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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놀이 하는 방법
인디언 놀이 하는 방법
  • 권혁범 대전대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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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권혁범/대전대·정치학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인디언 놀이하는 방법’에서 백인중심 사회가 ‘인디언’으로 불리는 미국원주민, 즉 비백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신랄하게 풍자한 바 있다.

그가 ‘추천’한 ‘인디언 배우’의 행동 중 한 개만 골라보자. “백인이 코요테의 울음소리를 낼 경우에 즉시 고개를 쳐들고 상체를 노출시켜라. 그래야 상대가 저격하기에 좋은 표적이 될 터이니.” ‘천치’ 인디언은 항상 기병대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스스로 약점을 제공해 패배를 자초한다. 물론 이것은 백인의 ‘희망적 사고’에 바탕을 둔 판타지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판타지를 배반한다.

20세기 중반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사실상 ‘인디언 놀이 하는 방법’에 기초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내전 개입에서 이란 모사덱 민족주의정권 및 칠레 아옌데정권 전복 주도, 베트남전 확전 유발 및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국제주의는 제3세계를 끊임없이 열등한 존재로 재생산하며 그것의 ‘문명’에 대한 위협을 강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정부는 항상 제3세계의 저항을 과소평가하고 그 대중적이고 끈질긴 기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그것이 위험한 것은 제3세계인이 할리우드 영화 속의 ‘얼간이 인디언’이 아니며 그 존엄성이 훼손될 때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무시, 은폐한 데 있다.

미국 기병대의 승리는 영상 판타지일 뿐 ‘악마’로 전환한 현실의 ‘유색인종’은 결코 손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9·11 담론에서 보여지듯, 제3세계 일부의 극단주의적 반격이 제1세계의 핵심을 강타할 때 그것은 도저히 ‘문명’과 ‘도덕’의 언어로는 이해될 수 없는 ‘야만성’의 표출로만 인식되고 만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얼마전 발표된 미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 전략보고서’는 여전히 이런 오류를 복제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들의 어두운 네트워크가 탱크 한 대 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줄 수 있다”며 “도전 받지 않는 압도적 우위”를 주장했다. 이른바 ‘악의 축’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하는 이 ‘미국식 국제주의’ 전략은 “역사는 억제정책이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경험은 어떤 敵은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는 가정위에 서있다. 문제는 이라크, 북한 등 매우 권위주의적 정치체계가 발달한 국가들 혹은 거기서 파생한 극단주의 세력의 도전이 결코 ‘압도적 우위’에 의해 저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미국 기병대의 나팔소리와 대포소리에 놀라 이리 저리 흩어지는 ‘인디언’ 배우들이 아니다. 미국이 수백만의 희생을 통해 베트남에서 어렵게 배운 교훈은 21세기에 와서 쉽게 잊혀지고 있는가. 억제정책이 실패했다면 개입정책은 더욱 더 미국을 그리고 전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몰고 갔다는 것을 현 미국정부는 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 국가 스스로가 고통과 혼란을 야기하는 거대한 ‘어두운 네트워크’의 한 부분, 아니 중핵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고 있지 못하는 데 있다.

작년 테러 사건 직후 미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추상적 반전론을 적당히 설파한 한 성명서에서 결국 “죄없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게 확실할 때 이웃사랑의 도덕적 원칙이 우리로 하여금 무력 사용을 요청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하며 아프간 침공을 정당화한 것은 이러한 지독한 자기중심성을 드러낸다.

물론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게는 별 정당성이 남아있지 않다. 사실 ‘악의 축’으로 명명된 곳에 나타나는 것은 패권국에 의해 짓밟힌 자의 자기 파괴적 저항의 왜곡된 형태이며, 서구문명에 대한 콤플렉스와 증오, 봉건적 광신이 결집된 ‘반미 민족주의’의 수사에 불과하다.

후세인 정권이 9·11 테러에 어떤 직접적 책임이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이“세계를 보다 안전하게 할 뿐 아니라 더 낫게 하기 위한” 미국식 국제주의의 일환이라면 그것은 실패할게 뻔하다. 설사 이 전쟁에서 완벽하게 이긴다 하더라도 짓밟힌 자들의 저항은 언제 어디서든 더 무자비한 폭력의 형태로 귀환할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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