1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이재삼 작가(54세)의 개인전 「달빛-물에 비치다」와 대구 동원화랑(봉산문화회관)에서 이달 17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 차계남 작가(60세)의 전시는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나는 이들 화가가 사용한 목탄과 한지, 실이라는 재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것을 통해 빚어낸 흑백의 미학이다. 이재삼은 목탄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차계남은 사이잘삼(섬유식물의 일종)을 재료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모색해왔다. 이들의 전시는 무엇보다 그 질감(촉감)과 흑백이라는 강렬한 색채의 집중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목탄과 한지 실. 그리고 흑백이 빚어내는 풍경이라면 6월의 무더위도 너끈히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재삼은 목탄을 두고 그 자체 회화이며 지속 가능한 재료라고 말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재료로서 목탄은 예로부터 한국인들의 정서에 흐르고 있는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다. 또한, 목탄은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바로 자신이 선택한 재료에서부터 발현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밑그림을 그릴 때 사용됐던 목탄을 완성된 재료로 사용하기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목탄은 연필인 흑연보다도 가벼운 재료라서 그 입자가 화면에 고착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오히려 밑그림을 그리는 재료로 많이 사용돼 왔다. 따라서 작가는 목탄을 캔버스 위에 영구적인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특별한 기법을 개발했다(그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될 당시, 보존을 담당하는 큐레이터가 그의 작품을 영구 보존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목탄은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재료
이재삼은 그 동안 대나무, 소나무, 매화 등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소재들을 캔버스 위에 목탄으로 표현해 왔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달빛을 재현하는 데 골몰했다. 작가는 전통적으로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이 달빛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달빛 가득한 밤 그 달빛을 가득 머금은 대나무와 소나무 등에서 한국인들의 정서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한국적 감수성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김수영의 시 「폭포」의 그 거침없는 속도를 연상하는 흰 물줄기들이 내뿜는 물보라에도 달빛은 여김없이 빛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특히 1천호가 넘는 사이즈가 큰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1천호 정도의 크기라면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임대식 아트사이드 큐레이터는 이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숭고함과 웅장함을 체감하게 만든다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차계남, Untitled. No. 5361-5. 122x183x7cm. 한지. 먹. 2014.

“가장 먼저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에 압도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캔버스 크기에 걸맞게 실제 달빛을 머금은 소나무나 대나무 혹은 물보라가 이는 폭포 등을 실제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어느덧 이는 작품 앞에 서있다기보다는 거대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관객 역시 작가의 작품에 가득 찬 달빛이 온몸을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궁극적 합일을 위해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으로 자연의 눈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깨달음을 추구해 나갈 것을 전하고 있다.”


차계남은 어떤가.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 작가다. 염색 기법의 하나인 형염을 배우고자 대학원을 그만두고 일본 쿄토예술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80년부터 20년간 쿄토를 중심으로 작가 생활을 해왔다. 일본 평단의 인정도 받았고, 고국에서의 초대전도 이어졌다. 그렇게 잘 나가던 시절, 그는 1997년 홀연 다시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전시를 열던 그는 2003년 귀국해서 대구가톨릭대에 진학해 미학을 공부하고 전업 작가로 지금까지 끊임없는 자기 모색을 거듭하고 있다. “스스로가 안일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0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파리로 훌쩍 떠났던 차계남의 전시. 지난 6년간 어떠한 초대전에도 응하지 않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차계남의 작업에서 ‘물질이 주는 압도감’의 내밀한 의미, 그것이 형성하는 새로운 미적 지평을 매우 섬세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는 미술평론가 강선학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이 주는 압도감이야말로 그의 작업이 주는 강요의 다른 말이자 만남이다. 피하지 못하게 하는 색과 스케일, 그리고 눈을 돌릴 수없는 섬세함, 해독 불가능한 언어들의 변주로 인해 그곳은 언제나 보는 이 자신을 읽어내지 못하게 한다. 작품과의 교감에서 오는 보는 이 자신의 반응을 유보해두게 한다. 그저 그곳에 있다는 현존감의 장소성을 강요한다. 어떤 사유도 유추도 불가능하게 하는 곳이다.”

韓紙의 강인함과 멈추지 않는 작가 修鍊
차계남이 이번 전시에 동원한 방법이란 이렇다. 화선지를 일정한 길이와 폭으로 자르고 그것을 다시 꼬아서 노끈이나 실로 전환한다. 거친 질감을 지닌 하나의 실(끈)은 부드러운 화선지의 원초적인 재질감을 상실하진 않았지만, 실패에 감기면서 새로운 질감으로 전환된다. 실 한 올 한 올을 작가는 일일이 붙여나간다. 그러니까 그는 종이를 자르고, 종이끈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붙이고, 덧붙이고 한다. 이 과정 속에 촉감은 고유하게 살아 꿈틀거린다. 강선학이 예리하게 읽어낸 것처럼, 촉감이야말로 그의 화면이 빚어낸 새로운 언어다. 다시 강선학의 말을 빌려보자. “그것은 평면도 입체도 아니다.

노끈의 집적과 중첩은 높낮이가 다른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은 미세하고 예민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 요철은 우연한 결과이지만 계산된 작업의 결과임도 분명하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오기를 요구한다. 근접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형상과 물질감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평면으로 만나는 공간이나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촉감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그렇다. 차계남은 자신을 혹사하는 노역을 통과하지만, 이것을 다시 ‘무위의 행위’로 만들고, 손끝에서 떨어져나간 질감을, 강선학의 말대로, ‘현실이 아닌 곳으로’ 이끌어간다. “보는 사실이, 보이는 물질이 당신을 대신한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촉감 그 자체로 당신을 드러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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