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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교육가치’를 성취하기까지 200년 걸렸다
과학이 ‘교육가치’를 성취하기까지 200년 걸렸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5.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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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과학교육의 사상과 역사: 17~18세기 독일 과학교육의 성장과 발전』 발터 쇨러 지음|정병훈 옮김|한길사|627쪽|30,000원

이 책은 독일이란 한 국가에서 과학교과가 겪었던 사회사에 불과하지만, 과학이라는 지식이 지닌 교육 자산의 본질과 성격, 교육 가치가 200여년의 시간을 거쳐 심층적으로 논의됐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자연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나, 신의 존재와 활동에 대한 물리적 증거, 또는 삶의 유용성의 경제적 근원이라고 여기던 시기에는 자연 지식으로부터 인간성의 도야라는 보편적 교육의 가치를 도출하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과학이라는 지식이 인간성의 완성에 교육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고 학교에서 하나의 정규 교과로 완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완성되던 19세기 말이 돼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독일에서 과학이라는 지식이 교실에서 자신의 지위를 차지하기까지의 여정에는 지식에 대한 본질과 교육 가치에 대한 논쟁만이 아니라, 신분사회가 붕괴되면서 나타난 사회경제적·정치적 변화가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과학에 의해 계몽된 프롤레타리아의 과잉교육을 두려워했던 사회 세력들은 과학을 ‘부패한 시대정신’이자 무신론적, 유물론적, 감각적, 선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근거로 과학에는 자신의 교육 가치를 스스로 입증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과학교육의 가치는 오직 삶의 ‘유용성’을 위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며, 과학의 막대한 지식이 ‘全書主義的 전통’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과학지식이 교실에 자리잡기까지의 여정
과학의 교육 본질을 둘러싼 이 논쟁은 유럽에서도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17~19세기에 격렬하게 진행됐는데, 그중 100여 년간 학교 교육을 자주 마비시켰던 이 사건을 독일 교육사에서는 ‘인문주의와 사실주의의 문화논쟁’이라고 말한다. 독일이 근대 국가로 성장하면서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선두에 설 수 있기까지는 먼저 종교적 도그마와 인문적 고전교육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교육기관이 등장해야 했고, 그런 다음 과학교과들이 인문적 교과들과 대등한 교육 자산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차별화된 가치까지 지니고 있다는 점을 획득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박애주의 교육학자들이 독일의 관념론에 근거를 둔 인문주의 교육학과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 했고, 과학의 본질에 대한 헤겔의 해석이 철학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여기에는 과학으로 대표되던 실물지식의 교육 가치를 인식하고 교육 현장에서 이를 보급하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예컨대 1770년대 교육학자 캄페가 훔볼트 형제의 가정교사로 인연을 맺은 게 독일 교육과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는 것은 흥미 있을 것이다. 캄페는 바제도와 함께 데사우 박애주의 학교를 설립해 운영했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마자 20대가 된 훔볼트 두 형제와 함께 파리를 방문해 혁명의 현장을 목격했다. 훗날 인문주의자가 됐던 빌헬름은 독일의 대학과 학교 교육을 개혁하는데 결정적인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자연학자가 된 알렉산더는 『코스모스』를 통해 지리학뿐만 아니라 자연학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1804년 스위스의 아라우 칸톤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던 신인문주의자 에버스가 인문주의 학교로 개조하려던 기도를 아라우 시민들이 저지하고 결국에는 그를 쫓아내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90년 후 독일의 인문주의적 김나지움에서 달아나듯이 떠났던 아인슈타인은 아라우 칸톤학교에서 졸업장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1807년 니트함머는 에버스의 저서를 근거로 사실주의 교육학에 대한 신인문주의의 공격을 본격화 했으며, 이것이 독일 교육사에 흔적을 남긴 사실주의와 인문주의 교육학의 문화논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과학교육의 사상과 역사』는 독일이라는 한 국가에서 하나의 교과가 겪었던 사회사에 불과하지만, 과학이라는 지식이 지니고 있는 교육 자산의 본질과 성격, 교육 가치가 200여년의 시간을 거쳐 심층적으로 논의됐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그들은 정치적 강제, 철학적 견해의 대립, 행정적 조치들, 학교 현장의 실태, 시민들의 문화적 요구 등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사회적 합의로 거치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행하게도 이제까지 과학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정당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최근의 2007 과학교육과정 개정과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과학교육과정 개정 때문이다. 요컨대 역사적 기억의 실종은 학교 과학교육에서 구세대 과학교육자들의 실패(과학교육 이념의 부재)를 2007 개정교육과정에서 과학자들이 한 번 더 실패(전서주의의 숭배)하게 만들었고, 번지고 있는 병폐에 대한 아무런 자각 증상도 없이 새로운 과학교육과정(문이과 통합)을 다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영혼 부재의 과학교육과정에도 불구하고, 사회 발전과 학교 교육의 발전이 자주 엇갈리기도 하며 제도권의 공교육이 시대의 변화에 앞서는 일이 유감스럽게도 매우 드물다는 점을 우리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사실주의와 인문주의 교육학의 문화논쟁
이 책의 저자 발터 쇨러(1928∼94)는 메클렌부르크의 슈반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일생을 마쳤다. 1946년부터 파르힘에서 교직을 시작했고, 1952년부터 로스토크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해 1955년 그라이프스발트대에서 「1785~1800년 안할트-데사우 제후국의 하급교육기관에 박애주의가 미친 영향」(1957)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5~60년 로스토크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1960년대 초 서독으로 망명해 아헨대에서 이 책의 원전인 교수자격 청구논문을 집필했다. 1968년 오스트리아의 국제무역대학 교수로 초빙됐고, 1970년부터 오스트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클라겐푸르트대 설립 책임을 맡았으며 1974년까지 초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부친도 『중간학교 및 실업학교의 역사』(1959, 1960)를 집필한 교육사학자로 그는 부친에 이어 사실주의 교육학의 역사를 박사 학위와 교수자격 청구논문에서 중심 주제로 다뤘다. 그는 부친이 남긴 사실주의 교육사의 많은 자료와 그동안 잊힌 것으로 알려졌던 박애주의 교육학 사료들을 자신이 직접 발굴한 것을 바탕으로 이 저서를 집필했다. 이 저서에서 그는 새로 발굴된 박애주의 교육 자료로부터 학교 현장에서의 과학교육이 그동안 교육학계에서 평가돼 왔던 바와 달랐다는 점을 입증했다.

 

 

 


정병훈 청주교대·과학교육과
필자는 독일 뒤스부르크대에서 물리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과학교육사, 과학교육사상, 과학영재교육 등이며, 지은책에는 『물리교육학연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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