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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후제도, 연구소 단위에서 활성화 기대 … 인문공동체 내면화 필요
박사후제도, 연구소 단위에서 활성화 기대 … 인문공동체 내면화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6.08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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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_ <로컬리티 인문학> 11집의 좌담회, 어떤 말들 나왔나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소장 김동철)가 펴내는 <로컬리티 인문학> 11집(2014.4)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기획은 좌담회 「인문학, 인문한국 그리고 ‘지금 여기’의 당사자성」이다. 7년 전 시작한 인문한국(HK)사업에 깊이 관여한 연구자들이 바로 자신의 ‘당사자성’이란 정체성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울대·부산대·강원대·전남대·건국대 등 관련 HK연구소 연구원들이 참여해 인문학과 HK연구소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이들은 과연 어떤 고민을 껴안고 씨름하고 있는 걸까. 이들의 고민에 HK사업의 또 다른 미래와 지평이 있다는 판단에서 좌담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사진 부산대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정진아(건국대 인문학연구원)
HK사업에 참여하고 난 이후, 인문학자로서 저의 신체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요.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나 적응 잘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하면서 어느 날 집에 가다보면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나는 인문학을 개척하는 새로운 대안적 신체일까? 아니면 논문 쓰는 기계나 괴물일까?’ 인문정신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성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여유가 너무 없어요.


인문한국연구단에서 통섭적인 모델을 창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인문한국연구단을 바라봐주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다시 한 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주변의 학문적 풍토는 여전히 분과학문적 성격이 강하죠. 그런데 실제로는 각 연구단이 어젠다에 대한 집중성을 가지면서 공동연구를 하다보면, 오히려 각 학문 영역에 대한 집중성은 흐트러지게 돼요. 왜냐하면 처음 어젠다를 개척해 가다보면 내용이 아직 성글잖아요. 성글다보니까 완성도가 떨어지고, 이미 각 학문 분과영역이 만들어놓은 기대수준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하고, 그리고 각 분과 학문영역에서는 이런 실험적인 연구를 아직 낯설어 해요. 그러니까 저는 HK사업을 하면서부터는 역사학 분야에서 논문을 투고한 적이 거의 없어요. 주로 통일문제나 북한학을 연구하는 곳, 무슨 문화연구하는 곳 이런 쪽에 계속 투고를 하게 되고 정통 역사학 쪽 하고는 계속 멀어지고 있어요. 통섭도 좋지만 그게 과연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있는 연구내용을 가지고 역사학에 어필하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그리고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차철욱(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사업에 대해 심사를 하신 분들로부터 나온 이야기인데요. 통섭 연구를 한다고 본인이 그동안 십 수 년 넘게 해 오던 분과 학문에서 벗어나와 어젠다를 향해서 한 발짝씩 나와서 모인 곳이 제3지대라는 새로운 영역이면 관계없는데 실상을 알고 보면 이미 다른 연구자가 기반을 닦고 있는 분과학문 영역이라는 거예요. 내가 역사를 벗어나 통섭을 한다고 다가간 분야가 문학 연구자가 이미 많은 연구성과를 축적한 분야라든지, 지리학 연구자가 이미 정리한 분야라고 하면 그런 통섭적인 연구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런 것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연구단의 경우에는 어젠다 연구를 위해 나눴던 연구팀을 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존 분과 학문 단위에서 새로운 모색을 해 보려고 한다고 해요. 지금 저희들이 이렇게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기존의 분과학문 연구방식과 동일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단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통섭 연구란 내가 하지 않은 분야를 새로이 개척하기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필요한 연구 분야와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소 단위의 연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고요.


강성용(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사업이 7년간 진행돼 오면서 이전의 학문적 패러다임과 다르게 해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속한 연구원은 굉장히 보수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있던 사업단의 전형입니다. 단행본 주해서를 사업의 주 내용으로 하겠다는 어젠다를 설정했죠. 그래서 동서양 고전에 대한 주해를 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하겠다는 것인데, 개인연구자들에게는 연구업적 산출에서 굉장히 불리한 방식입니다.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근본적으로 인문학의 토대가 되는 자료를 다루는 부분에 중점을 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현재 출간된 결과물들 자체는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의 학문적 해설 같은 것이 시장에서 유통될 만한 상황도 아니고 젊은 연구자들이 몇 년 동안 주해에 매달릴 만한 여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공동작업의 축적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희 사업단만 해도 전공이 모두 다른 연구자들 몇 명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공동연구를 하고 출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연구작업이나 사업을 학제간으로 추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추진하는 일을 기관단위에서 연속성을 갖고 유지되도록 진행시켜 본 경험이 한국 학계에 얼마나 있었냐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다른 연관분야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묻는다면,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연구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실제로 세계적인 대학들이 되고자 할 때 갖춰야 할 것에 대해서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전 세계의 해당 분야 연구자들이 연구업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만한 수준의 박사논문이 산출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는 연구성과들이 해당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면에서 대학의 연구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척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보태자면 박사후 제도를 연구소 단위에서 활성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원(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연구소에서 조직화된 어젠다 연구라는 것이 한국 대학제도에서는 사건이었어요. 여전히 이것을 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아직 우리 대학에서 연구소에 대한 마인드가 별로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특히 대학 내부의 구성원들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어렵지요. 연구소 단위의 프로그램들은 이미 외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델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저는 공부 공동체로서 연구자 당사자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쎄요. 제가 처음 연구단, 그것도 자기당사자성을 담보로 하는 ‘로컬리티의 인문학’ 연구단에 들어올 때는 정말 많은 기대가 있었습니다. 인문학의 생태가 본래 그러하겠지만, 특히 우리 어젠다는 지금 여기의 당사자성이 강해서 연구수행이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말 그대로 글읽기와 삶읽기의 간극이 커지면 정신분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의 연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사적 고통을 보다 역사화, 정치화하면서 새로운 학문적, 인간적인 연대를 생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인문 공동체라는 형식이 좀 더 내면화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내면적 성찰과 힘이라면 체계의 코드에 쉽게 환원되지 않는 외부성의 동력이 생성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과정을 통과하는 일이 참으로 지난한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명중(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저는 공동연구를 해오면서, 내가 뭐하고 있나, 그 다음에 이런 외부의 기준이나 조건에 따라서 연구하고 논문 쓰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이런 생각도 했어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기존의 상을 내가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왜 책상 앞에서만 앉아있는 전통적인, 이를테면 선비와 같은 지식인상 있잖아요. 한데 오늘날 지식인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해야 한다고 했을 때 비단 핵상 앞만이 나의 공부 장소가 될 수는 없잖아요. 삶의 현장이 곧 내 공부의 장소라는 생각을 하면, 이곳저곳 삶의 현장을 뛰어다니는 것조차 공부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문제는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찾아온 이런 변화가 스스로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공부의 장소가 서서히 형성돼야 하는데 그러면서 연구의 성과들이 내실 있게 축적될 것인데, 외부의 개입으로 급격한 변화가 강요될 때마다 엄청나게 비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결국은 한국에서 인문학자로 산다는 것은 어쨌든 상처를 껴안고 사는 일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HK사업을 돌아보면 제도적인 문제도 있고 연구소의 어젠다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연구자 개인의 실존적 불안입니다. 연구 연속성이라든지 연구 역량의 주체적 강화라든지 이런 측면에서도 연구자들의 실존적 불안을 이야기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핵심이란 생각이 드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연구단을 넘어 공유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민용(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사실 HK사업의 양적 팽창주의에 대한 외부의 비판에는 인문한국연구단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투여된 연구비에 대한 실적을 외부에 제시해야 하는 연구재단의 딜레마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사업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사업단에서는 여태까지의 개인 연구들을 여러 방향으로 종합해서 단행본으로 산출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강원대 사업단에서는 HK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어떻게 하면 인문치료 연구와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제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이러한 계획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재원과 시스템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의 사업이 끝나고 나서도 현재의 HK연구소들이 지금처럼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성장하려면 그 이전에 고민과 준비가 철저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HK연구소의 연구실적이 학교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과 소속 교수들과의 기여도를 따지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학생 등록금을 통한 재정적 기여라는 측면에서 학과와 연구소를 비교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연구소는 학교 안에서 어젠다를 통해 기여할 수 있는 대학원이나 학부 전공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재정적 기여도 할 수 있고 어젠다를 계승하는 학문후속세대를 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연구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소의 주체들이 연구소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중심 역할을 넘어서 각 연구소들을 연합하고, 연구주체들을 조직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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